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다

2020-05-27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콩트>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다
'글. 박순철'

    저 지난 해 퇴직하고 전국을 일주했다. 정말 신바람이 나고도 남았다. 
    조금 모아 둔 여행 경비는 금방 바닥이 나고 이제 아내도 따라다니기 싫다며 나 혼자 마음대로 다니란다. 혼자 다닌다고 해서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차는 운전하고 다녀야 하고 잠도 여관에서 자야 한다. 줄어든다면 식비 정도가 될까. 사실 나도 반년 가까이 여행을 다니고 나니까 별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막상 갈만한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아침 먹으면 우암산 올라가는 게 일과가 되었다. 우암산에 가면 나 같은 또래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은 속된말로 왕년이 어떻고 하며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나는 남 앞에 내세울만한 게 하나도 없으니 그들의 이야기를 재미난 척 들어준다. 이제는 우암산도 매일 오르다보니 지쳐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땜질하기 위해 오르는 산은 재미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고역에 가까웠다.  
    늘 허기진 사람처럼 마음이 허전한 게 꼭 2% 부족함 같은 게 밀려오곤 했다. 아침 먹고 출근할 곳이 없다는 게 이처럼 가슴 시리게 할 줄은 예전엔 몰랐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하늘같이 부러웠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면 할 것 같은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써들고 찾아가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한결같다. ‘연세가 좀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필요로 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음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 못지않은데 어느새 뒷방 늙은이로 내몰리는 것 같아 심정이 참담했다. 
    다행이 손바닥만한 화단이 있어서 그곳이 나의 유일한 놀이터요. 일터가 되어갔다.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지 방울토마토 달린 숫자까지 기억해 낼 정도였다.
    아침 먹고 우암산 올라가서 싫건 놀다가 와도 점심시간이 이르다. 그러다보니 오후에는 아는 사람 만나 술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는 나를 두고 아내와 자식들은 원성이 자자하다. 그러니 어쩌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것을.



    “네 유동식입니다.”
    “아! 마침 연결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나 기억하겠어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직장 다닐 때 총무계장을 하던 장인욱이었다.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모난 데가 없어서 많은 직원이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나보다 몇 년 전에 퇴직했기에 근황도 모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오다니 무척 반가웠다.  
    “계장님!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야 뭐 항상 잘 지내고 있지.”
    “한번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무슨, 만나서 술 한 잔 할까?”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얼마나 변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목소리로 봐서는 전혀 늙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농사지어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것 같아 청주로 이사 나오자 살 길이 막막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이 가까웠다. 어찌어찌 국영기업체에 임시직으로 취업이 되었지만 어려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루는 타자를 치던 여직원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결근하는 바람에 보고할 공문은 급하고 타자 칠 사람은 없고 사무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나는 군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할 때 텔레타이프를 친 일이 있어서 빨리는 아니어도 흉내는 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져본 타자기로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보낸 일이 있는데 그 이후 여직원이 결근 하든가 출장 가면 그 일을 내가 대신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동료 직원에게 내 일을 떠넘기는 결과가 되어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지만, 사무실에서 부르는 데는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렇게 자주 불려 다닐 바에야 아주 사무원으로 전직하라고 비꼬는 동료도 있었다. 결국 워드 3급 시험에 합격하여 정식 사무원으로 전직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장 계장은 머리가 많이 빠지긴 했어도 그 소탈하던 웃음은 여전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게요. 지금 건물 관리소장 자리가 한 군데 나는 데 한번 해보지 않겠어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지만 기계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크게 어려운 건 없어요. 나도 하는 데 유 형이야 아무 것도 아닐 거야? 엑셀은 좀 하잖아. 아래 한글은 워드 3급 실력이면 충분하고.”
    하는 일은 수도와 전기 검침해서 입주민이나 상가 입점주에게 고지서 발부하고 은행에 돈 들어오면 그 돈 받아서 공과금 지출하면 되고, 미화원이 있으니 청소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력서를 내고 기다리자 면접을 보러오라고 한다. 면접관은 상가 번영회 임원인 듯 했다.
    “사무원으로 퇴직하셨군요. 이곳에 오면 때에 따라서는 청소도 하고 복도에 전등이나 수도도 고쳐주어야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큰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것도 알고 지원하셨나요?”
    “네. 보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만 시켜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합니다.”
    면접에 응시한 사람은 네 명이었는데 한 명을 제외하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였고, 전직도 다양해서 육군 대령 출신과 교장 출신이었고, 나이가 조금 적은 사람은 회사 간부 출신으로 모두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전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과 겨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어찌 중학교 졸업장에, 국영기업체 사무원 출신이 그들의 높은 학벌, 오랜 경륜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면접 보고 돌아오는 마음이 심드렁했다. 전혀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기다려 보자고 한다. 공연히 되지도 않을 일 가지고 사람 마음만 달뜨게 한 꼴이 된 것 같아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내가 삼겹살 안주에 술 한 병을 가지고 와서 따라주며 수고했으니 먹고서 한 숨 자란다. 잠결에 휴대폰 울리는 소리가 나서 간신히 폴더를 열었다.
    “유동식 씨 되십니까?”
    “네. 제가 유동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곳은 희망빌딩 번영회입니다. 우리는 유동식 님을 우리 건물 관리소장으로 모시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오전에 면접을 본 그 곳이었다. 
    “아니, 저 보다 훌륭하고 경륜 높은 분이 많아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잘 믿어지지 않는구먼요?”
    “아닙니다. 우리 건물에는 유 선생님 같은 분이 적임자입니다.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세요.”
    얼떨떨하던 정신이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