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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아프리카에 의술 심는 김한겸 병리 전문의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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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몽골·아프리카에 의술 심는 김한겸 병리 전문의
'괴짜 병리의사 몽골·마다가스카르 20년 봉사에서 배운 것'

    김한겸(68) 하나로의료재단 하이랩원장은 좀 특이한 의사다. 부캐(부 캐릭터)가 다양하다. 현미경 사진이라는 독창적인 사진 분야를 개척해 작품활동을 하는가 하면 난데없이 미라 연구를 해서 조선시대 질병사 연구에 기여했다. 세계 유일의 모자(母子) 미라인 파평 윤씨 미라가 잘 알려진 예다. 검도 7단으로 한국 의사 중 검도 최고단자이기도 하다.
    그는 병리과 의사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34년간 후학을 가르치며 의학 전선을 지켰다. 병리과는 환자의 조직이나 세포를 분석해 어떤 질병인지 확인해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분야다. 때문에 병리과 의사는 환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질병과 싸우는 의사들이다. 병리과는 필수의료 분야에 속한다. 병의 치료는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한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몽골, 아프리카 등을 다니며 촬영한 아름다운 풍광 사진으로 사진전을 여러 번 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팔자 좋게 여행을 다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진 뒤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숨어 있다. 그는 몽골을 시작으로 마다가스카르 등 아프리카 11개 국가를 돌면서 의료봉사를 했다. 일반적인 의료봉사가 아니라 의사들을 교육시키고 그 나라의 의료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자궁경부암·폐암 진단법을 소개하고 의사들을 교육해 사망률을 크게 낮췄다. 3년 전 정년퇴임 후에는 보폭을 더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사비를 들여 몽골 의사를 우리나라로 초청해 교육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김한겸 하나로의료재단 하이랩 원장은 2007년부터 몽골,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 병리 의사를 육성하는 자원 활동을 해왔다. 
벽에 걸린 액자(왼쪽)는 마다가스카르 병리학회에서 받은 감사장이다. (사진. C영상미디어)


   
몽골·아프리카에 의술 심는 김한겸 병리 전문의
    2005년 몽골에서 열린 의학 세미나에 처음 초청받았다. 자궁경부암 검사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진단 시스템을 몽골 의료계에 소개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한 의사가 세포를 봐달라고 했다. 당시 몽골에 현미경이 서너 대밖에 없었다. 현미경이 있는 대학을 겨우 찾아 세포를 보니 시커먼 색으로 염색돼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배워온 염색 방식의 진단법이라더라. “염색법이 눈에 익지 않지만 폐암이다”라고 알려줬다. 2006년 또 초청을 받아 몽골에 갔다가 그 의사를 또 만났다. 그가 “당신이 맞았다. 환자가 외국에 나가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환자는 몽골에서 유명한 의사 가족이었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몽골 의료계에서 내가 진단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면서 2007년부터 몽골 의사들을 교육하는 ‘몽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몽골 프로젝트’가 뭔가?
    몽골의 병리 의사들을 교육하는 프로젝트다. 대한병리학회, 대한세포병리학회와 함께했다. 2007년부터 10년간 했는데 10년이 되니 몽골에 병리학회가 생기더라. 자궁경부암 검진법부터 가르쳤다. 자궁경부암은 우선 세포를 채취해 진단하는 과정이 다른 암에 비해 훨씬 쉽다. 그런데도 기본적인 진단 기구마저 없더라. 염색도 제대로 못했다.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쳤다. 몽골에서는 그때까지 자궁경부암 검진을 못하고 있었다. 자궁경부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매우 높은 암인데 자궁경부암으로 죽는 몽골 여성이 많았다. 한국도 1980년대까지 그랬다. 검진하는 게 쉬워지면서 사망률이 급격히 줄었다. 이제는 암종별 사망률 순위에서 자궁경부암은 10위 안에도 안 든다. 
아프리카에서도 같은 식의 자원활동을 했나?
    그랬다. 아프리카 국가 중 11개 나라를 다녔는데 병리 의사가 다섯 명이 넘는 나라가 없더라. 진단을 거의 안 하고 있었다. 마다가스카르는 달랐다. 병리과 레지던트가 15명이나 있었다. 가르쳐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015년 ‘마다가스카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년 동안 매해 방문해 자궁경부암 검진법을 가르쳤다. 의학 교재와 의료기기도 기증받아 가져다줬다. 아프리카를 다니다 발견한 게 있다. 경제 수준이 올라가고 중산층이 늘어나면 말라리아나 에이즈(후천면역결핍증) 발병률은 줄어드는데 자궁경부암 발병률이 늘어나더라. 질병과 사회 상황이 다 연결돼 있다. 몽골에서 가르치며 쌓은 경험을 대한세포병리학회와 함께 마다가스카르에도 전했다. 
한 국가당 5년 이상씩 교육한 이유가 있나?
    첫해는 일종의 소개다. 해를 거듭할수록 진단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배운 후 현장에서 실습하는 것도 중요하다. 병리 의사를 한국으로 데려와 병원에서 교육시키는 이유다. 몽골과 마다가스카르에서 병리 의사를 데려와 교육시켰다. 한국에서 배우고 들어가면 확 달라진다. 그러다 보니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 병리학의 맹주가 됐다. 우간다, 탄자니아 같은 나라에서도 교육 요청이 들어온다. 
몽골 프로젝트는 이제 끝난 건가?
    이제는 몽골 의료가 많이 발전했다. 대형 병원도 들어섰고 사립의과대학도 생겼다. 이제는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폐암 치료다. 폐암을 몽골에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관련해서 지난해 몽골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이제 시작이다. 몽골에서 암으로 인한 사망 원인 중 폐암이 세 번째다. 실제로는 발병률이 더 높은데 진단이 늦거나 안되는 경우가 많다. 몽골 남성의 흡연율이 높을 뿐더러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대기가 그리 좋지 않다. 폐암은 치료 예후가 매우 좋다. 진단으로 발견하면 수술로 종양을 떼어내면 된다. 항암치료를 안 해도 되는 경우가 많다. 종양이 퍼져 있어도 유전자 치료를 하면 좋아진다. 
폐암 완치율이 높은 편인가?
    이전과 비교하면 엄청 높아졌다. 예전엔 진단받고 2년 안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5년, 7년을 넘겨 잘 산다. 치료약이 상당히 좋아졌다. 그런 약을 몽골 의료진이 적절히 처방해 치료할 수 있게 되면 몽골 사람들이 의료비에 큰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몽골에서 암에 걸리면 의료비가 많이 드나?
    암에 걸리면 대부분 몽골에서 치료받지 않고 외국에 나가서 치료를 받는다. 일단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진단하기가 어렵다.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CT)을 찍어서 판독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고 폐 조직을 일부 채취해 검사하는 생체검사도 해야 한다. 그런데 몽골에 생체검사를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의사가 딱 한 명 있다더라. 어찌어찌 진단을 해도 문제다. 폐암이라고 진단하면 다 외국으로 나간다. 옛날 한국이 그랬듯 자국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 치료를 위해 한국이나 미국으로 나간다. 
돈이 많아야 외국에서 치료받는 것 아닌가?
    온 집안 사람의 돈을 모아서라도 외국으로 보낸다. 몽골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 상당수가 비슷한 상황이다. 만약 몽골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암을 치료해 완치된 사례가 나오면 몽골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올라갈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게 그거다. 폐암은 약물치료가 결국 답인데 약물치료를 몽골 병원에서 하게 되면 약값을 포함한 의료비를 낮출 수 있다. 폐암 진단 교육 외에도 두 번째로 ‘정도관리’ 사업을 소개했다. 검사와 진단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예방하는 사업이다. 10년 동안 암 진단법을 교육한 결과 시스템이 잘 정착했다. 그런데 진단 과정에서 오진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정도관리를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세 번째로 바이오뱅크의 중요성을 몽골 의학계에 소개했다. 
바이오뱅크가 무엇인가?
    생물자원은행으로 몽골인의 혈액이나 침, 암 조직 등 유전자 정보를 다 모아놓는 곳이다. 지금부터 모아야 한다고 알려줬더니 몽골 정부 차원에서 건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2023년 7월 ‘몽골의 사계’란 제목의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스무 번 이상 몽골을 방문하며 촬영한 사진으로 꾸린 전시였다. 그는 작품을 판매해 생긴 수익금에 사비를 보태 3000만 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었다. 몽골의 병리 전문의들을 위해서다.
    3년 전쯤 몽골에서 특강을 했다. 강의 후 식사를 하는데 몽골의 병리 의사들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몽골 사진으로 전시를 해 수익이 생기면 그걸로 비행기 값을 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난해 전시회에서 수익이 생기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몽골 의사들이 한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가?
    과거엔 몽골에 병리 전문의가 없었다. 몽골 프로젝트를 10년 하면서 2년제 레지던트 코스와 함께 전문의가 생겼다. 몽골에 현재 병리 전문의가 68명이고 근무 중인 전문의는 47명이다. 그중 30세 이하가 약 30명이다. 이들 중 한국어나 영어가 가능한 전문의를 꼽아보니 7~8명이다. 매해 한 명씩 고려대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연수를 받기로 했다. 현재 대상자 선정 작업 중이다. 
의료 봉사가 20년이 돼간다. 그 나라의 의사를 교육해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원래 ‘병리과는 의료 봉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병리의가 봉사하면 확실하다’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현지에서도 ‘사나흘 교육하는 걸로 뭐가 되겠어’라며 비웃었다. 몰라서 하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병리학을 키워나가던 시기에 선진국에 3일 혹은 일주일씩 가서 단기 교육을 받고 왔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교육 코스를 들으러 가기도 했다. 그게 벌써 30년도 더 된 얘기다.
    몽골이나 마다가스카르 프로젝트 모두 자비로 진행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나의 경험과 지식이 도움이 되는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왔다. 한국의 의술도 선진국의 도움을 받으면서 발전했다. 선진국이 됐으면 나눠야 한다. 몽골이나 마다가스카르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늘 생각한 것은 그 나라의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이끌고 갈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심어주고 싶다. 장기간의 협력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나도 몇십 년간 병리과 전문의로 봉직했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