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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추억이 뒤섞인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밥

2018-04-20

문화 문화놀이터


역사와 추억이 뒤섞인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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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살기조차 힘든 50~60년대 세대들은 초등학교시절 소풍이나 운동회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평소보다 일찍 깨어 부엌에서 배어나는 김과 참기름 냄새에 식구들 모르게 조용히 방문을 열고 부엌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부엌문을 빠꼼이 열고 들여다본다. 엄마가 김 위에 하얀 쌀밥을 깔고 단무지, 시금치, 어묵 등을 놓고 둥글게 말아서 먹기 좋게 썰기 시작한다. 입에서 침을 꼴깍 삼킨다. 순간 엄마와 눈이 딱 마주친다.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엄마가 빙그레 웃으시며 김밥 썰고 난 꼬투리하나를 입에 넣어준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김밥 두 줄, 삶은 계란 두개, 사이다 한 병에 기분 최고다.



김밥은 밥에 여러 가지 속을 넣고 김으로 말아 싼 우리 전통음식이다. ⓒ셔터스톡


김, 신라시대 때부터 먹었다?
    김은 청태, 감태, 해우(海羽), 해의(海衣), 해태(海苔) 등 다양하게 불린다. 김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인 『삼국유사』에는 신라시대 때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650년경 전남 광양의 김여익(金汝翼)이 최초로 김을 양식했다고 한다. 김여익은 태인도에서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이용해서 김의 양식 방법을 고안했다고 한다. 이후 광양김은 궁중 진상품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전남 광양 태인동에는 김여익을 기리는 광양김시식지가 있으며 시도기념물 제113호로 1987년에 지정되었다.
    일설에는 그 이전 경남 하동 지방에서 한 노파가 섬진강 하구에서 나무토막에 김이 붙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대나무 등을 이용해 섶을 세워 양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1425년(세종7) 당시 경상감사 하연이 편찬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는 조선 초기 경남 하동 지방에서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429년 『세종실록』에 의하면 명나라에 보낸 품목 중에 해의(海衣)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태안군, 경상도 울산, 통래현, 영덕현과 전라도 지역에서 김을 궁중에 진상품으로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에는 김이 귀해서 김 한 천의 값이 목면 20필까지 오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김을 양식했다고 볼 수 있다.
    김은 칼륨 성분이 풍부하여 소화 작용을 도우며 나트륨 배출을 도와주는 기능이 있다. 또한 김의 타우린 성분은 간 해독 작용을 돕는다. 비타민 A와 요오드 성분, 칼슘 성분도 풍부하며,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옛날에는 전 세계에서 김을 먹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식사 때 김을 배식하였는데 검은 종이를 포로에게 먹였다고 전쟁 후 포로학대의 증거물로 김을 제출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복쌈(福) 문화의 산물, 김밥
    김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정월대보름 풍습 가운데 김이나 취에 밥을 싸먹는 풍습, 복 쌈(福)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쌈은 무엇을 싼다는 뜻이고 복쌈은 복을 싸서 먹는다는 뜻으로 정월대보름날 복을 기원하는 기복행위와 풍년을 기원하는 형태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배춧잎과 김에 밥을 싸먹는 것을 ‘복과’라 했다. 『열양세시기』에도 해의(海衣)에다 마제채(摩帝菜) 등 속을 싸서 먹되 많이 먹어야 좋다고 했다. 이것을 ‘박점’ 또는 ‘복쌈’이라 했다. 지역에 따라 정월대보름날 찹쌀로 밥을 해서 김에 싸서 먹고 이것을 복쌈, 볏섬이라 부르기도 했다. 김에 싼 복쌈을 많이 먹으면 볏섬을 많이 한다 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밖에 나와 친구들 간에 ‘나는 볏섬을 많이 먹었으니 올해 농사는 내가 최고가 된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는 정월대보름날 ‘김싸서 먹기’, ‘볏섬 끄랭이 싸먹기’라 하여 아침밥을 나물로 준비해서 김에 꼭 싸먹어야 하는 것을 ‘김쌈’이라 했다. 이 때 사먹는 김은 칼이나 가위로 자르지 않고 상에 놓인 김을 손으로 대충 잘라서 먹었다고 한다. 칼이나 가위로 김을 자르면 벼 목을 잘라 농사를 망친다하여 경계를 했다. 전라도 고창지역에서는 ‘노적 쌓기’라 하여 오곡밥을 지어 성주 앞이나 장독대에 오곡밥을 김에 싸서 갖다 올렸다. 이때에 노적쌈을 많이 쌓아야 그 해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 이처럼 쌈은 맛보다도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가 강하여 복쌈을 볏단 쌓듯이 차곡차곡 높이 쌓는 풍습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김밥은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임에 틀림없다. 오랜 역사의 복쌈 문화는 김밥의 일본 전래설을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한 근거라 할 수 있다.


01.쌈이란 무엇을 싼다는 뜻이 있으므로, 복을 싸서 먹었으면 하는 소박한 기원이 담겨 있다 ⓒ한식진흥원
02-03. 소고기김밥, 치즈김밥, 떡갈비김밥, 돈가스김밥,야채김밥 등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재료와 맛으로 변모하고 있는 김밥 ⓒ셔터스톡
04.충무김밥은 김에 밥을 말아서 양념한 갑오징어와 무를 곁들인 밥이다 ⓒ한식진흥원



통영 대표음식, 충무김밥

    충무(지금의 통영) 지역에 한 어부가 살았다. 그는 고기를 잡느라 끼니를 거르거나 술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는데, 아내가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김밥을 싸줬는데 잘 쉬어서 못 먹게 되자 밥과 반찬을 분리해 싸줬 다. 충무김밥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다. 그때 충무에서 많이 나는 꼴뚜기를 반쯤 삭혀 양념무침을 하고 통영에서 나는 멸치젓갈을 넣은 무김치를 반찬으로 했다. 그 후 꼴뚜기보다 구하기 쉬운 오징어로 반찬을 대신 했다. 이 충무김밥을 할머니들이 생계를 위해 미륵도나 사당도 등 인근 섬을 오가는 뱃머리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 후 통영의 뚱보할매가 ‘국풍80’에 충무김밥을 광주리에 담아 참가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통영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통과 추억이 담긴 소울푸드

    김밥의 큰 장점이라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포장이 간편할 뿐만 아니라 가지고 다니기도, 먹기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런데다 충분한 밥과 갖가지 고명이 들어 있어 고른 영양분과 함께 속을 든든히 채울 수 있으니 이런 금상첨화가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꼽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밥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랜 전통과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공동체의 안녕을 바라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기억하고 더욱더 계승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