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한복의 가장자리, 끝의 아름다움

2018-08-03

문화 문화놀이터


한복의 가장자리, 끝의 아름다움
''


 




    가장자리는 어떤 사물의 경계에 있는 부분이다. 다분히 중심이 아닌 외곽의 후미진 부분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한복에서 가장자리는 구석이거나 변두리가 아닌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끄는 날선 경계가 된다. 깃의 맨 끝에 달려있는 동정이나 소매의 맨 끝에 있는 끝동이 그러하다. 치마 아랫부분의 스란 역시 금직이나 금박으로 장식하여 의복의 가장자리에서 화룡점정을 이끌어낸다.  


가장자리, 눈길을 끄는 끝의 미학

    한복에서 가장자리에 다른 천을 대어 마무리를 하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 다른 소재를 사용하여 의복을 마감하는 방식은 봉제 상 가장자리의 올 풀림을 막고 더불어 장식하기 위함이다. 주로 깃이나 섶, 소매 끝, 밑단 등의 부분에서 보이는데 천이 아닌 모피를 쓰기도 하고 수를 놓거나 금박을 찍어 장식하기도 한다. 금박을 찍어 장식하기도 한다. 장식과 기능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묘수인 셈이다.
    고구려 벽화에도 등장하는 선장식은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저고리의 소맷부리에 다른 색의 천을 붙이는 끝동으로 남아있다. 끝동은 소매 끝 부분에 소매와 다른 색의 좁고 긴 천을 붙이는 것이다. 소매 끝동과 함께 깃과 겨드랑이 아래 곁마기부분까지 색 천으로 댄 것을 회장저고리라고 하는데 끝동을 달지 않은 민저고리에 비해 멋스럽고 만들기도 어려워 주로 신분이 높은 부녀들이 입었다.
     끝동에 자수를 하거나 금박으로 장식을 더하기도 하였다. 길고 좁은 공간에 작은 꽃무늬나 복을 비는 의미로 수복(壽福) 등의 문자를 넣어 꾸밈과 더불어 기원의 의미를 담았다. 끝동은 대개 여자 어린이는 붉은 색으로, 남자 어린이는 푸른 색으로 색을 정하여 의복으로 착용자의 성별을 추측할 수도 있다
.


01.영친왕비 삼회장저고리. 소매 끝동과 함께 깃과 겨드랑이 아래 곁마기부분까지 색 천으로 댄 회장저고리이다.
02.영친왕 화문주 토수. 토수는 추운겨울에 방한을 위해 소매 위에 덧끼우는 것으로 방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안에 모피를 덧대기도 한다.
03.영친왕비 화문단 부금 남스란치마. 스란치마는 무릎 아래와 도련 부분에 금박(金箔)이나 금직(金織)으로 상서로운 의미를 지니는 무늬를 장식하였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입는 의복인 심의(深衣)는 흰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가장자리를 둘렀다. 이와 유사한 학창의(鶴衣)도 있는데 마치 학과 같이 흑백의 조화가 특징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활옷이나 원삼(圓衫) 등의 궁중예복에서는 넓은 소매 끝부분에 색동으로 여러 색을 붙이고 마지막으로 흰색의 한삼을 연결하였다. 소매 끝까지 눈길을 뗄 수 없이 왕실의 격조를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깃 부분에 삼각형의 자투리 천을 접어 색색으로 연결한 잣물림으로 아기자기하게 장식하기도 하였다. 잣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주로 아이옷을 꾸미는데 사용하였다.
    상의뿐 아니라 하의의 가장자리도 눈길을 끄는 데 부족함이 없다. 여성 예복으로 갖추어 입었던 스란치마는 무릎 아래와 도련 부분을 돌아가며 금박(金箔)이나 금직(金織)으로 신분에 따라 용과 봉황, 화문(花紋), 도류(挑榴)와 수복(壽福) 등 상서로운 의미를 지니는 무늬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스란치마는 궁중뿐 아니라 상류층의 의례용 치마에서도 볼 수 있다.
의복의 가장자리에 천뿐 아니라 털을 두른 것도 볼 수 있다. 털은 귀한 재료였음에도 불구하고 겉이 아닌 안 쪽에 사용하거나 전체보다는 가장자리 부분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남녀 모두 가장자리 부분을 털을 두른 방한모를 쓰기도 하고 여성의 외출모인 아얌에서는 일부분만 누비거나 털을 두른 것을 볼 수 있다. 저고리 위에 덧입는 등걸이 종류인 배자(背子)에서도 안쪽에는 접하기 쉬운 토끼털을 사용하고 가장자리 일부분만 빳빳한 털로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한반도의 자연환경이 동물에서 털을 얻기가 쉽지 않았기에 귀하기도 하였지만, 드러내고 값비싼 털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의 모피 소비에 있어서 나타나는 과시 현상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자리, 제작과 관리를 위한 섬세한 배려

    의복에서 가장자리는 외부에 맞닿아 있다. 몸에 닿는 깃 부분이나 소매 끝, 배래 등은 착용을 하면서 땀이 배거나 더러워지기 쉽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에 천을 덧대어 오염을 방지하고 오염이 되면 떼어 내어 쉽게 세탁할 수 있었다. 한복에서 목을 둘러 감싸는 부분인 깃의 가장자리에는 흰색의 동정을 달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를 지나면서 저고리의 중요한 요소로 정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정은 가늘고 긴 흰색의 천으로 더러움이 타면 떼어서 쉽게 세탁할 수도 있는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01.『사례편람』 중 심의에 대한 내용.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입는 의복인 심의(深衣)는 흰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가장자리를 둘렀다.
02. 남바위는 이마·귀·목덜미를 덮게 되어 있는 방한모이다.
03. 심의(深衣)를 걸친 모습의 허전 초상
04. 전(傳) 황후 황원삼. 원삼 등의 궁중예복에서는 넓은 소매 끝부분에 색동으로 여러 색을 붙이고 마지막으로 흰색의 한삼을 연결하였다.
05. 치마 아랫부분의 스란은 금직이나 금박으로 장식하여 의복의 가장자리에서 화룡점정을 이끌어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얼굴 주변에 있어 이목을 끄는 데 일등 공신이다. 동정의 폭이 좁거나 넓거나, 또는 좌우 목선을 따라 길게 내려오거나 목에 밭거나에 따라 입은 이의 인상이 듬직하게도 예리하게도 보인다. 의복의 종류에 따라 저고리의 동정은 폭이 좁고 두루마기나 도포 같은 외의(外衣)에는 다소 넓게 만들어 안정감을 준다. 또, 시대에 따른 유행이 있어 조선 중기에 넓었던 동정은 조선 말기로 갈수록 폭이 좁고 좌우가 길게 내려오는 경향이 있어 당시의 미의식을 반영한다. 당의나 곁마기 같은 소례복 상의 소매 끝부분에는 흰색의 덧천을 달기도 하였다. 거들지라는 것으로 넓은 천을 덧달아 오염을 방지하고 세탁을 쉽게 하였다. 소매 가장자리에 거들지를 달아 예복으로의 위엄을 더할 뿐 아니라 관리를 용이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혼례(婚禮)에 입는 원삼(圓衫)이나 활옷을 보면 뒷목 부분에 둥그렇게 천이나 종이가 붙어있거나 무언가 붙어 있던 흔적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혼례복은 동네에 구비하고 빌려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신부의 머리낭자가 의복에 닿아 머릿기름이 묻는 것을 방지하고자 흰색을 붙여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귀한 의복을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입기 위한 섬세한 배려의 하나였다.
    한복에서 여자는 하의로 치마 아래에 바지를 입었는데 조선 후기에 치마를 걷어 치마 아래로 바지가 보이도록 입는 것이 유행하였다. 바지 무릎 아래 부분을 누비로 장식하거나 고급 소재로 만들기도 하였다. 바지의 허리끈을 묶는 부분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분홍색이나 남빛의 고운 색 천을 좁게 덧대어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허리부분이므로 쉽게 닳을 수 있는 부분을 보강하는 역할도 있지만 옅은 바탕색과 대조되어 강렬한 장식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색색의 천을 대거나 자수를 놓고 금박으로 장식하지 않더라도 오롯이 바느질만으로도 한복의 가장자리는 눈길을 끄는 데 부족함이 없다. 모시나 면으로 홑옷을 지을 때는 겹으로 만들 때와 달리 곱솔로 하는데, 의복 가장자리의 시접이 가늘게 비치는 것이 큰 매력이다. 요즘에는 손이 아닌 재봉틀로 하면서 ‘깨끼’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홑겹의 가장자리를 한 번 접어서 박고 시접을 완성선에 최대한 가깝게 깎아 낸 후 다시 접어서 박는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홑옷은 가장자리 선이 날렵하게 살아 있어 특별한 장식 없이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선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