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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을 잇고 세대를 잇고 전통을 잇다

2018-03-09

문화 문화놀이터


 




    매듭은 절대적 인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예술품이다. 가느다란 실이 모이고 엮이기를 거듭해 하나의 작품이 되기까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작업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인 매듭의 계보를 이어가기 위해 5대에 걸쳐 이 지난한 여정을 기꺼이 걷고 있는 매듭장 정봉섭 보유자의 삶에는 고유한 우리네의 아름다운 유산을 잇고자 하는 열정이 오롯이 담겼다.





5대를 이어온 매듭의 역사, 손끝에서 예술이 꽃피다

    숙명이라는 것이 있다. 거부할 수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모진 어려움을 겪고 극기의 과정을 통해 단단해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대를 이어 전수하는 것. 이런 것 들이 숙명의 면면이라고 할 수 있다. 매듭장 최은순 家는 우리 전통 공예인 매듭을 5대째 이어오며 매듭을 잇고 전통을 이어가며 이음의 가치를 엮어가고 있다.
    그 시작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매듭장들이 기능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던 광희동에서 태어난 정연수 선생은 매듭을 보고 흥미를 느껴 배우게 되었고 이는 곧 가업이 되었다. 우리의 전통 가내수공업 대부분은 작업의 특성상 혈연을 통해 전승돼 왔는데 정 씨는 부인 최은순 씨에게 매듭공예를 가르쳤고 자연스럽게 딸에게 이어졌다. 이들부부의 딸로 태어난 매듭장 정봉섭 선생은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났고 말귀를 알아들으면서부터 부모의 매듭 심부름을 했다. “부모님이 바쁘실 때 노끈을 돗바늘에 끼워 놓으시면 색깔별로 오색을 두 개씩 끼워서 작업하실 수 있게 도움을 드렸죠.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늘 부모님께서 작업하시는 것을 접했고 매듭이 제 삶이 되었습니다.”



좌)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매듭공예의 길을 묵묵히 이어온 정봉섭 선생의 손      우) 작업실 곳곳, 손때 묻은 매듭도구들이 정겹다.

    순응하듯 매듭을 받아들인 정봉섭 선생은 차분한 성격과 손재주를 타고난 덕분에 작업을 하는 인고의 시간이 마냥 어렵고 고되기만 하지는 않았다. 보통 노리개 하나를 작업하는 데 보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하루 10시간은 너끈히 앉아 집중해야 하며 한 가닥의 술(끈이나 매듭 끝에 다는 것)을 꼬는 데도 수백 차례 손길이 가는 사투를 벌여야 하지만 완성된 작품이 가지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정봉섭 선생을 매듭의 길에 매진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손에 옹이가 박히고 허리에 묵직한 통증이 오도록 힘겹게 작업해야 하지만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은 그야말로 비교불가한 한국미를 고스란히 담은 예술품으로 꽃피는 것. 매듭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아름다움에 스스로 반하고 감탄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걷다 보니 어느덧 1대인 아버지 정연수 선생, 2대인 어머니 최은순 선생, 3대인 정봉섭 선생을 거쳐 이제는 4대인 선생의 딸 박선경 전수조교, 5대인 선생의 손녀들이 매듭의 대를 잇고 있다.


가장 견고한 이음의 미학, 매듭

    매듭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다단하다. 한 올 한 올의 이음이 흐트러짐 없이 이어지고 결합되어 견고한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다. 매듭 미학의 절정은 바로 그 이음에서 비롯된다. 명주실, 모시실, 삼베실, 닥나무실, 털실 등이 재료로 쓰이는 매듭은 실타래를 풀어 오색물감으로 염색한 다음 굵은 끈목을 둘로 나눠 엮은 후 치렁치렁하게 술을 늘어뜨리는 공정을 거친다. 끈목은 다회(多繪)라고도 하며 둥근 동(圓)다회(끈으로 씀)와 납작한 광(廣)다회(띠로 씀)로 구분된다. 공정이 거듭 될수록 이음은 탄탄해지고 이음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매듭 고유의 미학이 오롯이 드러난다.


01. 정봉섭 선생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으로 규방공예의 맥을 잇고 후학 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02. 매듭은 가느다란 실이 모이고 엮이기를 거듭해 하나의 작품이 된다.


    “끈을 맺고 잇는 일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과도 흡사합니다. 예부터 ‘끈 떨어진 사람’이란 의지할 곳 없는 외롭고 가련한 처지를 이르는 것이었죠. 이처럼 매듭은 이음과 이음으로 만들어져 소중한 인연을 담은 한국의 정서를 손길로 드러내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단아하고 아기자기하며 매끈한 매듭의 이음이 돋보이는 한국 매듭은 <한중일 국제매듭전>에 초대되었을 때에도 단연 시선을 사로잡으며 호평을 얻었다. ‘손으로 빚은 작품이 가진 절정의 아름다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 전통공예의 멋스러움을 세계에 널리 알린 정봉섭 선생은 매듭의 가치를 높이며 잘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까닭에 매듭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선생의 딸과 손녀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우리 고유의 매듭이 명맥을 잘 유지해 또 다음 세대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기 때문. 특히 두 딸은 각종 국제 전시 등을 통해 유려한 우리 매듭의 가치를 알리며 국위선양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후학 양성에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또한 손녀들도 그런 할머니와 어머니의 열정을 본받아 또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 매듭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어 매듭의 미래는 밝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매듭. 매 가닥을 일일이 고(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고리처럼 매는 것)로 잇는 예술품이라 기계화가 득세하는 시대에도 규격화, 대중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술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매듭이다. 수백 번을 실로 매고 죄어 섬세하고 영롱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매듭은 하나의 끈을 서로 엮고 이어 완성하는 한국의 명품이다. 그 명품을 잇고 또 이어가는 정봉섭 선생의 노력이 매듭처럼 견고하고 귀하며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