커뮤니티

항생제 흐르는 강 넥스트 팬데믹 예고 폐의약품 어떻게 버리고 있나요?

2024-04-24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정책주간지 K-공감
항생제 흐르는 강 넥스트 팬데믹 예고 폐의약품 어떻게 버리고 있나요?
'폐의약품을 우체통에 버리는 방법'

    ▶ 폐의약품 전용 회수봉투를 사용해 우체통에 버려주세요.
    ▶ 일반봉투에도 ‘폐의약품’ 표기 후 버릴 수 있어요.
    ▶ 물약(시럽)은 우체통에 버리면 안 돼요. 

 
우정사업본부 직원이 우체통에 회수된 폐의약품을 수거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폐의약품 분리배출 운동 ‘자원순환사회연대’
    우리나라 폐의약품 분리배출의 역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과 궤를 같이하는 면이 없지 않다. 2006년 개봉한 ‘괴물’은 서울의 한 연구소가 100병이 넘는 발암물질 ‘포름알데히드’를 싱크대에 버리고 아무런 정화과정 없이 하수구를 통해 그대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버려진 약을 먹은 물고기는 거대 돌연변이 괴물이 돼 한강 변에 있는 사람들을 마구 공격한다. 당시 ‘괴물’은 관객수 1300만 명이 넘는 역대급 흥행을 거뒀다.
    2008년 환경부·대한약사회·자원순환사회연대는 버려진 폐의약품의 하천 유입으로 항생제 문제, 수질오염 등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면서 폐의약품 회수·처리 시범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후 2010년 시범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2017년에는 생활계 유해 폐기물로 지정돼 별도 전용 수거함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수거 후 안전 처리하도록 제도화됐다. 영화 개봉 2년 만에 폐의약품 분리배출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영화와 폐의약품 분리배출 사업의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영화의 흥행이 ‘폐의약품을 함부로 버리면 큰일 난다’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2008년 폐의약품 회수·처리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분리배출이 시행된 지 올해로 16년째다. 현재 폐의약품은 제대로 분리배출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한강 괴물의 출현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폐의약품 분리배출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정책국장은 “폐의약품 분리 배출에 대한 시민 의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C영상미디어)


 
폐의약품 분리배출이 뭐예요?
    2023년 9월 (사)자원순환사회연대는 ‘폐의약품 분리배출 인식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가 특별시와 광역시 등에 거주하는 시민 8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폐의약품 분리배출 방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시민은 60.1%에 그쳤고 분리배출 경험이 있는 시민은 36.0%에 불과했다. ‘종량제봉투에 배출하고 있다’고 답한 시민도 42%에 달했다. 폐의약품은 종량제봉투에 배출해서는 안 되고 싱크대나 변기에 버려서도 안 된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시한 ‘폐의약품 처리방법 설문조사’에서도 ‘폐의약품의 처리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비율이 74.1%나 됐다. 반면 약국과 보건소를 통한 처리는 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정책국장은 “폐의약품 분리배출에 대해 알고 있는 시민들 중에서도 대부분이 ‘귀찮다’, ‘분리배출함이 없다’ 등의 이유로 분리배출을 실천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조사로 공식 발표되진 않았지만 20~30대 젊은층으로 갈수록 폐의약품 분리배출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범사업이 시작될 무렵 집중적인 캠페인 대상이 아니었던 아동·청소년 세대가 성인이 됐지만 폐의약품 분리배출은 지자체마다 제각각 운영되고 있는 데다 홍보도 부족해 도로 원점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지표수서 15종 의약물질 검출
    폐의약품이란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변질·부패 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의약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는 크게 일반쓰레기, 재활용쓰레기, 음식물쓰레기, 대형폐기물 등 네 종류다. 폐의약품은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유해폐기물로 분류된다. 유해폐기물은 생활폐기물 중 질병 유발 및 신체 손상 등 인간의 건강과 주변 환경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폐기물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아무 데나 버리면 큰일 난다는 뜻이다.
    2017년 가정에서 버려지는 피임약과 항우울제 영향으로 수컷 물고기 20%가 트랜스젠더나 간성(間性·수컷과 암컷의 특성이 혼합된 성)이 됐다는 영국 엑시터대학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연구 결과 조사대상 민물고기 중에는 알을 낳는 수컷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연구진은 이러한 수컷의 암컷화를 일으킨 원인으로 하수구를 통해 강이나 바다로 무단 투기되는 피임약과 항우울제를 지목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지표수(하천이나 호수 등) 의약물질 오염 여부 조사 결과 항생제·소염진통제·항히스타민제·진통제 등 약 15종의 의약물질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에 이미 폐의약품이 흘러 들어가 있는 것이다. 김 국장은 “의약품은 특정 약리효과를 목적으로 개발되고 생산되는 생리활성 물질이다. 싱크대, 변기, 쓰레기통에 무분별하게 버리면 그 복잡한 활성 능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물과 땅에 스며들어 괴이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특히 해양 생태계에 치명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폐의약품의 부적절한 처리는 박테리아 등을 항생물질에 대한 내성을 가진 슈퍼버그로 진화시켜 2050년까지 매년 막대한 인구·경제학적 피해를 입힐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항생제 내성보고서(Bracing for Superbugs, 2023)’에 따르면 매년 약 500만 명이 항생제 내성균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고 30년 후에는 교통사고나 암보다도 사망자 수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연간 4000여 명이 항생제 내성과 관련해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분당서울대병원, 2019)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과 새로운 변종바이러스의 출현을 코로나19를 이을 ‘넥스트 팬데믹’으로 경고하고 있다.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 확대
    현재 올바른 폐의약품 분리배출 방법은 보건소나 주민센터, 복지관, 약국 등에 설치된 폐의약품 수거함에 직접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수거 장소 및 방법 등이 달라 시민들이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직접 보건소나 주민센터 등으로 가서 버려야 하니 불편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 같은 어려움을 한번에 해결할 반가운 소식이 있다. 바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2023년부터 시작한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다. 먹다 남은 약을 우체통에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24시간 배출이 가능하고 배출 방법도 간단하다. 폐의약품을 주민센터, 보건소, 건강보험공단 지사가 배부하는 전용 회수봉투 또는 일반 우편봉투에 ‘폐의약품’이라고 적어 가까운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내 주변 우체통 위치는 전용 봉투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 누리집에 접속해 ‘일반검색-우체통 찾기’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현재 세종시와 서울시, 전남 나주시에서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가 시행 중이며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물약(시럽)·연고 등은 우체통이 아닌 기존 주민센터, 보건소 등의 폐의약품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스마트서울맵’에서 폐의약품 전용수거함 위치를 검색할 수 있다. 
‘쓰레기 매립 제로화’를 목표로
    자원순환사회연대도 우정사업본부의 우체통을 활용한 ‘폐의약품 회수 서비스’를 좋은 사례로 손꼽고 있다. 이밖에도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재활용품 분리배출일에 배출 가능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수거함 설치 시 접근이 쉬우면서 폐의약품의 오·남용을 관리할 수 있는 곳을 대상으로 분리배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분리배출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쓰레기 매립 제로화’를 목표로 ‘일회용품 안쓰기’, ‘포장폐기물 감량’, ‘음식물 줄이기’ 등 다양한 홍보와 교육에 앞장서온 민간협력단체다. 김 국장은 “2008년 폐의약품 회수·처리 시범사업 참여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폐의약품 분리배출을 오랫동안 모니터링해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요양병원 같은 의료기관도 약을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앞으로 폐의약품이 올바르게 분리배출되고 안전하게 전량 소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자원순환사회연대는 2023년 10월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에 ‘불용의약품 등의 관리에 관한 조례(안)’를 작성 배포하고 해당 조례 제청을 요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