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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을 대변하는 우스꽝스러운 얼굴

2019-03-15

문화 문화놀이터


웃음속에 담긴사유
서민을 대변하는 우스꽝스러운 얼굴
'이 시대에 더욱 그리운 말뚝이'

    대명천지(大明天地)라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갑질하는 양반들이 존재한다. 권력과 돈으로 을의 가슴을 찔러대는 양반들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조선시대의 말뚝이가 이 시대에 다시 환생하여 그 양반들을 통쾌하게 혼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말뚝이, 양반을 웃음거리로 만들다
    “지주불폐(知主不吠)허니 군신유의(君臣有義)요, 모색상사(毛色相似)허니 부자유친(父子有親)이요, 일폐중폐(一吠衆吠)허니 붕우유신(朋友有信)이요, 잉후원부(孕後遠夫)허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이요, 소부적대(小不敵大)허니 장유유서(長幼有序)라.”
    이는 강령탈춤 양반과장의 한 대목이다. 그 뜻을 풀어보자면 “개는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를 않으니, ‘군신유의’요. 개는 어미와 새끼의 털 색깔이 같으니, ‘부자유친’이요. 개는 한 마리가 짖으면 여럿이 함께 짖으니, ‘붕우유신’이요. 개는 새끼를 가진 뒤에는 수컷을 멀리하니, ‘부부유별’이요. 개는 덩치가 큰 놈에게 작은 놈이 결코 대들지 않으니, ‘장유유서’라”는 뜻이다. 양반층에서 중시하던 유교적 도덕 덕목인 오륜(五倫)을 개와 관련시켜 설명하면서 오륜을, 양반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말뚝이는 말을 부리는 양반의 하인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면극에서 양반의 하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수영야류에서는 ‘막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봉산탈춤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양반 : 양반을 모시지 않고 어디로 그리 다니느냐.
말뚝이 : 본댁에 가서 마나님과 하고 하고 재독(再讀)으로 했습니다.
양반 : 이놈 뭐야!
말뚝이 : 문안을 드리고 드리고 하니까
 말뚝이 : 좆대갱이 하나 줍디다.
양반 : 이놈 뭐야!
말뚝이 : 조기 대갱이 하나 줍디다.
양반 : 조기 대갱이라네.
이 대사에서도 위엄 있게 꾸짖는 양반을 말뚝이는 실실 놀려댄다. 말뚝이는 자신이 본댁으로 가서 양반의 마나님과 성행위를 두 번 했다고 하다가 이를 꾸짖는 양반에게 얼른 말을 바꿔서 ‘좃대갱이’가 아니라 ‘조기대갱이’라면서 얼버무린다. 앞으론 복종하는 척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말로 풍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봉산탈춤 제6과장 <양반과 말뚝이춤>에서 양반이 말뚝이를 찾자 말뚝이가 양반들을 조롱하는 사설도 있다. “이놈 말뚝아! 이놈 말뚝아! 이놈 말뚝아!” “예에에. 이 제미를 붙을 양반인지 좆반인지 허리꺾어 절반인지 개다리 소반인지 꾸레 이전에 백반인지 말뚝아 꼴뚝아 밭 가운데 쇠뚝아 오뉴월에 말뚝아 잔대뚝에 메뚝아 부러진 다리 절뚝아 호도엿 장사 오는데 할애비 찾듯 왜 이리 찾소?”
 
(좌)강령탈춤의 말뚝이탈    (우)양주별산대놀이의 말뚝이탈
 
말뚝이는 누구인가
       이렇게 우리의 탈놀이에서는 말뚝이의 활약이 대단하다. 말뚝이는 누구인가? 옛날 양반이나 벼슬아치들이 타는 말을 다루는 사람을 말구종이라 했는데 이들이 머리에 쓰는 것을 말뚝벙거지라 했다. 말구종이 이 말뚝벙거지를 썼다 해서 말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말뚝이는 곧 하인으로 탈놀이에서 양반들의 무능력과 부패를 고발하는 역을 맡는다.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퇴계원산대놀이, 수영야류, 동래야류,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진주오광대, 남사당덧뵈기 같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면극 곧 탈놀이에서는 어김없이 말뚝이가 등장한다.
    물론 북청사자놀음에서는 ‘꼭쇠(꺽쇠)’라는 이름으로, 수영야류에서는 ‘막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럼 말뚝이의 모양새는 어떤가? 유난히 큰 코와 입, 눈을 가지고 있으며 얼굴에 여러 개의 혹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아 우락부락한 인상을 준다. 고성오광대의 말뚝이는 양 볼이 튀어나오지 않고 들어간 점이 특이한데 그것은 한이 많음을 뜻한다고 한다.

 
01.탈놀이에서 말뚝이의 활약은 대단하다. 서민들과 소외받은 사람들의대변자로 거침없이 행동하고 해학적이고도 풍자적인 대사로 관중들을 매료시킨다.
02.고성오광대에는 총 1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신랄하다.
03.강령탈춤의 말뚝이춤. 똑같은 가면, 복색, 소도구를 갖추고 왼손에 곤장을 든 두 말뚝이가 각각 탈판 양쪽에서 중앙으로 뛰쳐나와
     서로 마주 보고는 깜짝 놀란다.
 
탈, 경종을 울리고 스트레스를 떨치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탈놀이를 즐겼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는 『한국의 민속과 오늘의 문화』(지식산업사, 1994)에서 탈놀이는 “탈잡는 일”이라고 했다. 예전 일반 백성은 지배층인 양반들에게 탈 잡을 일이 많았지만 대놓고 탈을 잡으면 바로 “뒤탈” 곧 보복을 당할 것이기에 드러내놓고 탈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탈출구로 탈놀이를 생각한 것이다. 백성은 탈을 써서 지배층의 눈길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거리낌 없이 탈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탈놀이를 하면서 탈을 잡는다는 것은 지배층의 탈을 드러내 경종을 울리는 것은 물론 탈 때문에 피지배층인 백성이 정신적으로 입는 탈, 곧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탈 잡는 일”에선 말뚝이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이 말뚝이는 시에도 등장한다. 이달균 시인의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동학사, 2009)에서 말뚝이 입을 통해 자신이 사설시조집을 내놓은 배경을 털어놓는다. “어허, 할 말 많은 세상, 그럴수록 더욱 입을 닫으시오. 조목조목 대꾸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니 침묵이 상수요 대신 이놈 말뚝이 잘난 놈 욕도 좀 하고 못난 놈 편에서 슬쩍 훈수도 두려 했는데…”라고 말이다. 할 말 많은 세상에 독자들은 그냥 침묵을 무기로 쓰고 대신 시인이 말뚝이가 되어 세상의 탈이란 탈은 다 잡아줄 것이란 약속을 한다. 그리고 시인은 <시골영감 작은 어미 흥타령>이란 썰에서는 “이런 개발새발! 군부독재가 이만할까. 조진사댁 갑분이는 연차, 월차, 생리수당 꼬박꼬박 챙기는데, 상여금은 고사하고 새경마저 떼어먹는 우리 샌님. 뒤 닦을 새도 없이 이리 오라 저리 가라 우로 좌로 가라 마라. 오냐 모르것다 주전자 속 탁배기는 손가락으로 저어주고, 돈냉이, 취나물, 산채나물은 조물조물 무쳐주니” 노동자를 핍박하는 기업을 호되게 꾸짖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말뚝이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잠자코 앉아 있을 새가 없다. 대명천지라는 이 세상에도 여전히 갑질하는 돈양반, 권력양반도 있고, 고통받는 백성은 있게 마련이다. 홍길동이나 임꺽정처럼 의적이 되어 혼내줄 수는 없지만 뒤탈을 당하지 않을 만큼만 그들의 탈을 잡아주는 말뚝이가 여전히 필요한 세상인 것이다.
    말뚝이여! 부활하라. 그대가 을들의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지라도 그 신나는 해학, 걸쭉한 입담으로 갑질하는 갑들을 머쓱하게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