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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왜 변화되고 있을까?

2018-04-03

교육 교육학원


교육은 왜 변화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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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EBS에서 교육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는데요 뉴턴과 아인슈타인, 헤르만헤세와 같은 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재조명하고 그들이 벗어나고 싶어했던 교육과 그들의 재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던 교육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시대가 흐를수록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도 변화가 생기고 그에 따른 교육의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해졌습니다. 교육은 왜 변화되어야만 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걸까요? 그 답을 다큐의 내용을 간추려보며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던 외로운 소년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8세에 입학하는 학교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12세에 입학을 했고,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 틈에서 고민이 많았을 이 학생은 친구들과 몸싸움까지 벌였죠. 이 학생의 이름은 아이작 뉴턴입니다. 이 시기에 만난 헨리 스톡스 선생님은 상처받은 이 아이를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이 소년의 운명도 달라졌고 많은 인류의 삶까지도 변화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뉴턴의 어머니를 설득하여 열 아홉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뉴턴이 과학을 좋아하며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 인류가 우주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에는 영국 왕립협회와 사회 분위기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왕립협회의 모토는 ‘눌리스 인 버바(Nullius in verba)’라고 하는데요, 이 말의 의미는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타인의 말이나 글을 그대로 믿지 말고, 실험과 관찰을 토대로 사실적인 내용을 수집하여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세상에 대해 알아내라는 뜻입니다. 
    또 한 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바로 일어나서 정답을 말해야 하고, 엄격한 규칙이 있고 그것을 어기면 가혹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는 학교. 선생님이 지식을 가르쳐 주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 읽고 외우는 수업, 딱 떨어지는 계산과 암기에만 집중하는 학교. 그러한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만 생각했던 이 소년의 이름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입니다. 늘 생각이 많았고 그래서 대답이 느렸던 이 소년은 다른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조치됩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기는커녕 문제아로 낙인찍혀 있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아이. 소년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스위스에서 공부를 하기로 합니다.
    그 당시 독일의 교육은 군대식 교육이었고 그는 주어진대로 배우는 것에 반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시험을 보았는데, 어학점수가 부족해서 입학이 좌절됩니다. 몇몇 선생님들은 아인슈타인의 재능을 아까워했기에 아라우에 있는 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후 다시 공과대학에 입학하라는 조언을 하게 되죠.  독일의 군대식 학교와는 전혀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의 아라우 학교에서 보낸 1년을 아인슈타인은 훗날 ‘천국에서 보낸 1년’이라고 회상합니다.
    ‘보고 생각하고 말하라’ 라는 신념으로 체험 학습을 중요하게 여겼던 프리드리히 뮐베르크 선생님의 지도로 독일에서는 문제아였던 아인슈타인이 이 곳에서는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학생들 개인의 개성을 존중했던 수업 방식을 취했기 때문인데요, 뮐베르크 선생님의 경우 인간을 ‘지식을 채우는 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가치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던 페스탈로치의 사상을 이어 받았기 때문입니다. 학생 개인의 강점을 살리고, 백과사전식 교육을 지양한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낯설고 새로운 교육방식이었지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지향해야 하는 방식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식과 관찰은 경험을 통해서만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죠. 



점차 변화하고 있는 교육방식

   우리나라도 불과 10여년 전까지 주입식 교육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가르쳤고, 아이들은 그대로 외웠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이는 서울대에서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의 공부방법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상위권 학생들의 공부방법은 놀랍게도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통째로 녹음하여 필기하고 그대로 달달 외우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강의 내용에 의문을 가지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는 경우, 오히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었기에 학생들은 그러한 학습방법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해요. 본래 상위권 학생들의 공부방법을 조사하여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뭔가 더 효과적인 공부방법을 공개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공부방법의 문제 이전에 평가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학습의 주도권이 학생들에게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수 많은 정보가 눈 앞에 펼쳐집니다. 정보는 정보일 뿐, 그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지식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경험하고 터득하는 방식이 아닌 검색하고 복사하고 붙여넣기를 한 후 프린트를 해서 제출합니다. 인터넷 상에 널려 있는 그 정보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그 수 많은 정보가 자기 자신의 지식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죠. 그 누군가는 원글을 작성하기 위해 의문을 가졌을테고, 오랜 시간 탐구했을 것입니다. 여러 번의 실패도 겪었을 것입니다.  뼈아픈 좌절감도 느꼈겠죠.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을 때 ‘내내 그 생각만 했다’고 했습니다. 천재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바꾸었던 그 천재들이 문제를 풀지 못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입니다. 걸으면서, 밥 먹으면서, 자면서도 생각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얇은 책 한권도 제자리에서 읽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면 결코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습니다. 이 시대 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에게 문제해결력을 길러주는 것이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정해진 답을 말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그 과정에 가치를 둘 수 있도록 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해주고 기다려준다면 아이는 생각의 바다에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