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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의 도시, 춘천을 거닐다

2018-11-05

문화 문화놀이터


호반의 도시, 춘천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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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물론 골목길까지 노랗게 혹은 붉게 물들이던 단풍의 절정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저나뭇잎만 떨구면 올해도 겨울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넬 것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가까운 소양강 쪽으로 가을 여행을 나선다. 날씨는 조금 차갑지만 소양강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더없이 경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김유정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학 유산에서부터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레일바이크, 닭갈비에 막국수까지 즐길 거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툭하면 여행지로 선정되었던 도시, 춘천. 오늘은 차를 가지고 떠나본다. 평일이라서인지 막히기 마련이던 도로가 한산하다.




물길을 따라 사람이 모여들고 문화가 꽃피게 된 소양강

    소양강은 인제군 서화면에서 발원하여 춘천시 북산면을 지나는 하천이다. 예로부터 소양강창(昭陽江倉)은 한양으로 운반하기 위한 세곡을 모아두는 기능을 했다. 그래서인지 택리지에 보면 ‘수운을 이용하여 장사를 해서 부유하게 된 자가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 물길은 현재의 교통시스템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물길을 따라 물자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많은 문화유산이 꽃피게 되었다. 소양강 주변을 하릴없이 돌아보며 그 자취를 살펴볼까 한다. 


김유정 생가에서 점순이 키도 재보고

    김유정은 한국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다. 그의 대표작 『봄봄』과 『동백꽃』은 교과서를 통해 익숙한 단편소설이기도 하다. 김유정 문학관에 가면 그렇게도 친숙한 『봄봄』의 이미지를 만나볼 수 있다. 처음 찾아간 곳은 김유정역. 경춘선 중 역 하나의 이름을 차지할 정도로 춘천에서 작가 김유정의 위상은 높다. 김유정 문학촌은 김유정의 생가, 기념전시관, 이야기 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촌에 들어서니 우거진 숲속에 아늑하게 자리한 전시관이 맞아준다.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봄봄』 책이 서있다. 오랜만에 세로로 쓰인 책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전시관에서는 김유정의 작품뿐 아니라 채만식과 이상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뒤꼍으로 돌아가니 『봄봄』 한 장면이 그대로 연출된 조형물이 있다. 아마도 점순이의 키가 이만큼 커야 장가를 들여 준다고 말하는 장면인가 보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봄을 맞이한 소년 소녀의 마음을 몰라준 지주가 얄밉기도 하다. 조금 둘러보고서 새로 조성되었다는 김유정 이야기집으로 향한다. 새소리, 물소리 등과 함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멀티미디어 전시물들이 반겨준다. 한켠에 걸린 실레이야기길 열여섯마당을 들여다보니 너무 재미있다.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이라든지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 길,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등을 써둔 것이다. 김유정의 고향이자 작품의 무대인 실레 길에서 소설 속 인물들과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 문학의 해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김유정 문학촌


강원도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국립춘천박물관

    김유정로를 따라 국립춘천박물관을 찾아가는 길. 늘어선 가로수의 잎들에서부터 만추의 정취가 가득하다. 20여분 달렸을까. 깔끔하고 정돈된 건물이 눈앞에 스윽 나선다. 알고 보니 작년 10월경 새롭게 단장한 후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곳은 선사전시실, 고대전시실, 중세전시실, 근세전시실 등 네 개의 전시 코너로 구분되어 있어 시대에 따른 강원도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사시대관에서는 강릉 병산동에서 발굴되었다는 철기시대의 토우가 눈길을 끈다.
    고대 전시실에는 삼국, 통일신라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양양군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들, 부처, 보살들의 생김새가 낯익고 정겹다. 탄성이 흘러나온 것은 중세관에 들어갔을 때다. 가히 앞서 만났던 선사시대, 고대시대의 유물들과 그 섬세함에서 차이가 난다. 후삼국 때 궁예와 왕건이 활동하던 이 시기의 강원은 역사의 중심무대였다. 강원도 궁예의 기반을 계승한 왕건이 세운 나라인 만큼 고려의 귀족과 고위 관료들이 누렸던 세련되고 수준 높은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끝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 찾던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 강원의 아름다운 자연을 테마로 한 근세 전시실에서는 강원의 산천, 문화와 역사를 볼 수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01. 춘천시 근화동 소양강변에 위치한 소양강 처녀상   02. 구석기시대 이래 강원도 지역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는 국립춘천박물관
03. 춘천시내에서 의암호를 따라 춘천역으로 돌아가는 도로 옆에 세워져있는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는 아무런 꾸밈새가 없는 간결한 형태이다.



고려시대 보물, 근화동 당간지주

    정돈된 도로를 달려 소양강 쪽으로 좀 더 나서본다. 찾아 나선 곳은 보물 제76호 근화동 당간지주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행사가 있거나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릴 때 절의 입구나 뜰에 깃발을 달기 위해 당간을 고정해주는 지주를 말한다. 총 높이 3.52m인 근화동 당간지주는 오랜 풍파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우아하게 서있다. 돌을 다듬은 기법이나 연꽃잎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터는 간 곳이 없고 깃발을 매던 당간지주만 덩그러니…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을 담고 자리를 뜬다. 


소양강의 풍경을 파노라마로 소양강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 관광은 역시 바라보는 전망이 우선이라 날씨가 맑아야 한다. 다행히 조금 차갑기는 하지만 날은 청명하여 소양호가 저 멀리까지 다 보일 것만 같다. 덧신을 신고 입장. 소양2교가 보이고 조금 더 가니 완전히 통유리로 된 스카이워크가 나선다. 조마조마 덜덜덜덜, 분명히 발 아래에 유리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무서운 마음이 든다. 사람들에게 클라이맥스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을까? 스카이워크의 끝부분은 온통 유리로 설계되어 있다. 무서워 떨면서도 유리 위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이내 무서움은 사라지고 멋진 소양호의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기억에 남기고자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물막국수와 닭갈비도 맛있게 먹고

    이제 춘천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으러 가자. 그런데 왜 하필 막국수와 닭갈비일까? 일단 닭갈비의 유래가 떠올랐다. 1960년대 말 춘천의 한 선술집에서 술안주 삼아 닭의 갈비를 구워 먹은 것이 시초로 70년대 초에는 갈비 1대의 값이 100원이라 ‘서민갈비’, ‘대학생갈비’라고 불렸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닭갈비가 들어가지 않는 현재의 닭고기 야채볶음으로 조리법이 변화되었지만 닭갈비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먹는 것은 닭고기이되 갈비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좀 더 풍성한 느낌으로 즐기고자 했다고 할까? 닭갈비의 짝꿍인 막국수는 조선 인조 임금 시절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황폐해지면서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끼니를 연명하자 호구책으로 메밀 재배를 권장하면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강원도에서는 긴 겨울밤에 밤참으로 애용했던 음식이다. 강원도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화전민들이 끼니를 때우려고 ‘마구’ 뽑은 거친 국수인 막국수가 춘천에서 자리 잡은 후 6.25 이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국수를 팔면서 일반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다. 한편, 메밀국수의 특성상 찰기가 없어 잘 끊어지고 빨리 붇기 때문에 면을 뽑자마자 바로 먹다 보니 막국수로 불렸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막국수와 닭갈비는 춘천뿐 아니라 전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음식이 되었다. 춘천은 이를 통해 우리 음식을 세계화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열리고 있고 세계인들이 찾고 있는 닭갈비 막국수 축제가 그 예다. 춘천이면 어디에나 있는 닭갈비 막국수집, 서로 원조라고 우기는 곳 중 한 곳으로 일단 들어갔다.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막국수까지 시켜 먹으니 포만감에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계곡, 영지, 소, 너럭바위, 기암괴석, 폭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청평사 고려선원


명승 제70호 춘천 청평사 고려선원

    춘천에는 계곡, 영지(影池), 소(沼), 너럭바위, 기암괴석, 폭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청평사 고려선원이 있다. 고려시대 원림 유적을 대표하는 조경유산이라더니 과연 들어가는 입구부터 경치가 매우 좋다. 고려 광종 24년(973)에 백암선원으로 창건된 후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는 청평사. 맑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엔 공주탑에 얽힌 당나라 공주와 상사뱀 설화, 청평사의 융성을 기원한 거북바위 전설 등의 안내문이 있어 심심치 않다. 아홉 그루의 소나무가 서있는 구송폭포는 시원한 물줄기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조경시설이라는 영지가 눈에 보인다.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나오는 연못이다.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는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 해서 영지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 영지에는 스님이 깨우침을 얻고 시를 지어 남겼다는 영지 명문 바위도 있다. 청평사 고려선원은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시문과 설화가 어우러진 곳으로 고려시대 이자현(1061~1125)이 27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주변 계곡에 암자와 정자, 연못 등을 조성하며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렇게 조성된 고려선원에는 이제현, 자옹, 김시습, 이황 등 당대 최고의 고승들과 학자, 문인들이 몰려들었고 학문과 사상, 시문 등을 전파했다. 대웅전을 둘러본 후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사찰의 기와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왜 이곳에 고려선원을 조성했는지 의문이 한번에 풀리는 느낌이다. 역시 자연이 주는 감동은 울림이 크다. 가만히 귀 기울여 막바지 가을 바람소리를 들어보았다. 겨울 채비를 하는 산사의 고즈넉함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