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한국전쟁이 낳은 퓨전 음식 부대찌개 인문학

2018-06-27

문화 문화놀이터


한국전쟁이 낳은 퓨전 음식 부대찌개 인문학
''


 




    2013년 2월 3일.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의 숨은 비밀 하나가 풀렸다. 의정부지법 제30 민사부(재판장 양사연판사)는 의정부시 의정부1동 부대찌개 원조가 ‘원조 오뎅식당’이라고 판시했다. 부대찌개 할매로 불렸던 허기숙 씨는 1963년부터 의정부시 일대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판매했다. 1968년 5월에 영업허가를 받아 ‘오뎅식당’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한다. 이때 미군부대에서 공급되는 고기와 햄 등을 사용하여 볶음요리와 찌개요리를 판매하는데 이게 단골 사이에서 ‘부대찌개’로 불린다. 이 찌개는 훗날 한국 음식사에 한 획을 긋는 의정부부대찌개의 대명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꿀꿀이죽과 부대찌개

    부대찌개의 선배는 ‘꿀꿀이죽’. 한국전쟁 어름에 태어난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음식이다. 꿀꿀이죽은 한식이 미군부대의 짬밥과 만나면서 형성된 퓨전한식이라 할 수 있다.
    휴전 이후 60년대 초까지 국내 경기는 최악. 거지가 지천으로 깔렸다.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문화도 별로 형성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소시지, 햄, 베이컨 등은 ‘꿈의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각종 복지단체는 공터에서 미군부대 짬밥을 죽처럼 쑤어서 꿀꿀이죽이란 이름으로 나눠주었다. 꿀꿀이죽은 국내 여러 미군부대를 축으로 각기 다양한 부대찌개 스타일로 발전하게 된다.




    많은 이들은 꿀꿀이죽과 부대찌개의 차이를 잘 모른다. 일단 라면의 유무로 판별하면 된다. 라면이 없으면 꿀꿀이죽. 대신 거기엔 미국산 정통 소시지류가 들어간다. 훗날 의정부와 송탄 등 경기도권 부대찌개에는 라면, 민찌(갈아낸 소고기), 고염의 수입 가공육이 들어갔다. 그래서 초창기 부대찌개는 ‘부대고기’로 불렸다. 당시 소시지류는 너무 짜고 느끼했다. 미국의 맛이 한국 맛이 되는 과정에 잦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고추장, 묵은지, 양배추, 양파, 파 등 재료를 하나씩 가감하는 과정에서 지금 스타일이 완성된다.
    부대찌개가 지금처럼 롱런할 수 있었던 건 미국산 소시지류가 ‘고염’인 탓도 있다. 끓는 과정에 짠 소시지류가 기본간이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짠 국내산 소시지류로는 그게 어렵다. 물론 별도 양념장으로 간을 맞춰야 한다.

    지금도 의정부 토박이 식당은 수입 소시지류는 물론 묵은지와 보리고추장을 꼭 넣는다. 그래서 더 얼큰하고 걸쭉하다. 반면 ‘송탄식’은 이와 다르다. 묵은지 대신 양배추를 넣는다. 심지어 치즈까지 고명으로 올려준다. 부대찌개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화 되지 않았다. 한국산 소시지류가 등장하면서 전국음식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급기야 98년 의정부에 부대찌개골목이 생긴다.
    이 밖에 동두천 생연동에 있는 ‘호수식당’은 부대볶음을 특화시켰다. 국물 없이 햄과 소시지, 채소가 자작하게 볶아진 형태. 전북 군산시 나운동에 있는 ‘비행장정문부대찌개’의 묵은지 부대찌개는 햄버거 패티라는 상상치 못한 재료가 들어가 있어 눈길을 끈다.  


01. 미군이 피란민 어린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는 모습    02.경기가 최악이던 60년대 초까지 꿀꿀이죽은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03. 칼칼한 국물에 푸짐한 햄과 소시지가 잔뜩 들어간 부대찌개는 서구의 스튜와도 닮아있다.



존슨탕과 갱시기

    1970년 서울 이태원에서 또 하나의 재밌는 탕이 태어난다. ‘바다식당’ 주인 박점순 씨가 내놓은 ‘존슨탕’이다. 부대찌개와 존슨탕은 어떤 관계일까? 개업 4년 전인 1966년 방한한 린든 B.존슨 대통령이 부대찌개를 맛본다. 그 부대찌개를 스토리텔링하기 위해 대통령의 성을 따서 ‘존슨탕’으로 부른다. 다른 곳과 달리 묵은지 대신 양배추, 소고기 양지머리, 감자, 고명으로 파채를 올리고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필자는 부대찌개와 비슷한 포스의 한식 중 하나를 ‘갱시기’로 생각한다. 갱시기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한식의 출발점부터 챙겨봐야 한다. 모르긴 해도 ‘비빔밥’과 국밥’일 것 같다. 비빔밥도 아니고 국도 아닌 메뉴, 그게 유독 대구경북의 별미로 사랑을 받아온 갱시기다. 갱시기는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접경에서 피어난‘경계의 음식’. 갱시기는 밥도 아니고 국도 아닌 상태다. 갱시기는 그래서 비빔밥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갱시기는 만능키 메뉴였다. 이웃 아낙네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먹거나, 주당 남편의 쓰린 아침 속을 달래주기 위해 투박하게 끓이던 ‘패스트푸드’였다. 남은 반찬을 하나씩 들고 한 집으로 모여 ‘합식(合食)’했다. 한국형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 와서 나눠 먹는 파티)’ 메뉴라 할 수 있다. 




수도원의 소시지와 칠곡 꿩부대찌개

    부대찌개 역사에서 소시지와 햄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 크다. 한국 가공육의 연원을 파고들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럽형 소시지와 햄을 소개한 칠곡군 왜관 읍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만나게 된다. 원래 수사들이 먹고 신도들에게 나눠주던 선물이었던 ‘수도원 표 소시지’는 육가공산업이 일천했던 1970년대만 해도 왠지 ‘성물(聖物)’ 같았다. 시중에는 소시지, 햄류가 나오기 전이었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입소문 덕분에 교인들의 주문량이 늘어났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판매하자는 의견이 나와 ‘분도(베네딕도의 한자 음역)식품’을 설립한 것. 이 소시지가 세인들에게 선보이게 된 건 2011년. 그해 8월 소시지를 만들 수 있는 작업장이 수도원 안에서 밖으로 옮겨졌다. 추가적으로 시중에도 유통될 수 있도록 경북도 식품가공업체로 등록했다. 왜관수도원 바로 옆 분도식품을 찾았다. 독일 소시지의 원형을 현지에서 배워온 분도식품의 책임자인 박요셉 수사를 작업장 한편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 수도원에서 판매되는 소시지는 모두 3종(마늘부어스트·겔브부어스트·바이스부어스트). 그 수도원 바로 옆에 미군부대 캠프캐럴이 있다. 부대 후문 앞에 있는 한미식당도 90년대까지는 김치, 라면, 소시지, 체다치즈 등이 들어간 ‘캠프캐럴식 부대찌개’를 팔았다. 치킨치즈라면, 비프치즈라면, 핫도그라면…. 미군들은 라면을 ‘코리안 스파게티’로 이해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 국물, 그들은 외면한다. 국물은 버리고 남은 사리만 먹는다.
    그런데 지난해 6월 1일 칠곡군 왜관읍 호국의 다리 입구에서 열린 ‘호이(칠곡 대표 캐릭터)푸드페스티벌’에서 전격 공개된 ‘호이부대찌개’. 모르긴 해도 다양하게 발전해 온 한국 부대찌개 역사의 후미를 차지하는 막내인 셈. 팔공산 한티재 가는 도로변에 있는 ‘선녀와 나무꾼’은 호이푸드페스티벌에서 ‘꿩맑은 부대찌개’를 내놓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레시피를 들여다봤다. 콩나물, 쑥갓, 부추, 양파, 6가지 버섯, 국내산 비엔나소시지와 프랑크소시지를 120g씩 결합시켰다. 하지만 묵은지와 고추장은 넣지 않았다. 방금 발라낸 꿩 뼈에 무와 파만 넣고 40분 정도 끓여낸 물을 육수로 배합했다. 마지막엔 다진 청양고추 투입. 처음 볼 때는 맑은 국물요리인 일본 나 베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시식하면서 그런 선입견이 모두 사라졌다. 의정부 스타일과 확연히 구별되는 부대찌개였다.
    꿩부대찌개 외에도 동태부대찌개, 오리능이부대찌개 등 다양한 재료로 변주하는 부대찌개의 맛깔나는 유혹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