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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 인연에 대하여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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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 인연에 대하여
'가방제작/리폼/염색/수선/복원 전문 <가방든남자>'

    5월 초순 봄꽃이 흐드러지던 어느날 오후였다. 오전 11시를 막 들어서며 커피한잔의 여유로움을 누리던중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혹시 기억하실런지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련꽃 같은 중년 여성의 차분한 음성이 한껏 긴장을 하게했다. “작년에 가방 수선하면서 우산도 빌려 주시고  점심도 같이했던………” 머릿속에는 벌써 1년전 그날을 생생히 떠올리고 있었다.
    “아..…네! 기억하고 말고요! 잘 지내시죠?” 전화기 너머 음성이 한껏 밝아진걸 느끼며 근처 볼일 겸(빚진?)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는 얘기에 시간 약속을 하고 잠시 그날을 회상해 봤다. 2018년도 그때도 5월 중순 봄날 이었다.
    한껏 화사하했던 벚꽃이 흩어져 버리고 라일락과 장미꽃이 앞다투어 피던 그즈음…. 우수에 찬 중년 여성(내게는 사모님과 같은 젊잖은 맑은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분께서 큼직한 가방을 들고와 리폼을 요청하셨다.



    여느 손님과 같이 사무적인 답변과 요청하는 디자인을 메모하던 중 붉게 상기되는 여성분 눈가를 보게 되었다. 경험상 사연이 남다른 가방인 것 같아 더욱 조심스러워 차 한잔을 내놓고 마주앉았다. 60이 채 안되 보이는 그 여성분은 급기야 손수건으로 눈가를 연신 찍으며  가방에 얽힌 사연을 풀어놓았다. “제가 딸만 둘인 어미입니다. 큰애는 수원에서 아들하나 딸하나 두고 잘 살고있지요. 이 가방은 둘째가 미국에서 연수 마치고 오면서 선물해준 가방인데…”
다시금 눈가에 맺힌 커다랗고 애틋한 물기를 주르륵  떨구며 아픈 이야기를 이어갔다. “둘째는….참으로 똑똑했어요.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어 우리 부부 조차도 어려워 할 만큼 야무졌지요. 공부도 곧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S그룹 연구원으로 취업도해서 우리 부부, 아니 우리 동네의 자랑이 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후 출근하던 금쪽 같은 아이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간간히 참고 억누르던 중년 여성분은 끝내 탄식 같은 울음을 터트리며 가방을 보듬고 있었다. 간신히 차오르던 감정을 정리하며 소박한 점심을 사드리고, 나오던 길에 예상치 못한 소나기로 우산을 챙겨 드렸는데 1년여가 지나도 그 만남이 잊혀지지 않은  여운이 있었던가 보다.



    내게는 중년의 여성분 만큼 절박하거나 간절하지도 않았는데 상대는 감사함과 따뜻함을 기억하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찾아오니, 새삼 사람의 만남은 함부로 여겨서는 안됨을 또한번 깨닫게 된다. 불가에서는 “겁”이라는 시간을 일컫는 말이 있다. 실제로 힌두교에서는 43억2천만년을 “한겁”이라고 한다. 상상조차 힘든 시간들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겁”‘의 인연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다. 500겁 인연은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고, 2천겁 세월이 지나면 하룻동안 동행 할수 있는 기회가 생기며, 5천겁 인연이 되어야 이웃으로 태어나고,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 살 수있는인연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스쳐가는 모든 인연이 참으로 놀라운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해서 지금은 권사며 바깥 어르신은 장로가 되신 애틋한 가방 사연의 그분도 식사도 같이하고 두어번 만난 사이면 분명 대단한 인연의 이웃임이 틀림없다. 힌두교식 셈법 대로라면 그분과는 21조6천억년의 만남이 있던 인연 인것이다. 과연 상상이 되는 시간일까? 다시금 삶을 돌아보며 주변 사람을 챙겨보는 고마운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