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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을 사랑하는 테너 김흥용

2019-08-09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문화생태계 DB
성악을 사랑하는 테너 김흥용
'성악하길 잘했어요'

    인터넷에서 김흥용을 검색하면 ‘오페라’, ‘송년음악회’, ‘열린음악회’ 등 다양한 공연 관련 단어들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그가 충북의 각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음색뿐 아니라 맑고 깨끗한 소리를 지니고 있기에 충북을 넘어 전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 지역의 젊은 성악가이다. 콩쿠르 다수 입상이라는 타이틀을 굳이 늘어놓지 않아도, 수많은 공연들로 그는 이미 실력파로 입증받았다.


노래방에서 밀라노까지: 음악의 아버지 신현철
    가요를 잘 부르던 소년이 있었다. ‘노래 잘 부른다’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중학교 3학년 때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성악가의 길로 뛰어든 것은 충북예고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어떻게 보면 당시 성악가 신현철 선생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 첫 시작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늘 “잘할 수 있다, 잘 할 수 있다”, “넌, 할 수 있겠다, 될 수 있겠다”라고 해주셨다고. 일주일에 일곱 번 레슨을 가도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와라, 와라” 해주셨다고 한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의 그가 있게 된 것이다.



    수많은 곡을 불러왔지만 아직도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곡이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선생님께서 주고 가신 노래가 있는데, 오페라 부활의 ‘Piangi si Piangi’라고 “울어라, 울어라”라는 내용입니다. 프랑코 알파노가 작곡한 아리아인데요. 그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선생님 생각도 나고 그래서 항상 콩쿠르에도 그 곡을 가지고 나가요. 그 곡으로 입상도 많이 했는데 다 선생님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만남에는 인연이 있다고 한다. ‘Piangi si Piangi’도 마찬가지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한예종 진학 후 외국에 가고 싶어 한 그는 마스터 클래스와 같은 단발성 아카데미로 이탈리아에 가게 되었는데, 학교의 제안으로 밀라노에 있는 베르디 콘서바토리를 다니며, 근 10년간 지내며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노래도 하고 콩쿠르도 다녔다. 요즘 그는 독창회 준비를 하고 있다. 독창회는 주어진 시간에 모든 결과물을 보여주는 자리이기에 여러 가지 행사가 많은 가운데서도 연습을 하고 있다.

성악하길 잘했어요 - 마약과 같은 존재
     “마약이에요, 마약. 이게 뭐 성악이라는 게 어느 날은 소리가 잘 나고 어느 날은 소리가 잘 안 나고 기복이 있죠. 몸이 하는 일이니까요. 컨디션도 많이 타고요. 감기 걸리면 안 되고, 뭐 하면 안 되고, 하지 말아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요. 잘되지 않으면 고민도 되고요. 그런데 반면에 소리가 잘 나오고 가사를 읊으면서, 관객들에게 가사를 전달하면서 관객과 교감하고 있는 게 느껴지고 가슴이 뜨거워질 때는 ‘정말 성악하길 잘했구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말 마약과 같은 존재예요. 끊을 수 없는”
    마약이라 불릴 정도의 매력은 관객과 함께했을 때 절정이 오기에 그가 노래를 끊지 못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기억에 남는 콩쿠르
    그에게 많은 콩쿠르 입상 경력이 있지만 딱 하나를 정한다고 한다면 단연코 스페인 자코모 아라갈 국제 성악콩쿠르다. 아쉽게도 2위에 그쳤지만, 그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했던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인 자코모 아라갈의 이름으로 열린 콩쿠르였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그는 자코모 아라갈이 맑은 음색과 진취적 목소리, 예민한 곡 해석력을 가졌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지금 연세가 거의 90 가까이 되셨는데, 그분을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존경했어요. 그분 CD를 엄청 많이 들었죠. 언젠가는 그분 이름으로 열리는 콩쿠르에 꼭 나가서 상을 받겠다고 생각해왔죠.”
    어쩌면 김흥용의 음색은 자코모 아라갈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수천 번의 자코모 아라갈의 CD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성악가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 사람의 발성과 그 사람의 뉘앙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배우는 거예요.”


 
후배양성의 아쉬움, “미쳐보지 않을래?”
    클래식 음악은 아직 대중화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차이를 확연히 느낀다고. 광고나 방송을 통해서 많이 접했던 곡들을 불렀을 때 관객들이 더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는 일단은 귀에 익숙한 노래를 통해 청중과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후배양성을 위해 중점을 두는 것은 레슨이다. 후배들에게 그가 공부한 것을 나누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서 공연을 하는 것과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은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이들을 보면 그 친구들만의 사연들이 다 있더라고요. 내면에 쌓인 사연들이. 그들이 하는 노래를 들어보면 그 사연들이 다 보여요. 노래할 당시의 감정상태도 파악할 수 있죠. 이 친구가 오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선생의 입장이니까 항상 기분이 좋아야 하잖아요. 이 친구들을 가르칠 때 그게 너무 힘들어요. 또, 저는 이만큼을 가르쳐주고 싶은데, 이 친구들은 이만큼을 못 따라오니까 항상 제가 답답함을 느끼죠. 후배들을 끌어주고 싶은 마음이 많이 커요.”
    “보통 한 시간 정해놓고 레슨을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게 잘 안 돼요. 막 두세 시간씩 앉혀놓고 계속하는 거예요. 계속 반복, 반복”
과정보다는 결과를 좇는 요즘 아이들에게 그가 주문하는 것은 ‘미쳐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