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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문화와 철학 시대문화를 품은 문화재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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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문화와 철학 시대문화를 품은 문화재
'건출문화재 (성문, 교육기관, 사찰)'


   건축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 유형문화재의 분류에서 건조물 문화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크게 목조문화재와 석조문화재로 나뉜다. 그중 목조문화재는 국가지정으로 국보 21건 보물 119건이며 그중 사찰건축이 77건, 성곽건축이 5건, 궁궐건축이 19건, 기타 39건이다. 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우리의 건축문화재 안에는 당시의 나무나 돌 등 재료를 다루는 기술적인 요소와 그 건물의 사회적인 위상을 드러내는 인문학적인 요소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철학적인 요소가 포함 되어있다. 조선시대 서울도성의 큰 틀을 이루는 성문, 국가의 통치이념을 세우고 고급관리를 양성하는 성균관, 지방관학인 향교건축과 사림에 의한 사설교육기관 서원건축, 그리고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사찰건축에 대해 알아보자.
 

01.조선시대 1820년경에 수도 한양의 모습을 그린 <수선전도>
01.조선시대 1820년경에 수도 한양의 모습을 그린 <수선전도>
02. 성균관의 동재. 성균관은 대성전과 동무, 서무로 구성된 문묘 영역과 강학 영역인 명륜당, 동재, 서재 그리고 기타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한양도성의 큰틀 _ 성문

    나라 안팎으로 혼란했던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를 열면서 도읍을 한양으로 정했다. 신흥무인세력과 신진사대부의 협력으로 세워진 조선은 성리학을 사회지도이념으로 삼았다. 한양도성을 설계한 정도전은 성리학 원리를 반영하여 종묘와 사직의 위치를 정하고 왕이 머무르는 경복궁의 모습과 각 전각의 위치와 이름을 정한다. 또한 도성 전체를 계획하면서 유교의 기본 덕목인 오상(인의예지신)을 중심이 되는 보신각과 더불어 네 방위의 성문에 배치하여 큰 틀을 세우고 통치이념과 도시구성원리를 하나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였다.
    동쪽은 인을 넣어 흥인지문, 서쪽은 의를 넣어 돈의문, 남쪽은 예를 넣어 숭례문이라고 하였으나 북쪽은 지를 넣지 않고 숙청문이라 하였다. 정도전이 태조에게 지어 바친 새로운 왕조의 통치규범인 『조선경국전』이 그랬듯이 유교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조선의 현실에 맞게 조정하여 적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대문 사이에 네 개의 작은 문을 두어 동북은 홍화문, 남동은 광희문, 남서는 소덕문, 북서는 창의문이라 하고 통틀어 사소문이라 부른다. 국보 제1호 숭례문은 경복궁의 축선에 있는 도성의 정문으로 경복궁과 같은 해 만들어졌다.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으나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창건 당시의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현존하는 성문건축 중에 규모가 가장 크고상층 공포가 외3출목 내2출목으로 웅장하며 쇠서가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에 사용했던 수서 형식을 하고 있어 비록 2008년 방화로 소실되어 복원했으나 역사적 의미와 목조건축 연구에 있어 그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겠다.
    숭례문과 더불어 현대까지 온전한 모습을 지켜온 흥인지문은 보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성의 다른 문들과 다르게 성문 앞을 반달형으로 둘러쌓은 옹성이 설치되어 있어 적에 대한 방어력을 높였다. 도성 축조 때 지어진 것을 단종 때 고쳐짓고 지금의 형태는 고종 때 다시 지어진 것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숭례문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공포에서 쇠서가 앙서와 수서로 함께 구성되고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곳이 많은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01. 서울 한양도성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이다.
02. 명륜당의 명륜(明倫)은 ‘교육을 하는 것은 인륜을 밝히는 일’이라는 맹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총 18칸이다.



국가와 사림의 인재양성 _ 교육기관


  한양도성이 조선의 물질적인 중심이라면 성균관은 정신적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은 숭유배불 정책을 국시로 채택하여 경복궁, 종묘, 사직단을 영조한 직후 공자를 모신 문묘와 성균관을 함께 조영한다. 조선시대의 교육은 유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성현의 몸가짐을 배워 몸소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관학에는 반드시 문묘와 강학공간을 함께 건립하였다. 성균관처럼 앞에 문묘가 있고 뒤쪽에 교육기관이 있는 형태를 ‘전묘후학’ 배치라고 하는데 나주향교나 경주향교처럼 평지에 만들어진 향교들은 이와 같이 배치하고 있으나 구릉지에 배치되는 경우 명륜당이 앞에 오는 ‘전학후묘’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신령함은 하늘에서 산을 타고 내려온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위계관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성균관은 대성전과 동무, 서무로 구성된 문묘 영역과 강학 영역인 명륜당, 동재, 서재 그리고 기타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명륜당의 명륜(明倫)은 ‘교육을 하는 것은 인륜을 밝히는 일’이라는 맹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총 18칸이다. 좌우에 있는 협실은 스승과 제자가 강학하는 데 사용되고 중앙의 넓은 마루는 성균관 유생들이 경서를 펴고 토론하기도 하고 왕이 직접 유생들에게 강연과 과거를 하는 등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였다.
    한편 조선건국에 참가하지 않고 향촌으로 은거했던 신진사대부들이 성종 이후 정계에 진출하면서 사림을 형성하게 되어 독자적인 교육기관인 서원을 건립하게 된다.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으로 시작된 서원 건립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지방의 교육과 사림의 구심 역할을 담당한다. 서원의 정착과 보급에 많은 역할을 했던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은 퇴계가 벼슬에서 물러나 제자를 가르치던 도산서당 뒤쪽으로 제자들과 율곡 이이 등 유림들이 건립하자 선조가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현판을 하사한다. 퇴계가 직접 지은 건물인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역락서재는 유정문, 절우사, 몽천 등 주변 자연경관과 함께 퇴계의 사상과 인품을 간직하고 있어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은은한 그 향기를 풍기고 있다.

 

01.봉정사는 통일신라시대인 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봉정사 극락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문화재이다.
02.부석사 무량수전의 내부가구. 부석사 무량수전은 가구식 기단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운 주심포식 가구구조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축물이다



엄격한 신분사회속 파격적인소통

    시대와 사상이 변해도 이 땅의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미의식은 잘 변하지 않는다. 오래된 건축물을 보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그 건물이 만들어질 당시와 현재의 미의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경상북도 안동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문화재이다. 봉정사는 통일신라시대인 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국보 제15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수리할 때 발견된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12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다듬질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아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쇠서가 없는 주심포를 짜서 맞배지붕을 구성하였다.
    그 모습이 간결하고 단아하다. 창방위에 꽃을 뒤집어놓은 것 같은 복화반대공을 칸마다 올려 뜬장여를 받치고 있는데 이 집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수덕사 대웅전,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등 남아있는 고려시대 목조 문화재를 보면 조선시대와 다르게 각각 자기만의 가구방식을 가지고 있어 고려시대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들어내고 있다.
    국보 제18호 부석사 무량수전은 가구식 기단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운 주심포식 가구구조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축물이다. 처마선과 용마루선은 현수곡선을 이루고 처마선의 안허리곡이 뚜렷하여 귓기둥의 귀솟음 공법과 더불어 한국의 목구조 건축의 고급방식이 두루 적용된 집으로 우리의 건축문화를 대표할수 있는 목조문화재이다. 

 글. 조전환 (대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