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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몸을 달래주는 붉은국물, 육개장

2018-10-05

문화 문화놀이터


지친몸을 달래주는 붉은국물,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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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肉)은 고기를 뜻한다. 고기는 먹을 수 있는 동물들의 살을 의미하겠으며 심지어 과일의 먹는 부분을 과육(果肉)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육(肉)=먹을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육개장, 육회, 육포와 같이 요리명에는 육(肉)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들이 있는데 우리말에서 ‘육(肉)’은 소고기를 의미한다. 반면 중국어에서 ‘육’은 탕수육, 동파육과 같이 돼지고기를 의미한다. 문화권에 따라서 같은 글자라도 의미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육개장의 유래

    그렇다면 육개장은 어떤 의미일까? 육개장의 ‘개장’ 은 개장국을 뜻한다. 한자로 구장(狗醬)이라고 쓰는 개장국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등장한다. 즉 육개장이란 소고기로 개장국 맛을 낸 음식이다. 개장국이 꽤 인기가 있었던지 사찰의 스님들도 그 맛을 보기 위해 고기를 대신해 마른나물과 버섯을 넣고 요리한 채개장이 있고, 삶은 닭을 결대로 찢어 만든 닭개장도 있다. 『시의전서(是議全書: 19세기 말엽 편찬된 작자 미상의 조리서)』에는 육개장 만드는 법과 함께 영계국이라는 닭요리가 나오는데 ‘육개장하듯’한다고 언급되어 닭개장 역시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의전서』에 나오는 육개장 만드는 법은 소고기의 여러 부위와 함께 전복, 해삼을 넣는다. 고기는 다지고 그 외 부분은 골패처럼 네모지게 썰어 넣는다. 식사로도 할 수 있지만 건육에 겨자를 쓰면 술안주로도 좋다고 첨언한다.


육개장은 단맛이 도는 소의 양지머리 부위와 파, 나물을 듬뿍 넣고 맵게 끓인 칼칼하고 얼큰한 맛이 나는 탕이다.


개장국을 대신한 육개장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육개장은 개장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지금도 이슈화 되고 있는 개고기의 식용문제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 문집에도 개고기 식용에 관한 의견이 등장한다. 그래서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개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하여 소고기로 대신해 육개장을 만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육개장은 전국에서 소비되고 있었겠지만 대구지역의 육개장이 1920년대에 유행했었나보다.
    당시 잡지 『별건곤』 제24호에서는 ‘진품·명품·천하 명식(天下名食) 팔도명식물예찬(八道名食物禮讚)’이란 제목으로 각 지역의 음식을 소개하는데 ‘달성인(達城人)’이란 필명을 쓰는 이가 ‘대구의 자랑 대구의 대구탕반(大邱湯飯)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 대체로 개고기를 한 별미로 보신지재(補身之材)를 좋아하는 것이 일부 조선사람들의 통성이지만 특히 남도지방 촌에서는 「사돈양반이 오시면 개를 잡는다」고 개장이 여간 큰 대접이 아니다. 이 개장 기호성과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정까지 살피고 또는 요사이 점점 개가 귀해지는 기미를 엿보아서 생겨난 것이 육개장이니 얼른 말하자면 소고기로 개장처럼 만든 것인데 지금은 대발전을 하여 본토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을 하였다. 서말지기 가마에다 고기를 많이 넣고 곰국같이 푹신 고아서 우러난 물로 국을 끓이는데 고추가루와 소기름을 흠뻑 많이 넣는다. 국물을 먼저 먹은 굵다란 파가 둥실둥실 뜨고 기름이 뚝뚝 뜨는 곰국에다 삶은 고기를 손으로 알맞게 찢어 넣은 국수도 아니요 국밥도 아닌 혓바닥이 델만큼 뜨겁고 김이 무렁무렁 떠오르는 시뻘건 장국을 대하고 앉으면 위에서는 침이 꿀꺽 넘어가고 아무리 엄동설한에 언 얼굴이라도 저절로 풀리고 언 몸이 녹아서 근질근질해진다. 어찌되었든 대구육개장은 조선 사람의 특수한 구미를 맞추는 고추가루와 개장을 본뜬데 그 본래의 특색이 있다. 까딱 잘못 먹었다간 입술이 부풀어서 애인하고 키스도 못하고 애매한 눈물까지 흘리리라.
- 『별건곤』 제24호, ‘대구의 자랑 대구의 대구탕반’ 중 일부(현대어로 옮김.)

    개장의 인기와 개장을 먹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소고기로 개장 맛을 따라 했다는 설명이 있으며 재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푹 삶은 소고기를 손으로 찢어내는 것과 파가 들어가는 것은 이때부터 변하지 않는 특징이다. 또한 입술이 부르터서 애인과 키스를 못한다는 비유로 이때도 얼큰했음을 알 수 있으며, 세시음식으로 복날에 먹지만 겨울에도 언 몸을 녹여가며 즐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구탕반’이라는 단어는 1925년 동아일보 사회면에 처음 나왔으며 그 후 대구탕반, 대구탕(大邱湯)으로 나온다. 몇몇 사람들은 대구탕을 개(狗)를 대신해서 대구탕(代狗湯)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닭개장 역시 대구탕(代狗湯)에 들어갈 것이다. 또 육개장은 여섯(六) 가지 재료가 들어가 육개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구탕(代狗湯)이나 육(六)개장은 민간어원설에 불과하다.



01. 개장국(보신탕)은 된장을 푼 국물에 개고기를 넣고 갖은 양념을 해서 끓인국으로, 육개장은 소고기로 개장국맛을 낸 음식이다.
02. 육개장 칼국수라 하여 육개장에 칼국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03. 육개장은 기본적으로 밥과 함께 먹지만 면과 함께 먹기도 하는데, 강원도 지역에서는 당면을 넣어 밥과 함께 나오기도 한다.



지역별 다양한 맛의 육개장

    1920년대에 이미 대구식의 육개장이 유행을 했지만 각 지역별 특징은 아직도 남아있다. 경상도지역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소고기무국’이라고도 부르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파와 무가 들어가고 여기에 고사리, 숙주 등 나물을 더한다. 서울과 충청도지역에서는 고사리 등을 넣지 않고 많은 양의 파를 큼직하게 썰어 넣었기에 ‘파국’이라고도 한다. 같은 충청도 안이라도 지역에 따라 부추를 넣는 곳도 있다. 전라도에서는 소고기와 함께 대파, 달걀지단만 넣기도 하고, 토란대를 꼭 넣는 지역도 있다.
    제주도는 ‘육(肉)=소고기’하는 등식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래서 육개장 역시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또 고사리의 형태를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푹 끓이며, 걸쭉하게 하기 위해서 들깨가루나 보리가루를 넣는다. 재료들의 차이로 인해서 다른 지역의 붉은색 육개장과 달리 황토빛에 가깝다. 김치 만드는 법이 같은 동네라도 집집마다 다르듯이 육개장 조리법도 지역마다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북한에도 육개장이 있는데 소고기국이라고 말한다. 그 명칭만 다를 뿐 만드는 법은 육개장과 동일하다. 오래 삶아 흐물흐물해진 소고기를 가늘게 찢어 갖가지 양념으로 무치고 고추양념을 한다. 일반적으로 소고기음식에는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 국만 고춧가루와 파를 많이 넣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또 대구지방의 음식을 말할 때 ‘대구탕’, ‘따로탕’이라고 언급하며 소고기매운탕이라고 적기도 했다. 육개장은 기본적으로 밥과 함께 먹지만 면과 먹기도한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메밀면이나 당면을 넣어 밥과 함께 나오기도 하며, 육개장 칼국수라 하여 육개장에 칼국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이러한 육개장의 맛은 식품회사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각 식품회사에서는 ‘육개장’, ‘육칼’ 등의 이름을 딴 다양한 종류의 즉석식품과 면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역마다 맛집으로 꼽히는 육개장집들이 있으며, 육개장 전문 프랜차이즈 업체도 여럿 있다. 이는 육개장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에 육개장이 꼭 들어간다. 실제로 식당에 가면 ‘육계장’이라 쓰여있는 곳이 종종 보인다. 아마도 삼계탕(蔘鷄湯)의 ‘계’와 연관지어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 육개장이 소고기로 만든 개장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육개장’을 잘못 쓰는 일은 없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