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흥부자 한국인의 즐거운 워라밸 조선시대 별감 & 현대 파티플래너

2018-08-17

문화 문화놀이터


흥부자 한국인의 즐거운 워라밸 조선시대 별감 & 현대 파티플래너
''


 




   이거 난감하다. ‘주 52시간 근무’로 여가시간이 늘어 났는데 어떻게 써야할까? ‘저녁이 있는 삶’, 즐거움으로 채울 수는 없을까? 파티플래너는 일밖에 모르는 인생을 놀이의 신세계로 안내한다. 클럽파티,핼러윈 파티는 무료한 일상에 통통 튀는 활력을 제공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파티플래너가 활약했다고 한다. 바로 ‘승전놀음’의 주인공, 별감이다.


파티는 서구문화? 조선 사람도 즐겼다!

    파티플래너는 컨셉, 프로그래밍, 섭외, 장식, 진행 등 파티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직업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고 여가시간이 늘어난다지만 그 자체로 삶의 질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요컨대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파티플래너는 ‘저녁이 있는 삶’을 ‘여흥이 있는 자리’로 이끌어 인생에 통통 튀는 활력을 제공한다. 클럽파티, 핼러윈파티, 졸업파티… 오늘날 한국인이 즐기는 파티문화는 서구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파티와 오버랩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는 없었을까? 흥이 터지는 그 순간, 그 자리가 바로 파티다. 우리 조상들이 즐긴 연회와 잔치가 여기에 해당한다. 좀 더 규모를 키우면 놀이판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파티플래너’가 이 놀이판에서 활약했다.


파티플래너는 ‘저녁이 있는 삶’을 ‘여흥이 있는 자리’로 이끌어 인생에 통통 튀는 활력을 제공한다.

    “화려가 이러할 제 놀인들 없을소냐/ 장안소년 유협객과 공자왕손 재상자제/ 부상대고 전시정과 다방골 제갈동지/ 별감 무감 포도군관 정원사령 나장이라/ 남북촌 한량들이 각색 놀음 장할시고/ 공물방 선유놀음 포교의 세찬놀음/ 각사 서리 수유놀음 각집 겸종 화류놀음/ 장안의 편사놀음 장안의 호걸놀음/ 재상의 분부놀음 백성의 중포놀음/ 각색 놀음 벌어지니 방방곡곡 놀이철이구나.” 19세기 풍물가사 <한양가(漢陽歌)>의 한 대목이다. 당시 서울 풍속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사람들이 즐긴 놀이들을 꼽고 있다.
조선 하면 도포자락 휘날리는 양반들이 ‘공자왈 맹자왈’ 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쩐지 고리타분하고 숨막힐 것 같은데, ‘한양가’가 묘사한 저잣거리는 의외로 활기가 넘친다. 산으로 강으로 꽃놀이, 뱃놀이도 다니고 방방곡곡 온갖 놀음들이 흐드러졌다. <한양가>는 계속해서 조선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놀았는지 조명한다. 그 사례로 길고 상세하게 소개한 것이 ‘승전놀음’이다. 여기서 ‘승전(承傳)’은 왕명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이 놀음의 주역은 바로 궁중 별감이었다. 



붉은 옷에 초립을 쓴 장안의 왈자

    별감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사극 속 궁궐 장면을 보면 붉은 옷 입고 초립을 쓴 사내들이 공연히 임금 주변을 서성인다. 이자들의 정체는 아리송하다. 별감은 사실 궁중 액정서(掖庭署)란 곳에 소속된 잡직(雜職)이었다.
    “액정서는 왕명의 전달과 알현,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궐문 자물쇠와 열쇠의 관리, 궁궐 마당의 설비 등을 임무로 삼는다.” 『경국대전』 ‘이전(吏典)’에 나오는 액정서와 별감의 임무다. 하찮고 시시콜콜한 일들이다. 그런데 별감의 진가는 따분한 궁궐이 아니라 폭력과 유흥이 난무하는 뒷골목에서 드러난다.



신윤복의 『혜원 전신첩』 중 <야금모행>. 별감은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조선의 유흥문화를 주도했다.

    송만재의 한문시 <관우희(觀優戱)>에서 별감은 ‘붉은 옷에 초립을 쓴 장안의 왈자’라고 일컬었다. ‘왈자(曰者)’는 화류계 인사를 말한다. 별감은 ‘노는 남자’였다. 저잣거리의 유흥문화를 그들이 주도했다. 승전놀음이 19세기 최고의 놀이판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별감이 기획하고 연출한 ‘조선판 야외파티’였다. “구경 가자 구경 가자 승전놀음 구경 가자/ 북일영 군자정에 좋은 놀음 벌였구나/ 눈빛 같은 흰 휘장과 구름 같은 높은 차일/ 각 영문 사촉롱을 빈틈없이 달아놓고/ 난간 밖에 춘화 가화 붉은 비단 허리 매어/ 빙문진 유리병에 가득히 꽂아 놓고/ 백동타구 옥타구며 백동요강 은재떨이/ 왜찬합 당찬합과 아로 새긴 교자상과/ 모란병풍 영모병풍 산수병풍 글씨병풍/ 홍융사 구멍 뚫어 이리저리 얽어매고.” <한양가>는 마치 카메라로 촬영하듯이 승전놀음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도입부는 파티플래너의 사전준비에 해당한다. 우선 무대장식이 화려하다. 경치 좋은 정자에 새하얀 휘장, 오색 등롱, 갖가지 병풍으로 한껏 모양을 낸다. 소품은 사치스럽다. 침을 뱉는 타구와 볼일 보는 요강마저 백동이요, 옥이요, 은이다.
    “금객 가객 모였구나. 거문고 임종철이,/ 노래의 양사길이, 계면의 공득이며/ 각생 기생 들어온다. 예사로운 놀음에도/ 치장이 놀랍거든 하물며 승전놀음/ 별감의 놀음인데 범연히 치장하랴/ 백만교태 다 피우고 모양 좋게 들어온다/ 내의원 침선비며 공조라 혜민서며/ 늙은 기생 젊은 기생 명기 동기 들어온다.” 이제 예인(藝人)들을 들일 차례다. 큰 놀이판에 공연이 빠질 수 있나? 잘 나가는 소리꾼과 악공, 그리고 기생들이 군중의 환호와 함께 입장한다. 기생들은 어여쁘게 치장하고 ‘백만교태’ 피우면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동양월 밝은 달의 밝고 밝은 추월이!” 진행자도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간드러지게 소개한다.
    기생은 파티의 ‘셀럽(celebrity의 줄임말)’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기생은 민간의 스타이자 명사였다. 노래, 춤, 악기 등 예능으로 연회의 흥을 돋울 뿐 아니라 놀이판에서도 분위기를 띄우는 존재였다. 그럼 <한양가>는 왜 기생들의 승전놀음 출연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조선 후기에 기방을 장악한 것은 왈자들이었다. 지방에서 재능 있는 기생이 올라오면 왈자가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일을 알선했는데 그 중심에 별감이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연예기획사 경영자인 셈이다.



01. 무예별감 군사들의 오방진 장면    02. 신윤복의 『혜원 전신첩』 중 <쌍검대무>. 승전놀음의 대미를 장식한 것도 기생들의 검무였다.
03. 클럽파티.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늘어난 여가시간. 파티는 저녁이 있는 삶을 즐겁게 채워준다.
04.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 와서 나눠 먹는 포틀럭파티가 하나의 여가문화로 등장했다.
05. 19세기 풍물가사 <한양가>. 조선판 야와파티 격인 별감들의 승전놀음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조선을 흥겹게 달군 야외파티, 승전놀음

    “관현의 좋은 소리 심신이 황홀하다/ 거상조 나린 후에 소리하는 어린 기생/ 한 손으로 머리 받고 아미를 반쯤숙여/ 우조라 계면이며 소용이 편락이며/ 춘면곡 처사가며 어부사 상사별곡/ 황계타령 매화타령 잡가 시조듣기 좋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면 놀이판은 흥겹게 달아오른다. 악공들의 연주에 ‘쑥대머리’ 군중들은 머리를 끄덕끄덕, 눈을 까막까막하며 황홀하게 빠져든다. 춘면곡, 어부사, 상사별곡, 매화타령 등 12가사는 기방에서 선호한 레퍼토리다. 우조, 계면, 소용, 편락 같은 가곡도 빼놓을 수 없다. 풍악이 울리는 사이에 익살꾼이 섞여 앉아 신소리를 늘어놓는다. 클럽파티의 ‘디제잉’이랄까. 흥은 점점 더 고조된다. “춤추는 기생들은 머리에 수건 매고/ 웃영산 늦은 춤에 중영산 춤을 몰아/ 잔영산 입춤 추니 무산 선녀 나려온다/ 배떠나기 북춤이며 대무 남무 다 춘 후에/ 갑사 군복 홍수 달아 남수화주 긴 전대를/ 허리를 잔뜩 매고 상모단 노는 칼을/ 두 손에 빗겨 지고 잔영산 모든 새면/ 항장의 춤일런가 가슴이 서늘하다.” 기생의 춤사위는 승전놀음의 백미였다. 웃영산에서 잔영산까지 영산회상의 변주에 따라 춤이 갈 수록 빨라지고, 서도민요 배따라기와 어우러진 북춤에 이르면 놀이판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피날레는 검무(劍舞), 곧 칼춤의 몫이었다. 클럽파티에 ‘비보잉’이 있다면, 승전놀음엔 검무가 있었다. 항우가 베푼 홍문의 연(宴)에서 항장이 유방을 노리고 칼춤을 추는 듯 서늘한 한기가 가슴에 꽂힌다. 그 소름 돋는 전율과 함께 승전놀음은 막을 내린다.
    별감은 조선 후기에 도시가 발달하고 시장이 확산되며 나타난 유흥문화의 총아였다. 유교윤리와 신분질서에 억눌려온 조선 사람들은 부의 과실을 문화적으로 향유하려고 했다. 별감들은 기생, 악공, 소리꾼들을 모아 놀이판을 벌이면서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물론 기방과 도박장에서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다가 패가망신하는 부작용도 적잖게 초래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흥부자’다. 노는 게 꼭 유흥, 음주가무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내면의 흥을 자연스럽게 발산할 수 있다면 누구나 즐거운 ‘워라밸’을 누릴 수 있다. ‘조선시대 파티플래너’ 별감처럼 넘치는 흥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다. 파티가 별건가? 너와 나의 흥이 터지는 유쾌한 만남에 일상이 파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