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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

2019-07-05

문화 문화놀이터


투박함 속의 세련됨
도심에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작년 여름을 생각하면 올해는 또 얼마나 무더울까 겁이 나기까지 한다. 더위가 점차로 기세를 올리기 시작하는 요즈음 서울시청 옆 세종대로에 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낯선 풍경이 눈길을 끈다. 덕수궁과 서울시의회 건물사이에 위치한 뻥 뚫린 공간 때문이다.
    전에는 이 자리에 국세청 별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건물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나지막한 높이의 수평선이 대치되어 있다. 그 수평선 위쪽에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이 수평선 아래로는 최근에 개관한 지상 1층, 지하 3층 구조의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세종대로 쪽에서 바라보면 1층의 건축물이지만 뒤쪽 주교좌성당 쪽에서 바라보면 완만한 경사면 위에 잔디로 덮여진 옥상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비워진 공간 덕택에 덕수궁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특히 주교좌성당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 보인다. 한옥으로 이루어진 덕수궁과 주위의 현대식 건물들에 둘러싸인 주교좌성당이 한데 어울려 멋진 서울시청 앞도시 미관을 형성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연속된 아치를 특징으로 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양식 건물이다.
 
서양의 로마네스크양식과 우리전통요소가 어우러진 건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이하 주교좌성당)은 연속된 아치를 특징으로 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Romanesque)은 유럽 중세시대 고딕 성당이 나타나기 전에 교회 건축에 주로 사용되었던 양식이다. 로마인(Roman)들이 사용하던 기술(Esque)인 ‘둥근 아치’를 즐겨 사용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주교좌성당의 건물은 영국인 아서 딕슨(ArthurDixon)의 설계로 1926년 1차 완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당시에는 예산 부족으로 설계자가 의도했던 전체의 그림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대한성공회에서는 1993년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초기의 설계안대로 건물을 완성하자는 건축운동을 전개하였다. 앞서 서울시로부터는 미완성의 형태인 기존의 건물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었기에 원래의 도면으로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 한 증축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난관에 빠져 있던 성공회 측에서는 어느 날 한 영국 관광객으로부터 런던 교외에 있는 렉싱턴 도서관에 있는 아서 딕슨의 유품들 가운데 이 성당의 도면이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설계를 맡았던 김원 씨가 곧바로 영국으로 날아가 그 도면을 복사하여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자 비로소 증축이 가능해졌다.
    증축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996년. 미완성이었던 건축물은 70년 후에야 원래의 설계안대로 완공을 보게 되었다. 설계안은 서양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건물 내·외부에는 우리의 전통 요소를 담으려 노력했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외관에서는 지붕의 오렌지색 서양식 기와가 주종을 이룬 가운데 간간이 우리의 전통 기와가 함께 사용되어 절묘한 색채의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내에서는 고측창의 창살 문양이 우리의 전통 창의 격자 창살을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스테인드글라스에도 격자 창살 문양에서 따온 격자문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중앙통로(身廊, nave) 좌우로 12개의 기둥이 지붕에서 내려오는 둥근 아치를 받치며 좌우로 도열해 있다.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중앙통로가 높고 좌우 기둥들 외곽으로 측랑(側廊, aisle)이 낮게 형성된 전형적인 바실리카(basilica)식 구조로이루어져 있다.
 
중앙통로의 안쪽 제단 뒤로 세미돔 중앙의 모자이크화는 영국의 장식미술가인 조지 잭(GeorgeJack)이 1927년에 시작하여 1938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소박한 성당건물에 화려함을 더한다.
 
소박한 성당건물에 화려함을 수 놓은 모자이크화
    중앙통로의 안쪽 제단 뒤로 세미돔(semi-dome, 반구형의 돔을 다시 반으로 나눈 모양)과 그 아래 반원형의 후진(後陳, apse)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광채는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면 황금빛 반구형 돔 중앙에는 예수의 모습이, 그 아래에는 5명의 성인이 모자이크로 묘사되어 있다. 비잔틴양식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모자이크화를 로마네스크양식인 이 주교좌성당에서 마주하는 순간이다. 높이15m, 폭 11m인 이 모자이크화는 영국의 장식미술가인 조지 잭(George Jack)이 1927년에 시작하여 1938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기독교에서는 초기 기독교 시대 이후 교회를 하나의 소우주로 생각해왔는데 그 소우주 가운데 가장 신성한 공간이 제단의 안쪽인 후진이다. 이 후진은 교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으로 천상을 상징한다. 이 천상의 중심에 반신상의 예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른손은 세 손가락을 펴서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있고 왼손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성경을 펼쳐들고 있다. 예수의 좌우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약자인 라틴어 ‘IC’, ‘XC’가 쓰여 있다. 아래쪽에는 중앙의 성모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각 2명의 성인이 제작되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한국의 전통건축기법이 조화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의 그림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좌우의 성 사도 요한과 예언자 이사야는 각각 신약과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성 스테파노는 예수를 전파하다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게 되어 돌팔매질을 당해 순교한 최초의 순교자이다. 가장 우측에 있는 성 니콜라스는 4세기경 소아시아 뤼치아 지방 미라(Myrae)의 주교였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5명의 성인이 묘사된 그 아래쪽으로는 12개의 기둥이 후진의 반원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앙통로와 좌우의 익랑(翼廊,trancept)이 교차하는 중앙부에는 쌍으로 이루어진 기둥들이 좌우에 각 3개씩 모두 12개가 놓여 있다. 중앙통로 좌우로 도열된 12개의 기둥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12사도를 상징하고 있다.
    제단의 왼쪽에는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쪽문이 있는데 이 안쪽에는 성직자들이 출입하는 공간이 계획되어있다. 타원형으로 된 나선 계단은 지하의 세례자 요한성당과 제단 위쪽 종탑을 연결해준다. 이 성당에서는 평일에는 매일 새벽 6시, 낮 12시, 저녁 6시에 종을 타종한다. 예배시간이나 결혼식, 장례식 때에도 종을 울리는데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이 성당의 종소리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上)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사제관     (下)증축을 시작한 지 2년 만인1996년. 미완성이었던 건축물은 70년 후에야 원래의 설계안대로 완공된다.
 
서양양식의 성당과 한옥이 어우러진 풍경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세례자 요한성당이 이어진다. 낮은 층고의 아담한 이 성당 역시 실내는 중앙통로 좌우와 제단을 둘러싸고 각각 12개씩 기둥이 놓여 있다. 역시 12사도를 상징한다. 중앙통로 바닥에는 3대교구장 조마가 주교의 동판이 놓여 있고 그 하부에는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마침 낮 12시가 되어 밖에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온다. 평시에는 이 지하성당에서 예배가 이루어진단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한 분 한 분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시면서 소상히 알려주시던 신부님과 함께 인증샷을 찍고 발걸음을 성당 밖으로 향한다.
    대성당 뒤쪽에 한옥으로 지어진 주교관과 수녀원, 경운궁 양이재가 자리 잡고 있다. 양이재는 구한말 덕수궁 내에서 대한제국의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인데 성공회에서 이를 매입하여 대성당 뒤편에 옮겨놓았다. 대성당의 서양 양식과 한옥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차를 움직여 성당을 떠나기 전 서울시청 쪽을 바라본다. 사라진 국세청 별관 덕분에 운전석에 앉아서도 가슴이 탁 트이는 개방감이 몰려온다. 비움의 미학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껴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