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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적 소비, 고금을 관통하는 욕망을 들여다 보다

2018-10-12

문화 문화놀이터


과시적 소비, 고금을 관통하는 욕망을 들여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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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현지에선 명품대란이 일어났다. 수도 이스탄불의 샤넬, 루이비통 등 럭셔리 매장마다 명품을 싸게 사려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히잡을 쓴 쿠웨이트 중년 여성이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주렁주렁 든 채 “옷도 사고, 화장품도 샀다”며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TV에서 봤을 것이다. 국내서도 여행사마다 터키로 명품쇼핑 관광을 떠나려는 이들의 문의가 넘쳤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직접 구매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며 포털 사이트에는 ‘터키 리라화’ ‘터키 버버리’ ‘터키 항공기’ ‘터키 직구’ 등 관련어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여성 육아 카페에서는 ‘국내 버버리 트렌치코트 200만 원대 터키 홈페이지에선 70, 80만원 대… 반의 반값 대박’ 같은 구매 정보가 오갔다.




명품이 무엇이기에…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농담도 있다지만, 명품선호 탓에 ‘웃픈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명품이 뭐기에 타국의 위기 상황조차 쇼핑 기회로 삼아 장만하려는 것일까.
    명품 소비는 과거 유럽 귀족사회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일반인에게로, 비유럽으로 퍼져나가며 세계적 현상이 됐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의 명품 사랑은 유명하다.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아시아인을 상대로 타깃 마케팅을 펼칠 정도다. 라다 차다와 폴 허즈번드는 2007년 출간된 「럭스플로전」이라는 책에서 아시아인의 명품 열광의 이면을 분석한 바 있다. 브랜드 기업이 자사 제품에 대해 어떻게 ‘신분 상징’의 기능을 과장하고, 마케팅하면서 열렬한 명품 추종자 계층을 형성시키는지 그 내막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저자들은 특히 한·중·일 3국의 미묘한 소비 심리 차이를 분석했다. 중국은 명품 브랜드가 소비자의 경제 수준을 드러내는 상징물이 된다는 이유로, 일본은 왕따 당하기 싫어하는 동조 의식 탓에, 한국은 타인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으로 인해 명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명품에 대한 열광의 이면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설파한 ‘구별짓기’가 작동한다.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명품은 계층 상승감을 안겨주는 ‘경제적 신분증명서’가 됐다. 몽블랑 만년필, 샤넬 백, 페라가모 구두, 에르메스 스카프는 타인과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차별화시켜주는 시각적 심벌인셈이다. 과시적 소비는 스스로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유한계급임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증명 수단이라고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중년 여성 모임에서 남편이 명품 가방을 사줬네 안 사줬네가 이슈가 된다. 스스로의 경제력으로 사기에는 무리인 직장 초년생은 물론 돈을 벌지않는 여대생도 신용카드를 긁어서라도 100만원 대 명품 가방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요즘에는 명품 구매 여성 연령층이 낮아지고 남성들도 구매 대열에 합류함에 따라 해외 명품이 지난 4년간 매년 5?18%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열광만큼 짝퉁 수요도 증가하는 것 같다. 2017년 기준으로 지난 5년간 관세청에서 적발한 ‘짝퉁’ 제품의 금액이 2조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디 명품 의류나 명품 가방뿐인가. 아파트, 자가용, 유치원과 학교와 먹거리까지도 현시욕이 작동한다. ‘갑질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대한한공 총수 일가가 승무원을 통해 밀반입한 품목에는 채소, 과일도 포함돼 있었다.



01. 각 폭마다 각종 꽃과 새를 다채롭게 그린 『화조도 병풍』       02. 대나무, 소나무, 영지 등의 십장생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 십장생문 벼루
03. 몸체 윗면에 코끼리와 짐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는 연적      04. 구름 사이로 용이 약동하는 모습이 그려있는 백자청화용무늬병



조선의 부잣집 양반들, 물 건너온 물건을 탐하다

    그렇다면 명품에 대한 열망은 현대의 산물일까. 절제와 겸양의 유교적 덕목이 강조되던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200여 년을 거슬러 18?19세기 한양의 으리으리한 양반집 사랑채 풍경을 들여다본다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시 풍경이 펼쳐져 깜짝 놀랄 것이다. 수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가방, 수백만 원짜리 프랑스 와인과 까르띠에 시계 대신에 조선시대 부잣집 양반들이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사고자 했던 품목들은 따로 있다. 거의가 조선이 사대했던 ‘선진국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이었다. 고가의 서화와 골동품, 벼루와 연적 같은 문방구가 그런 사치품목에 해당했다. 떵떵거리며 사는 부잣집에서는 안견, 김시 같은 조선의 유명 서화가나 중국 북경에서 비싼 값에 구한 당송과 명청의 명화를 걸어두고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돼 버렸다.
    양반층은 물론 중인층에까지 몰아쳤던 서화골동품 수집과 감상 열기의 이면에는 소비를 통한 과시의 욕망이 숨어 있었다. 필자는 조선시대를 관통한 서화 골동품 수집 문화를 졸저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영조 때 사람인 상고당 김광수(金光遂, 1699?1770)는 그런 수집 열풍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두 형제 모두 판서와 군수를 지내는 등 벼슬을 했다. 유독 둘째인 그만은 진사시(예비 과거)에 합격했음에도 대과를 보지 않고 한량처럼 지내며 수집취미에 빠졌다. 중국에서 수입된 고대의 비석이나 종정(鍾鼎: 종과 솥)을 소장했고, 고가의 서화와 희귀한 서적을 수집했으며, 비싼 향을 피우고, 우전차(雨前茶)를 달여 마셨다. 대체로 중국 상류사회에서 즐기는 것들이었다. 그는 골동과 서화로서 아주 잘된 작품을 만나면 전답과 집을 계속 팔아서라도 구입했기에 가산을 탕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남들의 비난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미 눈이 어두워졌다. 평생 눈으로 보았던 것이 이제 입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호기를 부렸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그런 그에 대해 과시적인 컬렉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의 예로 실명을 거론하며 야유를 보냈다. “그가 판 가격은 산 가격의 십 분의 이, 삼을 넘지 못했고, 이는 빠져서 이른바 입에 이바지 한 것이 모두 즙과 가루뿐이었다. 애석한 일이다. 애석한 일이다”라고.



과거 유럽 귀족사회의 전유물이었던 명품 소비는 일반인에게로, 비유럽으로 퍼져나가며 세계적 현상이 됐다.


상류층 문화를 모방하는 인간의 심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허례허식은 상류층 문화의 모방에서 기인한다. 서화골동품 수장 및 감상은 한양에서 대대로 벼슬을 하며 살았던 이른바 ‘경화세족’ 가문에서나 가능했던 양반 문화다. 이는 하위 계층의 모방심리를 낳으며 조선 후기로 가면서는 부유한 중인층과 서민층에까지 번졌다.
    보는 눈이 없는 졸부들의 허영을 노린 위조품이 판치기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 컬렉터 이하곤(李夏坤, 1677?1724)에 따르면 수입된 중국 남송대 화가 마원의 그림 가운데 태반이 가짜였다. 지적 허영으로 패가망신한 사례는 조선 순조 때 문인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당대의 풍속과 인물에 대해 쓴 문집 『추재기이(秋齋紀異)』 속 손 노인의 이야기가 잘 보여준다. 손노인은 한양에 사는 부자였다. 골동품이라면 사족을 못 썼으나 보는 안목이 없었다. 당연히 그에게 가짜 물건을 가져다주고 비싼 값을 받아 챙기는 거간꾼이 많았다. 결국 손 노인은 그 많은 재산을 거덜 내고 거지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손 노인은 속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중국 한나라 시대 자기에 비싼 차를 달여 마시면서 “이것만으로도 굶주림과 추위를 몰아낼 수 있다” 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과시적 소비의 이면에는 자신이 갖추지 못한 부, 채우지 못한 교양을 가리고 싶은 심리, 그리고 열등의식이 숨어있다. 조선 후기 선비 이정섭(李廷燮, 1688?1744)의 비판은 무분별한 명품 사랑을 하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요즘 사람들은 고서화를 많이 모으는 것을 고상한 취향으로 삼는다. (고서화로) 농을 가득 채우고, 대나무 상자가 넘치게 하여 보물처럼 자랑하며 수장한다. 스스로가 각기 서화에 견줄 수 없는 지극히 귀하고 소중한 것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하니 어찌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