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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희망 위에 일으켜 세우다

2018-09-13

문화 문화놀이터


문화재, 희망 위에 일으켜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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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지진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던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도 큰 지진이 발생했다. 수능을 일주일이나 연기할 만큼 큰 피해가 난 포항 지진은 포항을 비롯해 경주와 영덕 등의 지역 문화재에도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근처에 있던 전문가들이 신속하게 문화재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조치를 했다. 그들 덕분에 문화재들은 비교적 큰 피해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 바로 문화재 119인 ‘문화재돌봄사업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문화재 119, 문화재돌봄사업단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부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달래보려고 하지만, 이미 울음을 터뜨려 버린 아이는 도무지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원하는 것을 가져다줘도 소용없다. 급기야 부모는 더 많은 시간과 약속을 쏟아 부은 뒤에야 겨우 아이를 달랜다. 문화재를 돌본다는 것은 어쩌면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잠시라도 관심과 사랑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해를 입은 다음에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려 해도 큰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문화재에 대한 단순 보존이 아닌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한 예방과 관리.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문화재는 사후 보수 중심으로 관리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상시관리와 경미 보수를 위해 지난 2010년, 본격적으로 문화재 상시관리사업을 시작했다.
전국 5개 광역시·도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된 문화재상시관리 사업은 그 역할과 범위의 확장을 거듭하며 전국 21개 규모의 문화재돌봄사업단(이하, 돌봄사업단)으로 성장했다. 사업단의 전국모임인 (사)한국문화재돌봄협회(이하, 돌봄협회)를 이끄는 진병길 협회장은 사전 예방으로서의 문화재 관리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역사를 전공한 진병길 협회장은 지난 25년간 경주에서 신라문화원을 운영하면서 시민단체 차원의 다양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방과 관리의 필요성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뭐든 이미 망가진 후에 고치려면 큰 비용과 시간이 듭니다. 문화재 역시 마찬가지죠. 문화재를 상시 관리하고 가벼운 수리를 그 자리에서 진행한다면 큰 비용 없이도 문화재의 수명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돌봄사업은 이렇게 문화재 파손에 대한 예방 관리와 지진과 같은 응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쉽게 말해 ‘문화재 119’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화재돌봄사업단은 6,500여 개 이상의 문화재를 700여명의 직원들이 상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119와 같이 즉각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는 더욱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문제는 보존과학, 고건축, 고고학 등에 전문소양과 기능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진병길 협회장은 문화재를 수리하는 일만큼 사람을 키워내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수리 보존 분야에 준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실무 역량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진, 상처를 넘어 희망의 경험으로

    이렇게 훈련되고 준비된 돌봄사업단이 빛을 발한 것은 2016년 9월 12일에 일어난 경주 지진에서였다. 당시 경주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에 이어 태풍까지 상륙하고 있었다. ‘노천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하고, 기와지붕 구조의 한옥으로 둘러싸인 경주로서는 최악의 위기였다. 특히 첨성대, 대릉원, 월정교가 있는 한옥 밀집 지구인 ‘고도보존육성지구(황남동과 인왕동 일대)’의 피해가 컸다. 한옥은 나무와 흙으로 지어져 서까래나 기둥에 물이 스며들면 썩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필요했다. 경주 시민들은 큰 상처와 함께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돌봄사업단은 위기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먼저 진병길 협회장은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경주 돌봄사업단에 소속된 직원들과 2인 1조로 팀을 구성해 경주뿐만 아니라 포항, 영덕, 영천, 청도 등 주변 지역의 문화재 100여 곳에 대한 긴급 점검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흘 뒤인 16일에는 피해를 본 50여 곳의 문화재에 대한 응급복구를 진행했다. 평소에도 상시로 문화재를 돌보고 있었기에 지진 이후 신속하게 문화재에 대한 피해 파악과 복구를 할 수 있었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19일부터는 전국에 있는 돌봄사업단이 경주로 모였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로지 문화재 보존에 대한 열의와 사랑을 가지고 돌봄사업단의 와공기능자, 조공 등 50여 명이 모였다. 모두 돌봄협회에서 실무교육을 함께 받던 이들이었다. 단원 들은 처음 2주간 문화재 응급 및 긴급복구가 필요한 숭덕전, 양산재, 충의당 등 15곳의 문화재 파손 현장에 투입돼 복구작업을 했으며, 이후 6주간은 고도보존육성지구의 복구를 진행했다.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기업의 성금과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군의 지원이 이어졌다.
    “한번 올라가면 식사 때가 될 때까지 지붕에서 내려오지도 않을 정도로 온종일 복구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단원들의 허리와 다리에서 파스가 마를 날이 없었죠. 이렇게 진행된 복구사업은 11월 4일이 돼서야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두 달간 한옥 마을의 골목골목을 누비다 보니 해단식을 하고 각자의 지역으로 흩어질 때, 마치 고향을 떠나는 것처럼 아쉬워했습니다.”
돌봄사업단이 보여준 희생과 열정은 지진으로 무너진 문화재와 한옥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마저 일으켜 세웠다. 무엇보다 주민들과 돌봄사업단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상처가 아닌 희망의 경험이었다. 힘을 합치고 똘똘 뭉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경험.
    경주 지진에서 쌓인 경험은 2017년에 발생한 포항 지진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지진 발생 후 3시간 30분 만에 포항을 포함해 경주와 영덕까지. 무려 87곳의 문화재의 상태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문화재청을 비롯한 행정기관에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그 리고 다음날부터 응급복구를 시작했다. 당시 서울에 있던 진병길 협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포항으로 내려가는 동안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그 동안 쌓인 경험과 순발력을 발휘해 문화재 119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진병길 협회장은 문화재 119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좋은 일자리 창출의 창구로써 문화재 돌봄사업을 강조했다.
    “돌봄사업이 문화재 119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문화재 관리부터 전통가옥 수리와 전문 모니터링까지, 꾸준한 직무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키워냈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받고 지역으로 돌아간 인재들은 문화재뿐만이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재가 국가와 지역의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소중한 유무형의 콘텐츠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문화재 관리와 활용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예산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병길 협회장은 이렇게 창출될 일자리에 젊은 세대가 도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대한민국의 희망인 청년들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전통이 잘 계승되고 튼튼히 일으켜 세워지기를 함께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