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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좋아 미친 듯이 붓을 놀리던 예술학도 사윤택

2019-01-24

문화 문화놀이터


그림이 좋아 미친 듯이 붓을 놀리던 예술학도 사윤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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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좋아 미친 듯이 붓을 놀리던 예술학도

   
    일반적으로 회화는 정적이다. 어느 한 순간의 모습이나 분위기를 그림 등으로 옮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 사윤택 씨의 작품은 다르다. 그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움직임’이다. 정지돼 있는 캔버스에 시간성과 움직임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각 역시 한 두 단계 더 나아가게 만든다. 청주시내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부리부리한 눈에 시종일관 웃음기 있는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어릴 때는 예술적 감성이 있는지 몰랐어요. 형과 누나가 한 명씩 있는데 다 수재였죠. 저도 중학교 때까진 모범생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겼었어요. 그때 형과 누나한테 무시도 많이 당했네요. 부모님께서 매우 엄격하셨는데 미술선생님이셨던 어머니께서 제가 미술 쪽으로 진로를 잡도록 집중해서 교육을 시키셨어요. 그러다 어찌어찌 대학에 갔는데 거기서 배우는 것들이 다 해본 거라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 학기 동안엔 적응을 못 하다가 유화를 그리게 됐는데 그리는 순간 머릿속에 빛이 들어오는 듯 했어요. 그때부터 수업도 안 들어가고 계속 그림만 그려댔습니다. 오죽하면 학우들이 ‘그러다 F 맞는다’고 걱정해줄 정도였는데 전 되레 ‘너나 잘 해’라면서 그림에만 열중했죠.”



    국민대 4학년을 마치도록 그림을 그리다 졸업식에도 참석 못 하고 끌려가듯 군대에 갔다. 제대하자마자 당시 우암동 학천화랑에서 무작정 개인전을 잡아버렸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에 매달렸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30대, 40대, 50대 때마다 시련을 겪고 위기를 맞습니다. 작업의 결과물에 대한 초조함이랄까요. 그걸 극복하지 못 하면 붓을 놔야죠. 저도 40대 들어서면서 슬럼프를 맞았어요. 그러면서 ‘이제 나를 완숙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길게 보자’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죠. 30대 때는 어떻게든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이젠 진정성을 찾고 평생의 주제의식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한 상태입니다.”
사 씨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 작가다. 거기서 설치미술가 권준호 씨도 만났다.
“권 작가는 무엇이든 하고 싶어하는 미지의 소년 같은 느낌이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선배인 걸 알고부턴 절 많이 따라다녔죠. 그 친구는 전형적인 B형 스타일이고 저는 O형 스타일이에요.”
미술창작스튜디오 1기 생활을 끝내고 HIVE 캠프에서 2년 정도 작업한 후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서도 5년 간 작업을 했다. 지금은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에서 작업 활동을 이어오며 서원대 미술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고 한국교원대에도 출강한다. 약 10여 차례의 개인전과 30여 차례 가까운 단체전도 가졌으며 중앙미술대전 올해의 선정 작가, 청주 올해의 좋은 작가 미술상, JW중외청년미술상 최우수상 등 수상도 많이 했다.


 ‘시간성 회화’의 독보적 아티스트를 꿈꾼다
    그의 작업은 소위 ‘시간성의 작업’이다. 그는 시간성 회화의 독보적 아티스트로 우뚝 서고 싶다는 포부를 말했다.
    그는 논문집도 ‘시간성의 회화’에 연관된 ‘짧은 순간의 긴 충격이 주는 시간성의 미학’·‘이미지의 지속가능한 현상을 반영하는 현대회화에서의 시간성 연구’를 냈다. 작가의 작품은 상기한대로 ‘시간’과 그에 따른 ‘연속성’을 담고 있다.
    다른 작가들이 탁구를 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 속 인물들이 쳐낸 공은 상대방의 앞에 있기도 하고 공을 날리기 전의 지점에 위치하기도 한다. 수채화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며 지나가는 이들은 캔버스의 뒤에 절반 쯤 잘려 있다가 다른 캔버스에서 나머지 절반을 드러낸다.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은 공이 이미 바운드돼 뒤로 날아간 상황인데 리시브를 하고 있다. 그 옆에는 리시브를 하는 인물이 바로 옆에서 분신처럼 움직이며 상대의 공을 받기 위해 몸을 날리고 있다. 그 모습들은 유머러스하게 보이다가도 한 장소에서 다양하게 일어나는 장면을 고정된 카메라로 찍어 스톱 모션처럼 연출한 레이어를 겹쳐놓은 듯 신비롭기도 하다.



      “보통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등은 화면에서 기승전결을 보여주는데 회화는 정지돼있죠. 어떤 사건이 일어난 상태에서 멈춰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현실의 시간 속에서 찾지 못 하는 초현실과 비현실 양 쪽 세계의 시간을 화면에 담고 싶었어요. 석사 시절엔 사진과 설치 작업도 했고 설치로 논문도 썼는데 졸업을 한 2001년부터 회화를 다시 하고 싶어져서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그의 출생지는 보은이지만 부친의 직장 때문에 청주에 왔고 이곳에서 자랐다. 그런 그에게 청주는 어떤 지역일까.
    “청주에서 작업하며 느낀 건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끈 같다는 겁니다. 이익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다른 데서 전시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청주를 떠올리거든요. 경기도의 한 아트 카페에서 전시를 할 때였는데 몸빼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작업 도록을 자연스럽게 웃으며 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면서 또 청주를 떠올렸죠. 청주에도 미술창작스튜디오처럼 주변에 문화 인프라가 있지만 저토록 자연스럽게 향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는가, 굵직한 문화 행사들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분위기가 있는가 하고요. 청주에 대한 애착이죠. 깎아내리자는 게 아니라 제 DNA 속 생채기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