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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따라 근대문화 유산의 정취에 취하다

2017-10-13

문화 문화놀이터


달빛 따라 근대문화 유산의 정취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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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세트라고 해도 믿을 만큼, 시간을 거스른 근대의 풍경이 군산 곳곳에 머물러 있다. 19세기 전국 최대 문물교류의 관문인 만큼 수탈이란 아픔도 공존했던 군산은 그 다양한 역사를 ‘축제의 장’에서 새롭게 써 내려 가고 있다. ‘군산야행’의 안내자는 청명한 가을달빛이다. 빛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100여 년 전 근대문화유산이 오늘의 이야기로 살아난다. 한밤의 시간 여행이 막 시작됐다.


한 상 가득 차려놓은 푸짐한 프로그램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근대 건축물이 다수 남아있다 보니 군산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대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 편이다. 그러한 연유로 이색적인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사진작가나 방랑객들에게 군산이란 공간은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도시였다. 방치되어 있던 역사적 장소와 근대 건축에 문화를 접목하자 군산만의 특화된 콘텐츠가 탄생한 것.
특히 이번 야행 프로그램은 근대로의 시간 여행을 한층 더 유쾌하고 다채롭게 구성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어울림의 장을 마련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부터 동국사까지 2km가량 이어진, 일명 ‘빛의 거리’에는 근대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50여 개 의 전시와 공연,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개항 118년사를 담은 사진 전시회와 동국사 산사음악회, 소설 <탁류>를 재현하는 어린이들의 거리 연극,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 스탬프 투어까지 이색적인 경험이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선선한 가을바람을 따라 나들이 나온 가족과 연인들은 신흥동일본식가옥과 한국의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 군산근대역사박물관등을 저녁 데이트 코스로 활용할 수 있다. 야행 기간 동안 군산 대표 근대문화유적지와 문화시설을 야간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8월에 진행된 군산야행 당시 20만 명가량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집계될 만큼 축제는 성황리에 진행됐다.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상큼한 청춘들이 들려주는 버스킹 공연으로 야행에 시동을 걸어보는 사람들. 보고 이해하는 일방통행 역사 공부가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소통하는 쌍방향 문화 즐기기로 군산야행이 들썩인다.





살아 있는 역사, 오늘을 산다

    군산은 1899년 개항 이래 근대 문물이 활발히 유입되었던 교류의 중심지였다. 그와 동시에 일제 수탈이 진행됐던 곳이며, 한강 이남 최초의 3·5 만세운동이 시작된 항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번 군산야행의 목적은 관광객들이 수탈과 항쟁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근대문화유산의 정취를 느끼며 미래의 희망을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데 있다. 야행 프로그램의 첫 시작은, 활짝 문을 열고 방문객을 반기는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수탈의 바다, 그날의 기억’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어 국제무역항으로써 군산이 겪었을 역사적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방문객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공간은 1930년대 군산을 재현한 근대생활관이다. 일제의 강압적통제 속에서도 치열한 삶을 살았을 군산 사람들의 생활상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다가 일부 공간에서는 탁본과 근대 복장 체험이 가능해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놀이터가 됐다. 군산항 개항 당시 건설됐던 내항의 부잔교, 인력거차방, 영명학교 등 실존했던 건물 11채가 복원되어 있다. 조선주조주식 회사에서는 술지게미 향기도 맡아볼 수 있어 어르신들은 후각으로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박물관을 나오면 현대 건물 사이에서 오롯하게 근대의 시간을 살고 있는 장미갤러리가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후 폐허가 됐던 건물로 2013년에 정비해 전시장으로 활용 중이다. 갤러리 이름은 장미(藏米)에서 따온 말인데 이는 수탈한 쌀의 곳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방향제의 일종인 디퓨저나 부채 등을 만드는 체험이 가능하다. 그 옆에 위치한 장미공연장 역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수탈한 쌀을 보관했던 창고를 개·보수한 곳이다. 야행 동안에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침선장 임순옥 선생의 대한제국 황실 예복 전시회와 가채 체험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변천한 예복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군산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했다면 이제 빛의 거리로 나갈차례다. 발끝에 닿는 근대건축물마다 문화재 해설사가 자리하고 있어, 기념 촬영만 하고 지나치는 겉핥기식 여행이 아니라 옛날이야기를 듣듯 군산역사의 스토리텔링을 만끽할 수 있다.
  




이색적인 밤거리, 군산의 또 다른 얼굴
    낮에는 다소 조용했던 군산의 원도심이 해가 떨어지자 사람들과 빛으로 북적거린다. 2곳으로 나눠 문을 연 60여 개의 플리마켓에는 군산 대표 생선인 박대를 구워 팔기도 하고 수공예로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누구나 구입 할 수 있는 군산야행 기념 티셔츠는 수익의 일부를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며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 2016 문화재청 전국야행평가에서 최우수 야행으로 선정된 군산인 만큼 야심 차게 준비한 ‘빛의 거리’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도보로 25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라 가을 산책 코스로도 더할 나위 없다. 야경을 더욱 포근하게 만드는 LED 조명 연출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군산 근대문화 거리를 재현한 15개의 부스제작물은 밤거리를 더욱 화려하게 밝혀준다. 심심치 않게 고객을 싣고 달리는 인력거가 등장해 흡사 타임머신을 탄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게 한다. 길 한복판에 재현해 놓은 해망굴은 레이저 조명쇼와 함께 시선을 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물자 반출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굴이자 한국 전쟁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해망굴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신흥동일본식가옥까지 길이 길게 펼쳐진다. 명화극장 야외에서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상영 중이라 누구나 감상이 가능하고, 그 옆에는 영화의 배경이 됐던 초원 사진관이 있어 마치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빛의 거리에서 가장 줄이 길게 서 있는 곳은 영화 ‘타짜’에 등장한 신흥동일본식가옥 입구다. 그날만큼은 내부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정해진 시간에 연극도 진행하고 있어 볼거리가 가득하다. 아이들과 함께 야행에 나온 한 어머니는 “아이들이 행사를 통해 문화재의 역사와 가치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 뜻깊었으며, 길목마다 마련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이번 야행을 더욱 알차게 했다”며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한 번 더 깨닫게 됐단다.
    야행의 마지막 대미는 동국사에서 마무리된다. 사찰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는 국악의 선율이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산사음악회에는 대금과 가야금 등의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동국사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더욱 운치를 더한 공연이다. '군산야행’은 10월 28일과 29일 열리며, 매주 주말에도 소야행을 열고 있어 특별 공연을 제외하고는 야간 관람이나 체험 등이 가능하다. 예스러운 군산의 거리를 걸으며 가을밤, 역사와 문화로 익어가는 추억을 만들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