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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안식처 강화 고인돌과 쌍둥이처럼 닮은 아일랜드 고인돌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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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안식처 강화 고인돌과 쌍둥이처럼 닮은 아일랜드 고인돌
'사회구조, 정치체계,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수 있는 세계문화유산'

    한민족의 첫손 꼽히는 성지(聖地)이면서 우리나라의 관문인 강화도는 섬이면서 섬이 아니다.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놓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동차로 건널 수 있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강·예성강·임진강이 모여 서해로 흘러드는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시대의 부침을 제일 앞서서 겪었던 땅, 강화의 역사는 선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한반도 고인돌과 유사한 아일랜드 고인돌
    봄이면 진달래가 온 산에 붉게 물드는 고려산 자락에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분포한다. 고려산 북쪽 언저리 강화군 하점면의 탁 트인 평지에 사적 제137호인 부근리 고인돌(지석묘)이 우뚝하다. 남한에서 발견된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좌우에 받침돌을 세워 무덤방을 만들고 50톤 무게의 돌을 얹어 덮개돌로 했다.
    원래 양끝에 마감돌이 있었을 터이나 지금은 없어지고 좌우 받침돌만 남아 있어 석실 내부는 트여 있다. 긴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받침돌의 한쪽은 갈라지고 전체 형태는 기울어져 조금은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을 견디고도 여전히 견고하고 굳건해서 그 힘의 균형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아시아대륙을 넘고 유럽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닿는 대서양 동북쪽 섬나라 아일랜드에 이를 닮은 고인돌이 분포해 있다. 통상 서유럽의 거석 문화 속에 포함되어 알려져 있으나 아직 우리에게 전해진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한반도의 고인돌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고인돌은 한반도의 고유한 선사시대 묘제로 한국 청동기 문화의 분포 범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고인돌이 처음 축조된 시점은 청동기시대 전기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 후기부터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남한지역에서는 기원전 11~10세기부터 만들어져 초기 철기시대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고인돌은 외형과 구조의 차이에 의해 처음에는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뉘었는데 대체로 매장 주체부가 지상으로 노출된 북방식은 북한지역에, 매장 주체부가 지하에 조성된 남방식은 남한지역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가 거듭될수록 고인돌을 단순히 두 가지로 나누기에는 그 형태가 너무 다양하고 분포 양상도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북방식은 탁자식으로, 남방식은 지석이 있고 없음에 따라 다시 기반식과 개석식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고인돌의 전체 구조, 상석의 형태, 매장부의 구조와 형태, 묘역의 설치 유무 등의 속성에 따라 다시 세분된다.

숭배의 대상이던 거석
    고인돌은 거석문화(巨石文化, Megalithic Culture)의 일종이다. 거석문화는 인간이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로 무덤을 만들거나 커다란 구조물을 만들어 숭배의 대상물로 삼는 것을 말한다. 고인돌[支石墓]이나 선돌[立石]이 이에 해당되고, 돌널무덤[石棺墓]이나 돌무지무덤[積石墓]도 포함될 수 있다. 세계의 거석문화에는 선돌, 열석[列石], 환상열석[環狀列石], 석상[石像] 등이 있는데 영국의 스톤헨지나 남태평양에 있는 이스터섬의 석상이 대표적이다.
    거석물은 신앙적·사회적 목적에서 만들어지거나 기념물 등으로 조형되며 사자를 기리는 무덤으로도 축조된다. 즉, 태양숭배와 관련짓기도 하고, 풍작과 수확물에 대해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세운 제의 시설이나, 주변 집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전승 기념물, 지도자를 추모하기 위해 거석비의 형태로 세워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인돌은 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인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지역 등 거의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가까이는 중국 저장성과 요령성지역, 일본 남서부지역에 분포한다. 중국 동북지방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으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이 모두 분포한다. 주로 요령성과 길림성 등 요동지역에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며 랴오허강 서쪽에서 발견된 예는 없다.
    일본의 고인돌은 우리나라와 가까운 규슈지역의 나가사키, 사가, 후쿠오카현에 집중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규모가 작고 탁자식은 없다. 이외 아시아지역에서는 인도, 인도네시아, 대만 등 주로 인도양과 태평양 인근에서 발견되고 있다.

해안을 따라 전 세계에 분포된 고인돌
    고인돌을 비롯한 거석문화는 주로 큰 바다와 인접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유럽의 거석문화는 대체로 대서양 동안을 따라 집중 분포되어 있다. 북유럽의 고인돌은 발트해 연안인 스웨덴 남부부터 덴마크, 네덜란드 북부, 독일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서유럽의 고인돌과 거석문화는 프랑스가 그 중심을 이루면서, 남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서쪽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에 이른다.
    지중해 연안의 거석문화는 코르시카와 사르디니아섬, 프랑스 남부인 프로방스지역, 이탈리아의 동남부반도, 아프리카 북부인 알제리, 지중해 동안인 시리아 등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흑해 연안의 고인돌은 러시아 코카서스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지금까지 파악된 세계 각지의 고인돌은 6만여 기로 추정된다. 그중 전 세계 고인돌의 40~50%가 우리나라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의 기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동남아시아에서 해로를 따라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와 북방의 돌널무덤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었지만, 자생기원설이 힘을 얻고 있다. 자생기원설은 우리나라에 고인돌이 가장 많이 밀집 분포되어 있고 형식도 다양하며 다른 지역의 고인돌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아일랜드 버른 폴나브론 돌멘
 
기원과 불멸의 상징이었던 고인돌
    강화도에는 부근리 고인돌을 비롯해 삼거리, 오상리 등 고려산 기슭을 따라 16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650cm, 너비 520cm, 두께 120cm로 우리나라 최대의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그리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이르는 아일랜드의 서쪽 클레이주, 대서양을 마주한 해안가 언덕 위에 부근리 고인돌을 닮은 탁자식 고인돌이 분포한다. 넓고 편평한 석회암지대 위의 고인돌들은 유럽의 거석 문화 속에서 이해된다. 고인돌을 비롯한 아일랜드의 거석무덤은 1,500여 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른(Burren)의 고인돌은 ‘폴나브론 돌멘(Poulnabrone Dolmen)’이라고 부르는데 ‘슬픔의 구멍’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폴나브론은 높이 1.8m의 받침돌 위에 9m 길이의 덮개돌을 올린 거대한 무덤으로 기원전 3000~2500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무덤에서는 아기부터 성인까지 30여구의 인골과 함께 돌도끼, 돌구슬, 구멍이 뚫린 뼈 팬던트, 뼈 바늘, 화살촉, 도기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출토 유물의 종류로 견주어 보면 우리나라 고인돌의 출토품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그러나 기후도 생태도 너무 다른 강화와 아일랜드의 고인돌 사이에 아직 어떤 연결고리도 찾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돌의 모양과 거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은 둘 사이의 사회적·신앙적 이해가 서로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선사인들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기후변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살았다. 선사인들이 가졌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거리를 떠나 인간의 공통적인 과제였을 것이다. 돌은 그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불멸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커다란 돌을 이용해 만든 고인돌은 죽은 혼령이 안식하는 곳이자, 혼령을 정성으로 모심으로 자연의 위해로부터 살아남은 자의 안녕을 비는 제단 역할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남한지역에만 3만 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북한지역까지 합치면 약 4만 5,000여 기가 된다. 현대에 이르러 빠르게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고인돌이 경지 정리 등으로 훼손되고 사라진 것을 감안하면 원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강화도 고인돌은 2000년 12월에 전라북도 고창, 전라남도 화순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밀집분포도, 형식의 다양성 면에서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이고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강화, 고창, 화순의 거대한 석조로 만들어진 고인돌은 기원전 3000~2000년 전의 무덤과 장례의식 기념물로서 선사시대 문화가 집약되어 있으며 당시의 기술과 사회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