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식

충북지역의 정보를 한번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아리랑

2018-03-02

문화 문화놀이터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구성원을 결속시키는 정체성, 자존심과 같은 정서적 영역이 존재한다. 이는 오랜 세월 다양한 형태와 상징으로 심성에 내재되어왔고 희귀함보다는 일상성의 특징을 가지면서, 동시에 내외·외부 환경 변화에는 강력한 응집력과 파급력을 발휘하는 양면적 특징을 지닌다.



아리랑’ 무형문화재 이슈를 선점하다

    2011년 6월 21일 제3차 국가급 무형유산을 발표하는 중국발 언론보도가 우리나라 전역을 강타했다. 한국의 대표적 민요인 아리랑을 비롯해 조선족 전통 민요와 풍습을 중국의 국가무형유산 목록으로 대거 채택함으로써 우리의 무형유산이 중국에 빼앗겼다는 것이다. ‘아리랑 동북공정’, ‘문화동북공정’이라는 제목을 필두로 국내 언론보도 건수가 100여 건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쾌 컸다.
    그런데 조선족 무형유산에 대한 중국의 동향을 인지한 것은 2011년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자국 내 무형유산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 조선족 관련 무형유산(농악무·널뛰기·그네타기·전통혼례 등)을 국가급 또는 성급 무형유산으로 지정한 결과를 1차(2006년 5월), 2차(2008년 6월)에 걸쳐 발 표했다. 또 2009년에는 많은 소수민족의 무형유산을 제치고 ‘조선족 농악무’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시켰다. 2005년 우리가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면서 비롯된 중국의 반한 감정과 과열된 한·중 간 무형유산 등재 경쟁 그리고 우리 무형유산이 중국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 등 다양한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아리랑처럼 크게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지는 못했다.



2017 서울아리랑페스티벌 개막공연 ⓒ서울아리랑패스티벌조직위원회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와 무형문화재 정책 변화

    중국발 아리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치는 신속하고 폭넓게 진행되었다. 첫째, 2008년에 이미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으로 신청해놓은 ‘정선아리랑’을 포함해 국내 구성원뿐 아니라 해외 이주 동포에 이르는 광의의 전승공동체가 전승하고 있는 아리랑을 담아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라는 이름으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했다. 둘째, 무형문화재 보호 정책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진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리랑은 인간문화재를 의무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문화재보호법 때문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인간문화재를 인정하지 않고 종목만으로도 지정이 가능할 수 있도록 생활관습·의식주·구전 전통 등으로 지정 범위를 확대하고, 원형 보존 정책을 전형 유지 정책으로 완화해 창조적 계승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제도의 근원적 체질 개선을 담은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1)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원화된 활동을 집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국립무형유산원2)을 설립했다.
    이러한 괄목할 만한 제도적 변화는 전적으로 중국발 아리랑 등재 여파의 결과로 귀속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유네스코 무형유산협약이 발효된 이후 국내에서 국제적 환경에 부합하는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에도 실행되지 못한 채 표류하던 상황에서 아리랑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힘입어 제도 개선의 강력한 추동력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1)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발의(2012년), 제정(2015년), 시행(2016년)
2) 국립기관으로 확정(2012년), 정식 개원(2014년 9월)



아리랑의 가치와 생명력

    아리랑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배우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친숙한 민요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언제 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리랑의 시작은 강원 지역의 산촌에서 유래한 향토민요라는 것이 정설이다. ‘정선아리랑’이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라는 것이 이러한 아리랑의 상징성을 말해준다. 19세기 중반에는 경복궁 중건 당시 일꾼들, 서민뿐 아니라 예술 단체였던 사당패가 궁중에서 연행되면서 아리랑이 한양에서 유행했으며, 경복궁 중건에 참여한 일꾼이 귀향하면서 지역의 아리랑으로 다시 꽃을 피웠다. 그리하여 강원도의 긴아라리, 자진아라리 엮음아라리, 경기도의 긴아리랑, 구조(舊調)아리랑, 본조(本調)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해주아리랑 등 지역·시대별로 다양한 리듬과 선율, 사설이 발달하면서 다양하게 전승되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대중화되어 가장 생명력이 강한, 우리가 즐겨 부르는 아리랑이 ‘본조아리랑’이다. ‘본조(本調)’는 1940년대 말 국악계에서 사용한 용어로, 음악적 원류나 본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랑의 확산 장르에서 본(本)·원(元)중심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다른 아리랑과 구분한 것이라고 한다.



01.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나운규 감독의 영화(아리랑)광고 포스터, 아리랑의 장르 확산과 대중화의 기점이 된 '본아리랑'은 이영화의 주제가에서 비롯되었다. ⓒ유네스코
02. 2018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의 이름은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참가자, 관중들에 대한 보호를 의미하는 수호(sooho)와 호랑이와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상징하는 랑(rang)을 담고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03. 2014년 북한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한 「조선민요 아리랑」ⓒ유네스코
04.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송되고 재창조되어온 대중적인 노래 장르이다 ⓒ유네스코
05. 미국인 선교사 H.B.헐버트가 1896년 채보한 아리랑 악보 ⓒ문경옛길박물관
06. 「대지」의 작가 펄 벅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The Living Reed)」라는 소설을 통해 아리랑을 담아냈다. ⓒ연합콘텐츠


    이렇듯 아리랑의 장르 확산과 대중화의 기점이 된 ‘본조아리랑’은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에서 비롯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대적 아픔을 담은 이 영화는 우리 민족 구성원에게 널리 알려졌고, 아리랑은 결속과 연대를 상징하는 민족의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또 나운규 감독과 단성사 김영환 감독이 아리랑의 가사와 곡조를 1920년대 중반의 트렌드에 맞게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혼종 어법인 왈츠풍 4분의 3박자로 편곡해 대중의 정서에 부합시킨 것도 지금까지 대중성과 확장성을 갖게 된 원인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아리랑의 생명력은 아리랑의 노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용, 문학, 연극, 축제 등 다양한 문화 예술 영역에서부터 상호명, 상품명 등 우리의 생활 문화 전반에 걸쳐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이주 동포까지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1971년에는 강원도 정선아리랑이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기예능 보유자를 인정하지 않아도 무형문화재 종목만을 인정할 수 있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2015년 9월 온 국민이 향유하는‘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3) 특정 보유자가 없는 대신 지역별로 정선아리랑보존회, 밀양아리랑보존회 등 50여 개의 전승 단체가 전통 민요의 보전과 계승을 위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 등 교육 현장에서 체계적인 아리랑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아리랑의 선율과 가치가 세대간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밀양아리랑 축제, 서울아리랑 페스티벌, 해외 아리랑 축제 등 국내외 다양한 아리랑 행사를 통해 한민족으로서 정체성과 연대를 강화 하고 아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금 아리랑의 생명력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18.2.9~25)에 북한이 참가함은 물론 남북한 단일팀 구성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한반도기’가 펄럭이며, ‘아리랑’ 응원가를 통해 남북한이 하나 됨을 전세계에 알리는 평화올림픽이 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또한 남북 간의 정치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아리랑4)의 유네스코 공동등재 등 다양한 문화교류정책을 통해 연대와 정체성이 남북에 스며드는 상시 교류의 장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3) 기능 또는 예능이 보편적으로 공유된 무형문화재를 지정하기 위해 문화재 보호법 시행령을 개정(2014년 12월)했고,
     그에 따라 무형법 시행(2016년 3월) 이전에 아리랑이 지정될 수 있었다. 4) 한국의 아리랑(2012년 등재), 북한아리랑(2014년 등재)



무형문화재 제도하의 아리랑

    아리랑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면서 법령의 관할하에 놓인 것을 두고 긍정적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의 본질인 ‘창의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리랑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후 지역의 아리랑 전승 단체들은 국가 또는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경쟁하고, 아리랑 관련 축제가 과열되어 상업화의 조짐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특정지역의 아리랑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그릇된 정책이 실행되기라도 하면 아리랑은 ‘소통과 연대’에서 ‘갈등’의 상징으로 변질될 것이다. 가수 윤도현이 부른 2002년 월드컵 응원가,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오마주 투 코리아>를 들을 때면 ‘하나되는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창의성의 원천, 구성원간 연대와 공감, 이것이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 이유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