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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꿈을 이야기하는 테너 배하순

2018-01-11

문화 문화놀이터








人의 목소리로 피우는 꽃, 꿈을 노래하다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악보를 친구삼아 연습하던 날이 이어졌다. 문득 ‘노래가 내 길이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곤 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았다. 성악가 배하순(48·테너)이 음악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열정, 연습, 고민, 그리고 다시 연습의 시간들이 반복되며 고민은 어느덧 음악가의 내공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좌절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그것을 이기고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간절한 소망이 가야할 길을 열어준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그는 ‘노래를 조금 잘하는 학생’일 뿐 성악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실기 시험으로 가창이 지정됐다. 숫기 없는 성격인 그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쏟아지는 시선에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지만 이내 특유의 맑은 목소리는 고음의 선율도 자유롭게 오르내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평가표를 잠시 내려놓으신 음악선생님께서 성악을 전문적으로 배워볼 것을 권유했고, 그것은 그의 길의 전환점이 되었다.


ⓒ2017.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All Rights Reserved.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지만 전공해야겠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따로 배워야 하는 레슨비도 부담됐고요. 그런데,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더군요. 그 때 제가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 선생님이 음대에 다니던 성악 전공자셨는데 저의 상황을 아시고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성악을 배울 수 있었지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성악의 길은 쉽지 않았다. 타고난 미성(美聲)의 재능은 눈에 보였지만 성대가 악기인 성악가로서 훈련의 시간이 부족했던 것. 이 후로 그에게 연습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의 연습실은 연습에 열중인 그의 목소리와 더 잘 부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언제나 가득 차 있었다.


유학 후 한국에서 찾은 더 넓은 음악세계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 진학해 노래만을 생각하며 대학생활을 보낸 그는 졸업을 앞두고 성악가와 교사, 두 가지의 길을 두고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성악가로서의 삶. 1995년 청주시립합창단이 청주예술의 전당 개관과 함께 상임 체제로 전환된다는 소식을 들려왔다. 청주시립합창단 오디션에 응시한 그는 단원이 되어 2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청주시립합창단 시절은 제가 노래를 계속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어요. 여러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기도 했고, 단원으로 근무하면서 받은 급여를 모아서 이탈리아로 유학 갈 준비를 했거든요. 노래를 하면서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작은 문이 열려 있었던 것 같아요”
    5년 간 이탈리아의 비발디 국립음악원과 이탈리아 제노바 왕립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청주로 돌아온 그는 지역의 음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고 한다. 그의 이런 생각에 뜻을 같이 하는 음악인들이 힘을 모아 ‘라포르짜 오페라단’ 창단하고, 첫 공연으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무대에 올리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이 후로 그는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메시아’ 등 다수의 미사곡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오페라 ‘토스카’, ‘La Traviata’, ‘The little sweep’, ‘직지’, ‘봄봄’, ‘쟌니스키키’ 등에 출연하며 음악인으로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보다 깊이 소망하길

    “보람이요? 노래하면서 힘들었을 때가 많아서인지 금방 생각이 잘 안 나네요. 아!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성악을 배우고 있는데, 무대에서 노래하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멋있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던 일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뿌듯하던데요. 하하하”
현재는 대학에 출강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남성 4인조 성악 앙상블 ‘콰트로’의 단원, ‘VIVA 남자합창단’의 지휘를 맡고 있는 그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때론 무거운 사명감이었다. 그 길을 아들이 걷는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섰지만 아들의 뜻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는 아들을 포함해 성악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좀 더 길게 보고 좀 더 인내하라는 것이다. 한 걸음에 한 계단씩 올라갈 수는 없지만 여러 번 나누어 걷다보면 어느새 한층 높아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오는 2018년에 다섯 번째 독창회를 계획하고 있다.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지금도 연습을 쉬지 않는 그가 또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연주자로서, 교육자로서 어느새 중견음악가의 자리가 된 그가 세우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