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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긴장 상태

2019-06-03

비즈니스 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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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긴장 상태
'스트레스에 대하여'

    지난 일주일간 "스트레스 받아서 못살아"라는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들은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부모들은 조기 유학을 보내거나 대안학교로 옮길 결심을 하기도 한다. 스트레스의 원인인 과중한 학업과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면 아이들이 행복해지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입시 경쟁을 뚫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스트레스 따위는 전혀 받지 않는, 그 정도 스트레스는 코끼리가 모기에 물린 것마냥 가볍게 여기는 독종일까? 또 입시만 벗어나면 스트레스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스트레스 제로'의 그날은 과연 올까?
 
스트레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
    스트레스(stress)는 라틴어 'strictus, stringere'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말로는 '팽팽하다, 좁다'는 뜻이다. 이 말을 지금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캐나다의 생화학자 젤리에(Hans Selye)가 1936년에 '개인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외적·내적 자극'이라고 정의했다. 그 후 100년도 지나지 않아 이역만리 한국에서도 스트레스는 어느새 일상어가 되었다.
    스트레스는 본래 개체의 생존과 안녕을 위한 생리적 반응이다. 외적·내적 자극을 받으면 긴장하고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하여 적절히 반응하며 응급 상황을 이겨 낸다. 파충류에서 조류로 넘어오면서 닫힌 혈류 시스템이 구축되고, 호르몬이 분비되어 몸 안에서 돌고 도는 피드백 시스템이 발달하여 스트레스에 반응할 수 있게끔 되었다. 포유류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받아들이거나 분비하도록 명령하는 뇌의 부위가 발달해서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스트레스 시스템이다.
    사막을 걷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길쭉한 물체가 '스슥' 하고 지나가는 것 같다. 그러면 심박 수가 증가하고 온몸은 긴장하면서 자극에 대한 반응 시간이 짧아지고 시력과 청력의 민감도는 높아진다. 아주 짧은 시간에 몸은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고 여기고 전투 및 방어 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싸울지, 도망칠지(fight or flight)' 결정한다. 그저 바람에 흩날린 나뭇가지였다면 바로 경계 태세를 풀겠지만, 방울뱀이라면 도망가야 한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토끼를 잡기 위해 창을 들고 사냥하던 원시인이라면 사막에서 뱀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다가 토끼라는 것을 아는 순간 창을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긴장한 만큼 에너지가 더해져서 더 정확하고 빠르게 창을 겨눌 수 있다.
    스트레스 반응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개체가 생존하게끔 하고, 먹이를 잡을 때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스트레스란 인간이 환경에 잘 적응하고 변화하기 위한 기능이다. 그런데 지금 스트레스란 단어는 '애물단지'로 이해된다. 왜 그런 것일까?


 
스트레스 반응의 원리
    현대 사회에서는 뱀이나 호랑이와 맞닥뜨리는 등 목숨이 위험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인간의 뇌가 스트레스성 자극에 반응하는 양상은 10만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수백 년 전에 비해 예측할 수 없는 자극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오히려 끊임없는 긴장으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느낀다. 인간의 뇌가 현대적인 환경에 맞춰 스트레스 자극 반응을 진화시키는 데 겨우 200년 남짓한 시간은 너무 짧다.
    반응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면 대뇌에서 인식의 틀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크게 2가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눈과 귀로 위험하다고 인지할 만한 모호한 자극이 들어오면 일단 자율 신경계가 반응하는데, 시상(thalamus)1)과 편도체(amygdala)2)에서 뇌하수체, 부신 피질 등을 자극해서 아드레날린, 코티솔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대량으로 방출한다. 그러고 나서 복내측 전두엽(ventromedial frontal lobe)에서는 이것이 무엇인지 판단한다. 별일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긴장을 풀라는 신호를 보내고, 진짜라면 도망가라고 명령한다. 대상이 무엇인지 완전히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조차도 아까운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일단 화재 경보를 울리고 나중에 어디에서, 얼마나 큰 불이 났는지 알아보는 편이 낫다는 식이다. 이는 효율성의 관점에서 진화·발전된 것으로, 뇌의 효율성과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임상 심리학자인 라자루스(Lazarus)에 의하면, 생리적 반응에 더해서 인지적으로 한 번 경험한 일은 학습된다고 한다. 즉, 예전과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면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몸에서 반응하는 예측 시스템까지도 갖추게 된다. 이는 인간이 스트레스를 잘 다루고 더욱 안전해지기 위한 적응 과정이었다. 그런데 진화의 결과가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현대인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었다. 시험에 한 번 실패하고 나면 시험이란 말만 나와도 불안해지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더욱 긴장한다. 호랑이처럼 눈에 보이는 위험이 아닌데도 '한 번의 경험'이라는 무형의 기억이 스트레스의 근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란 무조건 나쁜 것일까? 상을 받기 위해 연단 앞에서 기다리거나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입장을 기다리면서 '혹시 드레스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 어쩌지?'라며 긴장할 때도 스트레스 받을 때와 똑같이 반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불편하고 괴로운 스트레스를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하고, 좋은 일이지만 자율 신경계가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것을 유스트레스(eustress)라고 부르기도 한다.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한국 선수가 골을 넣자 환호성을 지르다가 심장 마비로 사망한 사람도 유스트레스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대하는 건강한 태도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평소 스트레스를 잘 관리한다면 병에 대해 내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웬만한 생활 스트레스로는 자율 신경계가 지나치게 반응하여 몸이라는 하드웨어가 손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성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때는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정한 스트레스에 대해 특정한 질환이 생긴다고 밝혀진 바는 없지만,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는데도 해소할 수 없다면 몸에 무리가 간다.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은 사람에 따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강도가 다르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반응 시스템은 보편적이다. 한 개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일 때에는 일시적으로 혈압이 상승하고, 가슴이 뛰고, 온몸이 긴장되는 가역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서서 지속되는 경우, 가장 약한 부위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그 경우 다양한 신체 질환이 발생하는데, 이런 질환은 스트레스의 원인을 발견해서 해결함으로써 증상을 완화한다고 해도 증상이 남으며, 다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면 제일 먼저 그 증상부터 나타난다. 말하자면 스트레스가 기질적으로 약한 부분의 스위치를 켜고, 한번 스위치가 켜지면 질환은 알아서 발전한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예측할 수 있게끔 조정하고, 능력에 맞추어 페이스를 조절하며, 현재 상황을 장악할 수 있다고 느낄수록 주관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는 훨씬 줄어들고 심리적, 신체적 안정감은 커진다.
    10대들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여기고, 입시라는 커다란 임무 앞에서 무기력과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기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명확하고, 공부와 가족과의 관계도 페이스 조절이 가능하다. 도리어 20대나 30대로 넘어가면 앞날을 바라보고 예측하기도 어렵고, 삶을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장악하기도 어렵다. 부모님들이 "지금이 좋은 때지"라며 말하는 것은 이런 뜻에서다. 스트레스란 중력과도 같아서, 절대 없앨 수 없는 우리 몸의 기본 시스템이다. 그보다는 잘 관리하고 경영하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건강하게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