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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촬영지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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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촬영지
'숲 속 별천지, 보성 강골마을'

    드라마<신입사관 구해령>에서 첫 회부터 눈길을 끈느 곳이 있다. 도원대군(차은우분)이 내관(성지루 분)에게 자신이 쓸 소설의 구상을 이야기하던 곳으로, 바로 강골 마을의 열화정(국가민속문화재 제162호)이다. 드라마에선 광한루와 창덕궁 후원과 한 장소로 착각할 정도로 열화정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강골마을은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에 있는 30여 호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러나 3채의 집과 1개의 정자 등 4곳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그중 열화정은 마을 제일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운치 있는 원림이다.


사모롱이 뒤에 감춰진 별천지
    참 이상도 하다. 정작 입구에선 집 한 채 보이지 않는데, 산모롱이를 돌아서면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은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있다. 발걸음을 한 발자국 뗄 때 마다 한두 채씩 나타나는 집들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신선들이 살 법한 비밀의 공간 같다. 숲속 여기저기에 숨은 듯 박혀 있는 지붕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순 간, 이 한적한 남도의 시골마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간 듯 아득해진다.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해서 마을 이름이 ‘강골’이다. 한자로 골짜기 ‘동’자를 써 강동(江洞)으로 적기도 한다. 지금은 바다는 간데없고 간척으로 비옥한 농토가 마을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다. 경전선 철길도 마을 앞을 지난다.
    마을은 약 950년 전 양천 허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면서 형성됐다. 그 후 원주 이씨가 500년 동안 거주했고, 광주 이씨가 정착한 것은 400년 전 일이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했고,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백로가 서식했다 한다.
    숲속에 드문드문 자리한 집과 집은 서로의 공간을 노출하지 않고 각자의 공간을 누리고 있다. 어른 두서넛 나란히 거닐 수 있는 예쁜 고샅길로 집들은 서로 이어진다. 고요한 마을이지만 햇빛만은 차고 넘친다. 사방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사각사각 대는 대숲 소리, 나무에 몸을 섞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멈춘듯하다.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노라면 ‘이런 별천지가 있나’ 하며 절로 감탄하게 된다.

그윽한 아름다움, 열화정
    마을로 들어서면 연못과 고택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이진래 고택(이용욱 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제159호)이다.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으로 1800년대에 지었다. 높다란 솟을대문을 한 행랑채와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안채, 사당 겸 서재까지 갖추어 고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집은 오봉산을 바라보고 있다. 툇마루에 앉아 오봉산을 바라보면 실제보다 가까이 보이는데, 원근감을 고려하여 집을 설계한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녹두꽃>에서 황 진사의 집으로 나온 곳이기도 하다.
    대숲이 울창한 강골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열화정(국가민속문화재 제162호)이다. 마을의 제일 높은 자리에 깊이 침잠한 열화정에 오르면 한 폭의 그림이 따로없다. 정자로 가는 길에 깔린 박석에선 리듬감이 느껴지고, 쭉쭉 뻗은 대나무와 푸르른 댓잎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목련·석류·벚나무 등 갖은 나무들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한다. 나무 그림자가 멱을 감는 연못도 아름답지만 건물 자체가 주는 그윽함은 비길 데 없다. 우리 원림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左)열화정 장면 스틸 컷   (右)열화정 연못, 화계 풍경


    열화정은 1845년(헌종 11)에 이진만이 후진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친척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悅親戚之情話)”라는 글을 따서 열화정(悅話亭)이라 했다. 일각문인일섭문(日涉門)도 “날마다 동산을 거닐어도 풍취가 인다(園日涉以成聚)”는 뜻으로 향촌에서 소요하며 즐기는 선비의 풍모를 나타낸 글귀다.
이진만의 손자 이방회가 당대의 석학 이건창 등과 학문을 논하던 곳이기도 하고, 이관회·이양래·이웅래 등 한말 의병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정자 맞은편 안산에는 만휴정을 별도로 지어 전원의 정취를 즐겼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열화정은 앞면이 4칸이고 옆면이 2칸인 ‘ㄱ’ 자 형의 누마루집이다. 높은 축대 위에 덤벙주춧돌을 놓고 둥근 두리기둥을 세워 건물을 올리고 그 앞으로 활주를 두개 세워 건물이 날렵하면서도 품격 있다. 예전 이곳에선 오봉산과 득량만 바다를 조망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울창한 숲이 사방을 가리고 있다.
    열화정에서 마을로 내려오다 보면 이정래 고택(이금재 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제157호)을 만난다. 이 집에선 특이한 구조의 안채를 볼 수 있다. 안채는 5칸으로 앞에서 보면 남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一’자 형인데, 뒤에서 보면 ‘ㄷ’ 자 모양의 날개가 달려 있다. 바닷물에 담가 강도가 높은 목재로 지었다는 이 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오봉산 자락을 바라보면 무척이나 풍경이 다채롭다.

마을의 소통공간, 소리샘
    이진래 고택과 이정래 고택 사이에는 특이한 샘이 하나 있다. 일명 ‘소리샘’이다. 우물가 담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러 뚫어놓은 이 돌구멍 사이로 집주인은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고, 마을 사람들은 대감 집을 엿보곤 했다. 소리샘은 마을 여론을 듣고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예전 이준회 고택(이식래 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제160호)에서 정성들여 차린 시골밥상을 먹었던 적이 있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는 초가인 데 비해 곳간채는 기와집이다. 살림이 풍족했고, 곡식과 농자재 등의 보관을 중요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곳간채는 이진래 고택과 붙어 있어 자연스럽게 담장 구실도 하는데, 원래 한집에서 두 집으로 분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통 돌로 디딤판을 만든 이 집의 대문간 화장실은 좀처럼 보기드문 구경이다.
    강골마을은 작은 시골마을임에도 국가민속문화재로 4곳이나 지정돼 있다. 게다가 이 고택들은 각기 다른 형태여서 우리 옛 가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골 마을에는 엿이 꽤 유명하다. 겨울에 만드는 이곳의 엿은 이에 달라붙지 않는 데다 그 맛 또한 일품이다.
 
01. 강골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대숲 풍경  02.왼쪽 이진래 고택(이용욱 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제159호)담벼락에 구멍이 뚫려 있어 소리샘이라 했다.
03. 이진래 고택(이용욱 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제159호)은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으로, 높다란 솟을 대문을 한 행랑채와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안채, 사당 겸 서재까지 갖추어 고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강골마을에 온 김에 바다로 길을 잡으시라. 그 길에선 옛날 선창이었던 왜진포(지금의 조양마을)를 드나드는 배들을 묶어두던 계선주도 볼 수 있고, 남도의 멋이 깃든 해평리 돌장승(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5호)도 볼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돌장승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할머니 당산나무도 친견할 수 있다. 아직 도 영업 중인 오랜 추억의 이발관도 만날 수 있다. 풋풋한 남도길은 바다로 이어지고 그 끝에서 만난 득량만의 바다는 어득하다.
    강골마을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기차를 타고 오시라. 경전선이 이곳 득량역에서 멈춘다. 벚꽃 필 무렵이면 시골 간이역은 꽃 천지이다. 곽재구의 시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득량역이 아련한 봄날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곳은 어디인가 / 바라보면 산모퉁이 /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