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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손길로 완성된 전통의 맛

2020-09-08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농식품 종합 정보매거진 <농식품 소비공감>

장인을 만나다
백번 손길로 완성된 전통의 맛
'유영군 장인'

    쌀과 엿기름이 주원료인 쌀엿은 예로부터 궁이나 양반가에서 즐기는 고급 간식이었다. 만드는 과정이 워낙 까다로워 요즘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는 엿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현재까지도 전통을 고수하며 그 맛을 지키는 장인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1호이자 호정식품의 수장, 유영군 장인이다.


 


어려운 시절에도 이어온 전통
    1990년, 전남 담양에 설립된 호정식품은 쌀엿, 조청, 한과 등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표면적으로는 설립된 지 30년 된 기업이지만, 내면에는 벌써 3대째 전통 쌀엿의 명맥을 이어온 유영군 장인의 긍지와 숨결이 담겨 있다. 이곳 쌀엿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무려 45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시대,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이 담양 창평 지역에 낙향할 때 동행한 궁녀들이 기술을 전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산강의 발원지이자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지역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쌀로 만든 궁중의 고급 간식이 유명해졌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에는 쌀로 간식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했을 터. 1960~1970년대에는 쌀로 엿이나 술을 만드는 행위조차 단속 대상이었다고 하니, 이런 상황에서 쌀엿의 명맥을 잇는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서민들이 먹을 쌀도 부족하던 때라 쌀엿의 명맥을 잇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다행히 1980년대 들어 정책적으로 쌀을 많이 생산하면서 쌀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을 장려했지요. 이런 배경으로 호정식품이 기업화되기는 했습니다만, 예로부터 집안에서 만들어온 쌀엿 제작 방식은 할머니, 어머니, 저까지 3대에 걸쳐 전수되었습니다.”


 
고집스럽게 지켜온 창평쌀엿의 품격
    창평쌀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 가지 이상의 제조 공정이 필요하다. 간단하게 읊어보자면, 우선 식혜를 만든 뒤 액체만 걸러 끓여 조청을 만들고, 조청을 더 졸여 갱엿을 만들고, 갱엿을 쭉쭉 늘여 흰 엿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말로만 한다면 단 몇 마디에 끝나는 과정이지만 실제 해보면 몇 날 며칠 진이 다 빠질정도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다른 첨가물 없이 쌀, 엿기름, 생강으로만 맛을 내는 만큼 재료 하나하나를 고르고 손질하는 것부터 매우 중요하다. 겉보리를 직접 길러 수확한 후 수차례 씻고 건조하면서 일정한 길이로 싹을 틔워 엿기름을 만드는 것, 엿기름에 고두밥을 넣어 식혜를 만들고 잘 삭도록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유지하는 것, 잘 삭은 식혜를 온종일 짜서 찌꺼기를 걸러내는 것, 거른 액체를 적당한 온도의 불로 몇 시간씩 은근히 졸여 조청과 갱엿을 만드는 과정,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갱엿을 접고 늘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끝나야 창평쌀엿이 완성된다. 단면에 불규칙한 구멍이 송송 뚫린 덕에 파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창평쌀엿은 씹어 먹어도 이에 들러붙지 않고 따끈하게 녹아내린다.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엿이나 호박엿과 다른 은은한 단맛과 생강 향이 특징이다.
    “요즘은 자동화 시대지만, 시루에 찌던 쌀을 찜솥에 찌는 것이나, 식혜를 거를 때 사람이 직접 삼베 자루에 올라가 짜던 것을 압착기로 짜는 것 정도만 바뀌었을 뿐 갱엿을 늘이는 마지막 단계는 지금도 수작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손이 아닌 기계로 하면 엿이 다 들러붙거든요. 그리고 갱엿을 늘이고 접으면서 그 속에 공기가 적당히 들어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기계가 할 수 없는 기술이라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전통 쌀엿의 대중화를 꿈꾸다
    유영군 장인은 쌀엿의 재료도 오로지 국내산을 고집한다. 심지어 생강은 토종만 사용한다. 외국산보다 비용이 부담될 수 밖에 없는데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장인의 신념 때문이다.
    “명인이라면 국산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주변 농가를 육성하며 함께 성장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혼자 이 일을 하다 현재는 50여 농가가 함께하며 전통 엿이나 조청을 제조하는 기술도 주변에 전수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공장도 꾸준히 설립하고 있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전통 쌀엿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재료가 비싸고 공정이 까다로워 대중화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인 또한 이런 문제를 실감하며 전통 식품 대중화에 정책적 지원이 뒤따르기를 바란다.
    “쌀엿의 장점으로는 섭취했을 때 인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제조 과정이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이라는 점입니다. 쌀엿을 만드는 과정에는 환경을 오염시킬 만한 오·폐수가 발생하지 않지요. 쌀을 씻을 때 쌀뜨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쌀뜨물은 식물 재배나 축사에 용수로 활용할 수 있고, 그 외에는 모두 조청과 엿으로 가공되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이 없습니다. 또 쌀 1kg를 활용하면 약 200g의 엿이 나오니 무게가 줄어 운송비, 유통비를 절감할 수 있어 좋죠. 요즘 쌀이 많이 남는다고 하는데, 쌀을 활용한 다양한 전통 식품을 활성화해 쌀 소비량을 늘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 식품의 계승은 문화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힘들고 고독한 길이기에 많은 곳의 지원과 여러 사람의 응원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훗날 우리 지역이 쌀엿 관련 산업으로 단지화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명인의 꿈이 실현되길 기원한다.

TIP. 유영군 장인이 말하는 쌀엿의 효능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는 창평쌀엿을 ‘광주 흰 엿’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고서에 따르면 쌀엿은 폐와 장을 윤택하게하고 가래를 삭히는 효능이 있다. 또 성질이 따뜻해 소화를 도우므로 겨울에 먹거나 몸이 찬 사람이 먹으면 좋다. 한의학에서는 ‘이당(飴糖)’이라고 해 맛은 달지만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당뇨 환자들이 섭취하면 좋다고 전해진다. (글 이선 / 사진 장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