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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의 네 모서리에 깃든 의미를 찾아서

2018-04-13

문화 문화놀이터


태극기의 네 모서리에 깃든 의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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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에는 200여 국가가 존재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가 있다. 국기는 각 국가의 상징을 표현하는 도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기 도안이 주로 3색줄이거나 십자 모양, 해, 달, 별, 나뭇잎, 원 등이라서 한데 모아놓고 보면 비슷비슷하여 실별이 잘 안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국기만큼은 한 눈에 확 들어온다. 그 까닭은 독특한 태극문양도 있지만 네 귀퉁이에 배치된 4괘 때문이다. 네 귀퉁이까지 국기 도안을 이루고 있는 국기는 태극기밖에 없다.



左) 김구(金九)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주석이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梅雨絲.미우스 오그)신부에게 준 태극기이다. ⓒ문화재청
右)임시정보의 입법기관이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1호).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곧 바로 태극기를 국기로 천명하였다.ⓒ문화재청



최초의 태극기
    태극기가 최초로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1882년 5월 조미조약을 체결할 때였다는 설과 그해 9월에 박영효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特命全權大臣兼修信使)가 일본을 방문할 때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제작하여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로선 자료나 고종실록에 기록된 신빙성으로 보아 후자의 설이 더 설득력 있다. 박영효가 9월 20일 일행과 함께 제물포를 출발하여 9월 25일 일본 고베에 도착하자마자 시행했던 일은 항해 도중에 만들었던 국기를 숙소 니시무라(西村) 옥상에 게양하는 일이었다. 이 사실을 당시 일본의 유력 주간지 시사신보 10월 2일자에 보도됨으로써 최초의 태극기 탄생을 알린 셈이었다. 전국적으로 국기 사용을 하도록 한 시기는 그 이듬해 1883년 3월 5일이었다.


태극기의 의미
    『시사신보』 10월 2일 자에 보도를 읽어보면 국기 그림과 함께 국기를 만들게 된 배경과 국기 도안 설명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이때까지 조선에는 국기로 부를 만한 것이 없어 지난번에 탁지부를 방문한 청국의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는 청국의 국기를 본받아 삼각형의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야 하며 본국인 청국은 황색을 사용하나 조선은 중국의 동방에 위치하는 나라이므로 동쪽은 청색을 귀히 여긴다는 뜻에 따라 청색 바탕을 이용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이에 국왕은 분히 여겨 절대로 청국의 국기를 흉내 내지 않겠다하여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원(두 개의 소용돌이 모양)을 청색과 적색으로 그리고 국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역괘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 하였다고 한다.」 기사 내용을 보면 최초의 태극기는 고종이 처음부터 제작 의도, 도안, 의미, ‘조선국기’라는 국기 명칭까지 치밀하게 결정하고 나서 이를 박영효에게 그대로 실행토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01.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2호). 학도병들이 조국을 위해 몸바칠 것을 맹세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도 고이   간직해 온 태극기이다.ⓒ문화재청
02. 미국에서 광복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독립만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7호)ⓒ문화재청
03. 태극기 목판(등록문화재 제385호).태극기를 찍어내기 위해 목재에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목판이다.ⓒ문화재청
04. 1919년 3월 1일 전국 각지에 태극기 물결을 이룬 독립만세운동ⓒ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 귀퉁이 4괘의 의미
    시사신보의 태극기 그림을 보면 네 귀퉁이에 4괘를 선·간·진·리를 배치하였는데 박영효가 기록한 사화기략에 의하면 건·곤·감·리를 그렸다는 것으로 보아 괘 위치가 다르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화기략 대로 바르게 4괘를 배치한다면 아마도 리괘를 기준으로 진괘?감괘, 선괘?건괘, 간괘?곤괘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태극기의 네 귀퉁이에 배치된 4괘는 공간적·자연적 의미, 공간적·방향적 의미, 시간적·계절적 의미, 정신적·인성적 차원의 불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변적 의미라 함은 괘의 위치가 다르게 배치되어도 그 의미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건괘는 자연적·공간적 의미로 하늘, 공간적·방향적 의미로 남쪽, 시간적·계절적 의미로 여름, 정신적·인성적 의미로는 인(仁)이다. 우주의 으뜸을 하늘로 보고 가장 신선한 공간으로 여겼을 것이다. 곤괘는 자연적·공간적 의미로 땅, 공간적·방향적 의미로 북쪽, 시간적·계절적 의미로 겨울, 정신적·인성적 의미로는 의(義)이다. 하늘과 맥을 같이하는 땅에서 자연의 기본적 순응원리를 찾은 것이다. 감괘는 자연적·공간적 의미로 달 혹은 물, 공간적·방향적 의미로 서쪽, 시간적·계절적 의미로 가을, 정신적·인성적 의미로는 지(知)이다. 따라서 차가움과 어둠, 즉 음(陰)이라는 자연 질서를 품고 있다. 리괘는 자연적·공간적 의미로 해 혹은 불, 공간적·방향적 의미로 동쪽, 시간적·계절적 의미로 봄, 정신적·인성적 의미로는 예(禮)이다. 따뜻함과 밝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감괘의 조화를 뒷받침하는 양(陽)의 질서이다.


2020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응원단 붉은악마가 대형 태극기 응원을 하고 있다.ⓒ이미지투데이


네 귀퉁이 시대적 변천
    4괘는 1882년 9월 태극기가 처음으로 선보일 때부터 현재까지 불변 고정 배치되지 않고 시대적으로 위치를 달리한 것을 볼 수 있는데 3단계로 분류된다. 최초로 태극기를 창안한 초기에는 시사신보의 기사에서 보았듯이 4괘의 의미를 동서남북이라고 했다. 공간적·방향적 의미를 강조하였는데 구한말 은둔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가려는 고종의 의지가 강하게 표현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후 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 한일병합 되자 국권 상실과 함께 태극기 사용은 엄격히 규제되고 처벌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태극기 물결을 이룬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혁명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곧바로 태극기를 국기로 천명하였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태극기 형태가 어지럽게 발생되자 1943년 6월 29일 임시정부에서 ‘일정케 한 국기양식’을 마련하여 그동안 난립된 태극기의 여러 모습과 의미를 통일시켰다. 태극문양의 양(적색) 부분을 남성으로 하고 음(청색) 부분을 여자로 하였고, 4괘의 건괘는 하늘, 곤괘는 땅, 감괘는 달, 리괘는 해를 강조한 자연적·공간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지배, 불평등, 반자유, 반민주를 자연의 본래 이치로 돌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으로 탄생되었고, 여러 의견을 수렴하여 1949년 10월 15일 현재와 같은 태극기를 국기로 결정하였다. 막상 태극기를 국기를 정하고서도 국기법을 마련하지 못하다 보니 국기 게양에 관한 규정만을 상세하게 정하였을 뿐 태극문양과 4괘에 대한 의미를 명문화하지 못 하였다. 이로 인하여 태극기 네 귀퉁이 4괘의 의미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의미로 산만하기만 하였다. 그 후 2007년 ‘대한민국 국기법'이 제정되었으나 태극문양과 4괘에 대한 정의와 의미가 빠진 채, 국가상징물 해설 정도로 ‘건괘는 하늘, 곤괘는 땅, 감괘는 물, 이괘는 불’로 전하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국기법이 제정된 이상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물론 네 귀퉁이에서 숭고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 4괘의 의미까지도 법제화시켜 국민 정서를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