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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설치미술가 감연희

2019-02-08

문화 문화놀이터

문화사이다

청주문화생태계 DB
도시 재생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설치미술가 감연희
'장르/방식의 경계가 없이 열린...그리고 조금은 독특한 시각'



어릴 때부터 빛났던 재능과 끼

       설치미술가 감연희 씨는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전문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사람도 아닌데 하는 일마다 재능을 발휘하며 이목을 끌었다.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보통은 미술을 하다 회화로, 다시 회화에서 퍼포먼스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지만 그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1966년생에 출생지는 경상도. 취학 전에 대전으로 와서 초·중·고와 대학도 대전에서 다녔다. 대학은 충남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딱히 미술을 배우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 본인이 그린 그림이 학교에 걸리고 고등학교 때도 감 씨의 그림을 본 선생님이 미술반 소속도 아닌 그의 그림을 미술반 전시에 넣었단다. 충남여고 재학 시절에는 각 학교 별 대표로 교내 소식 등을 전하는 MBC 통신원을 했었다. 주변에서는 미술대학에 가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방송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개그맨 황기순·최병서 씨의 연기를 보고 연극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집에서는 약대에 가라고 해서 약대에 지원했는데 1지망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2지망에 물리학과가 있기에 그리로 갔죠. 대학 때는 ‘너, 연극과 학생 아니냐’고 할 정도로 연극반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당시 했던 연출 공부가 지금 작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1년에 공연을 4번 정도 했는데 연출·기획·스태프·연기를 다 했습니다.”
    연극 중에는 진보적 장르로 해프닝과 퍼포먼스가 있다. 당시 전위예술가 무세중 씨가 산에서 누드 행위예술을 국내 처음 선보였는데 미술계에도 그런 바람이 불었고 감 씨는 그 퍼포먼스 계열의 미술에 주목했다. 그가 미술로 방향을 틀게 된 계기였다.
    “그 때가 1995년인가 1996년쯤이었는데 대청호 환경미술제인 ‘아홉용머리’가 1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아홉용머리의 박병욱 총감독님을 소개 받고 행사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죠.”
    그때부터 퍼포먼스를 그룹으로 하다가 서울 인사동 모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 퍼포먼스전에도 참여했다. 그때 신인을 찾던 일본 관계자의 눈에 띄어 초대를 받아 현지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신칸센을 탔는데 거기서 소품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그게 다 돌아서 다시 제가 있는 곳으로 오려면 3일은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누드 퍼포먼스를 진행했어요. 사진을 본 남편이 화를 내기에 이상한 게 아니라고 해도 반대가 심해서 다음부턴 퍼포먼스를 포기했어요. 마침 임신 상태였기도 했고요.”
    임신 중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면 태교에 좋다고 해서 수름재 도림 공방에 가 도자기를 만들었다. 토우 작가로 유명한 김만수 씨의 그 공방이다. 거기서 공방의 공간에 갤러리 ‘가’를 만들도록 조언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도자기는 좀 반복적인 작업이고 갤러리에서 기획을 하게 되니까 사람도 만나야 해서 슬슬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공방에 온 충북대 조소과 여학생에게 푸념하듯 그 얘기를 했더니 줄리앙이라는 석고상을 가져와서 이걸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게 처음 보는 사람은 그리기도 어려운 물건이었어요. 입체의 다양한 모습을 그때 알게 됐고요. 어쨌든 다 만들고 나서 보여줬더니 많이 놀라면서 미술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게 그랬어요. 그래서 공방을 그만두고 그 친구를 따라갔어요. 저를 미술학원인 ‘말하는 손’에 데려갔어요. 현재 민미협 회장이신 민병동 선생님의 학원인데 그 선생님이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전공으로 매달리는 학생들 있는데 아줌마들이 놀이로 배우는 건 싫다’며 다른 데를 알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랬더니 절 데려간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민 선생님이 ‘그러면 한 달만 두고 보겠다. 아니다 싶으면 다른 데 보내겠다’고 조건을 내거셨어요. 그때 연필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미술을 배우고 있는데 2주 만에 민 선생님이 한예종 시험 준비를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한예종이 뭔지 몰랐고 애기도 5살 밖에 안 돼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민 선생님이 하루에 한 점씩만 그려보라고 하셔서 그러고 있는데 또 경험 삼아 한예종 시험을 보라고 권하시네요. 그래서 봤지만 저도 그렇고 아무도 제가 붙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당시 충북대 수석 입학생도 떨어진 그 시험에 제가 붙어버렸어요.”
    그렇게 얼떨결에 미술판에 뛰어들게 됐지만 육아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학교에는 못 갔다. 그래도 미술을 하고 싶어서 청주예술의전당 인근에서 이종현 작가와 작업실을 같이 쓰며 미술을 배우고 이 씨와 같이 ‘구들 C&C’라는 공공미술 그룹도 만들었다. 그 후 대안캠프 하이브의 조송주 씨 등과 공공미술 스터디 모임을 갖고 토론을 하며 퓨전 전시 ‘와글 와글 파티’를 여는 등 잔잔하게 미술 활동을 이어왔다.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창작… 이제 도시 재생을 꿈꾼다.

    설치예술가로서 그의 작품 활동은 지역과 표현 방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행됐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의 김호일 사무총장이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재직 시 그곳에서 김진묵 작가와 ‘WHAT IS-언어의 줄기’라는 설치 전시를 했고 터키에서 열린 한국·터키 현대미술 교류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호텔 그랜드앰버서더서울의 룸 전시에 참가했을 때는 그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던 회장에게 발탁돼 그랜드앰버서더서울 60주년 기념전에서 다른 작가 3명과 함께 기획전도 가졌다. ‘언제까지 다른 곳에서 돌고 있을거냐’는 민병두 씨의 부름에 청주시립미술관의 개관 프로젝트 ‘기억의 집’에 참여했다. 감 씨가 참여한 파트는 상당구 대성로 238번길 13-1 무미아트 이안당 프로젝트다. 그 외에도 청주고인쇄박물관의 계단 벽화와 청주 성안길 우체국의 벽화(둘 다 지금은 없다), 청주동물원 벽화, 안덕벌 벽화, 평생교육원 로비 리모델링, 진천 광혜원 도서관 벽화, KBS문화현장 세트 등으로 은연 중 지역 곳곳에 감 씨의 손길이 거리미술로 닿아있다.
    “제가 실력이 있다기보다는 보는 시각이 달라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이안당 전시의 경우 스토리를 담은 가족사 같은 전시죠. 미술을 하던 사람들 눈엔 이걸 전시라고 할 수 있냐는 논란도 있지만요. 지금 키워드가 ‘도시재생’인데 전 예전부터 도시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도시공간 공부도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했죠. 지금은 흔한 화두인 환경에 대해서도 저는 그전부터 그것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사람입니다. 지금 보면 그게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무슨 거창한 활동가까지는 아니지만 예술에 의한 활동은 계속 할 겁니다. 제가 필요한 부분이라면 경계 없이 어디나 참여할 생각이고요. 물론 기본은 설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