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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보양식, 한 그릇의 추어탕

2018-09-14

문화 문화놀이터


가을 보양식, 한 그릇의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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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들이 아시아인의 국적을 잘 구별하지 못하듯, 아시아인들도 유럽인들의 국적을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을 구별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데 사람이 동물을 구별하는 것은 더더욱 쉬운 것이 아니다. 아시아 코끼리와 아프리카코끼리, 물개와 물범, 해달과 수달, 부엉이와 올빼미를 구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역시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이름뿐만 아니라 생김새마저 비슷해서 미꾸리를 방언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둘은 서로 다른 물고기이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같은 말, 다른 말?

    린네의 생물분류법에 따르면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잉어목 미꾸리과에 속한다. 그러나 형태와 서식지, 산란기 등의 차이가 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출간된 『담수어류도감』에도 이러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서유구(1764∼1845)가 쓴 『전어지(佃漁志)』 ‘니추(泥?) 밋구리’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밋구리 또는 추(?)는 세 가지가 있다. 해양에서 난 것을 해추(海?)라 하는데, 고래의 다른 이름이다. 큰 강에서 난 것을 강추(江?)라 하고, 도랑의 얕은 진흙속에서 난 것을 니추(泥?)라 한다.’ - 『전어지』 中泥? 밋구리
    당시 한글로는 ‘밋구리’라 적었으며 이것은 서식지에 따라 강추와 니추로 구별된다. (해추는 고래의 별명이며 ‘고리’에서 그 모양새가 ‘추(?)’와 비슷하다고 언급한다.) 특히 “니추(미꾸리)의 모양을 묘사하면서 침방울이 있는데, 이것이 침이 되어 저절로 흘러내려 몸에 젖어 묻으니, 매끄러워서 빨리 붙잡기가 어렵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담수어류도감』과 『전어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미꾸라지(좌)와 미꾸리(우)는 잉어목 미꾸리과에 속하지만 형태와 서식지, 산란기 등의 차이가 있다.

    이렇듯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모양이나 이름이 비슷해 보일뿐 별개의 물고기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크기가 작은 편이라 요리 방법이 제한적인데 어죽, 탕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추탕, 추어탕은 같은 음식, 다른 음식?

    앞서 언급한 『전어지』에는 “진흙 속에서 구멍을 파고 사는 것은 다른 맑은 물에서 사는 것과 같이 섞어 탁한 진흙을 다 토할 때를 기다렸다가, 국을 끓이거나 고와서 먹으면 진기한 맛이 난다.”라고 적었다. 음식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현재의 추어탕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꾸라지가 음식명칭으로 등장한 것은 이규경(1788∼1863)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온 ‘추부두탕(鰍豆腐湯)’이다. 직역하면 ‘미꾸라지 두부탕’일 텐데 솥 안에 두부와 미꾸라지를 넣고 천천히 끓이면 미꾸라지들이 두부 사이로 들어가고 이것을 잘라 참기름에 지지고 메밀가루와 계란 부친 것을 섞어 탕을 끓인 음식이다. 이에 대해서 『조선요리무쌍신식제법』에서는 ‘별추탕(別?湯)’이라 하여 미꾸라지가 두부에 들어가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언급하며 두부를 만들 때 해감을 한 미꾸라지를 넣고 두부를 만든다고 기록했다.
    추어탕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람에 따라서 추탕이라고도 하고 추어탕이라고도 부르는데 추탕과 추어탕은 미꾸리와 미꾸라지처럼 별개의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명칭의 차이를 지역적 용어의 차이, 미꾸리와 미꾸라지의 재료 차이, 미꾸라지를 통째로 쓰냐 갈아서 쓰냐의 차이 등으로 그 둘을 구별하기도 한다.


01. 전어지  02. 1989년 9월 30일 간행된 어류시리즈 우표 중 ‘수수미꾸리’    
03. 미꾸라지는 7월에서 11월까지가 제철로 이때가 가장 살이 찌고 맛이 좋아 가을철 시식으로 많이 이용한다.
04.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푹 고아 살만 바르거나 뼈째 곱게 갈아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양념하여 끓인 토속음식이다.
05.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함께 무청시래기를 주재료로 만든다.


    근대 신문에 언급된 요리명은 추탕과 추어탕이 같이 쓰이고 있다. 추탕은 근대잡지 『개벽』에서 1923년에, 추어탕은 『별건곤』에서 1929년에 언급된다. 신문에서 추탕과 추어탕이 혼용되어 쓰이다가 1950년대 이후 추어탕이란 용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두 개의 용어가 모두 등재되어 있는데 추탕은 “고추장을 푼 육수에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두부, 유부, 호박, 고추, 양지머리 따위와 함께 끓인 국.”,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아 체에 곱게 내린 후, 그 물에 된장을 풀어 우거지 따위와 함께 끓인 국. ≒미꾸라짓국”으로 정의를 내린다. 국어사전의 뜻으로만 보면 추탕은 고추장에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은 것이고,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아 살만 발라내어 된장에 요리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거나 보양식으로 먹는 데는 미꾸리와 미꾸라지, 추탕과 추어탕의 구분은 무의미할 것이다.
    ‘미꾸라지를 소금에 뿌려놓으면 해감을 전부 토하나니 그러거든 소금을 더 뿌리고 문질러 씻어 가지고 국을 멧그릇에 하든지 물을 대번에 대중해서 붓고 푹 끓입니다. 다 무르거든 건져서 대가리부터 살살 눌러가며 등성마루뼈를 빼내고 다시 국물에 넣고 두부를 얄팍하게 저며서 번철에다 노릇하게 바싹 부쳐서 가늘게 채를 쳐서 놓고 표고는 불려서 채 치고 석이는 끓는 물에 데쳐서 대강 손으로 뜯어 놓습니다. 파는 채를 치고 마늘, 생강은 조금만 다져서 여러 가지를 한데 섞어 양념을 하는데 묽은 장으로 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가지고 국물에다 전부 넣고 다시 끓이다가 계란을 풀어 위에 붓고 통고추는 나붓하게 썰어서 위에 얹습니다. 이것은 여름에 가장 좋은데 더욱이 빈약한 이에게 좋을듯합니다. 이와같이 끓이면 보통 생선국같고 보기에도 추탕인지 모릅니다.’ - 1938년 7월 22일, 동아일보 4면 (현대어로 고쳐 적음)



 누가 어떻게 먹었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추두부탕’ 마지막에는 “이 탕은 지금 한양의 반인(泮人, 성균관에 딸리어 있던 천민) 사이에서 성행한다”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높으신 분들의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전남 담양 출신인 고재종 시인의 시 「한바탕 잘 끓인 추어탕으로 놀다」에는 가을날 물을 뺀 둠벙에서 잡은 미꾸라지 두 양동이로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이 각자 마늘, 토란대, 고사리, 시래기, 들깨즙, 태양초물을 가져와 추어탕을 끓여 동네 노인들을 모시고 상치(尙齒 : 노인을 공경함) 마당을 연다. 수필가 운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에서는 방망이를 잘 깎아준 노인에게 소박하게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려 했었다.
    이제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추어탕이지만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으며 크게 서울식, 전라도식, 경상도식으로 구분된다. 서울식은 사골육수에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고, 전라도와 경상도식은 미꾸라지를 갈아 넣으나 전라도식은 된장과 들깨즙을, 경상도식은 토란대, 고사리, 숙주나물을 넣는다.
    오늘은 뜨거웠던 여름날을 기억하며 1938년 신문에 나왔던 “주부의 자랑이 되는 여름철 조선요리” 추어탕 한 그릇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