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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하동 80리길과 쌍계사

2018-02-05

문화 문화놀이터








    문명의 발상지였든 군사적 요충지였든 문화의 중심지였든 예외 없이 강물이 흘렀다. 서계4대 문명이 태동했던 강물들도 그렇고 삼국의 우위를 다투었던 한강이 그렇고 남도의 문화, 예술이 스며 있는 섬진강변이 그렇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이야기. 굽이굽이 흐르며 동식물과 사람들의 삶을 품어낸 강물을 따라 하동포구 80리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정겹게 자리를 잡는 강변 마을과 철새들, 무성한 벚나무들과 너른 차나무 시배지, 속세의 더러움을 씻고 지리산자락 깊숙이 들어앉은 고즈넉한 사찰, 쌍계사까지, 곳곳에 숨은 아름다움을 만나러 새해 첫 여행을 떠났다.





섬진강을 따라 굽이굽이
    섬진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토지길은 제1코스와 제 2코스로 나뉘어 있다. 제1코스는 소설 토지 의 무대를 따라 걷는 18km. 평사리 공원으로부터 시작해 평사리 들판, 동정호, 최참판댁, 조씨고택, 악양루, 화개장터로 이어지는 코스다. 서희와 길상이의 삶, 조선말기부터 일제강점기, 그 시대를 겪어낸 사람들의 무대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제2코스는 화개장터부터 십리 벚꽃길, 차나무 시배지(始培地), 쌍계석문바위, 쌍계사, 국사암으로 이어지는 13km다. 특히 산속에 숨은 쌍계사는 오랜 역사와 문화재들이 있는 사찰로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대하소설 『토지』 속으로

    남도라서일까? 서울에 왔다는 눈 소식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쌀쌀하지만 서울과 비교하면 그리 매섭지 않은 남도의 바람이 섬진강변을 따라 살랑살랑 불어온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최참판댁이라는 푯말이 눈앞에 보인다. 토지 의 무대가 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의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이곳에는 최참판댁을 비롯하여 소설 속 가옥들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다. 동네를 둘러보니 마치 서희와 길상이 동네 어귀에서 튀어나올 듯한 느낌이다. 역사에서 가장 척박했던 시절을 묘사했지만 세트장은 너무도 정겨워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갈 길이 급하니 노닥거릴 시간은 없다. 이제 자연이 그린 길로 가보자. 차를 달려 도보 여정을 시작할 악양루로 향한다.


01.오랜 시간 변함없이 흐르며 동식물과 사람들의 삶을 품어낸 강물을 따라 하동포구 80리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02. 「토지」속 가옥들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는 평사리 마을. 마치 서희와 길상이 동네 어귀에서 튀어나올 듯한 느낌이다.
03.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다.



하동포구 80리길, 한 발 한 발 아껴 걸으며

    이제부터 이어지는 길은 하동포구 80리길이다. 이 길에는 넉넉한 섬진강이 품어낸 동식물과 십리 벚꽃길, 다양한 문화재의 보고인 쌍계사 일대가 포함된다. 차에서 내려 운동화 끈을 고쳐 맨다. 걷는 길로만 편도 15km 남짓, 여유롭게 걷자면 4시간이 족히 걸리는 길이다. 길은 멀지만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정겨운 포구 마을과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하동 송림, 너른 섬진강변이 친구하듯 계속 따라 오며 말을 걸기 때문이다. 너른 강변엔 어디서 왔는지 수많은 철새들이 강 위로 앉았다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장관이다.
    한동안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이번엔 곧은 길이 나선다. 지금은 겨울이라 볼 수 없지만 이 길은 벚꽃길로도 유명하다. 이 길은 대중가요에도 종종 등장했다. 하춘화와 조미미, 은방울 자매가 각각 불렀던 <하동포구 아가씨>. 그 가사에는 어김없이 섬진강 맑은 물, 쌍계사의 쇠북소리, 노을진 포구 등이 등장한다. 정답고도 아름다운 가사다. 그뿐인가? 이곳은 무형문화재이기도 한 구례의 잔수농악이 복원, 보존되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힘찬 쇳가락과 진풀이가 돋보인다는 농악, 어디선가 그 활달한 쇳가락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창 걷다 보니 화개장터가 나선다.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에 있어 더욱 유명한 화개장터, 잠시 들렀다가면 좋겠지만 갈 길이 머니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제 아름답기로 유명한 혼인길이다. 벚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오르는 산길에 겨울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길은 점점 더 깊은 산으로 걸음을 인도한다. 꽤나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자 옆으로 유명한 차나무 시배지가 보인다.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는 신라 흥덕왕 3년, 대렴공이 당나무에서 씨앗을 가져와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다. 1987년에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기념석과 대렴공 사치새 추원비, 진검 선사 차시배 추앙비가 있다.
    푸른 잎이 돋을 때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길은 더욱 산속으로 파고든다. 사람들의 소리가 사라지고 청명한 계곡물 소리가 따라온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드디어 삼신산 쌍계사 일주문이 반겨준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속세의 더러움이 하나하나씩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문화재의 보고, 쌍계사

     천왕문까지 세 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비로소 쌍계사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주한 쌍계사 구층석탑. 한눈에도 범상치가 않다. 이 탑은 1990년에 세운 탑으로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천왕문과 팔영루 앞에 우뚝 선 석탑은 2층의 팔각기단, 난간문양 등이 독특하다. 쌍계사의 하나 더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은 진감선사 탑비다. 국보 제47호인 이 탑비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 3.63m, 비신 높이 2.02m의 이 비석은 최치원의 사산비로 비석을 등에 지고 있는 귀부와 비석 위의 이수를 갖추고 있다. 특히 귀두는 짧고 용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 비석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비석에 쓰인 비문 또한 최치원의 글씨란다. 깨지고 균열되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엿보이는 비석이지만 설명을 읽고 보니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쌍계사에는 또한 독특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탑전이 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육조정상탑전. 중국 불교 선종의 6대조인 혜능대사의 정상(頂相), 즉 두개골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탑전의 전면에는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가 직접 쓴 글씨다.
    사찰에 왔으니 대웅전을 봐야 한다. 쌍계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앙에 비해 좌우 퇴간의 너비가 좁고 기둥 사이k 넓이에 비해 기둥이 높아 산곡간 형태를 보여준다. 법당 내부를 금단청으로 장식하여 무척 화려하다. 문살도 화려한 꽃새김이다. 연꽃, 모란을 비롯. 6가지 무늬로 새겨져 섬세한 조각솜씨를 엿볼 수 있다.



눈 쌓인 계곡에 칡꽃이 피어 있는 곳

쌍계사는 724년(신라 성덕왕 23) 의상의 제자 삼법 화상이 혜능대사의 정상을 모시고 신라로 돌아와 봉안한 뒤 조그만 암자를 세운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뒤 840년(문성왕 2)에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k 귀국한 혜소 진감선사가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라는 사찰을 다시 새롭게 지었고 887년 정강왕이 두 줄기 계곡이 만나는 이곳 지형을 보고 쌍계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서일까? 처마, 전각후원, 전각기둥 주련의 연꽃과 풍경, 전각사이 암반에 새겨진 마애불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봐 넘길 것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대웅전 뒤에 서서 마주한 지리산. 겹겹이 다가서는 지리산의 산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 있는 곳이라 했던가? 육조의 정상을 모시고 사찰을 세우기 위해 곳곳을 헤맸을 삼법스님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역시 조용한 사찰은 일상에 찌든 마음을 토닥여주는 좋은 장소다. 더구나 겨울, 고즈넉한 산사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불현듯 속세를 떠난 이곳에서 하루 이틀 쉬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