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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축제,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2020-09-16

교육행정 체험현장

충북교육소식지

배움이 활짝
학교 축제,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 부스를 운영하면서'

    서전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서 학교 축제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림 부스를 운영했고 소감을 이곳에 썼었다(2019년 3월 충북교육소식). 글은 기림 부스를 처음 운영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고 끝을 맺었다. 그래서 조금은 나아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 부스를 운영한 소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 부스 모습

    이 부스를 기획하고 운영한 선생님은 나를 포함하여 2명이었다. 우리는 서전중학교 교명과 어울리면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학생 자치와 민주시민교육을 축제와 연계시키는 방안까지 고민하면서 준비했다. 나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독립운동가 이름을 맞춰라’ 부스를 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고 같이 준비하는 선생님도 동의했다. 우리는 부스 2개를 준비를 하다 보니 일과 이후에도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진행 사항을 수시로 체크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독립운동가 이름을 맞춰라’ 부스는 우리 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제작한 독립운동가 카드와 독립운동 키링 2종, 이상설 L홀더, 안중근 보틀병을 준비했다.
    ‘독립운동가 이름을 맞춰라’ 부스 준비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하고 원래 의도였던 일본군 ‘위안부’ 기림 부스 준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할까 한다.
 
설명

    일본군 ‘위안부’ 기림 부스는 도서 전시, 수행평가로 실시한 독후활동 작품 전시, 평화의 나비 전시, 종이 소녀상 만들기, 나비 팔찌 만들기, 뱃지 배부, 기부금 모으기로 꾸몄다.
    중학교 3학년 취약시기를 활용하여 일본군 ‘위안부’ 수업을 하고 모둠별로 ‘평화의 나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뱃지 디자인을 제출하도록 하였다.
    첫해는 미술 잘하는 학생들을 불러서 뱃지 디자인을 했는데, 이번에는 3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뱃지 디자인을 받았으니 처음 의도한 대로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기서 디자인이 선정되어 뱃지로 제작된 것을 본 학생은 당연히 너무 좋아했다.
    축제 당일 날 체험 부스가 열리고 곧바로 많은 학생들이 몰려 왔다. 이번 축제는 첫째 날은 체험 부스, 둘째 날은 축제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 와서 종이 소녀상과 나비 팔찌 만들기 체험을 했다. 한꺼번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지만 부스를 운영하는 학생들을 넉넉하게 선발하고 사전에 교육을 시켜서 혼잡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부스를 운영하는 학생들을 3개조로 나누어 2시간씩 맡기니 힘들어 하지도 않았다. 넉넉한 체험 시간과 적극적 홍보로 부스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이제 축제를 운영하면서 모은 기부금을 전달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모금함이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교무부장님이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교무부장님이 가져갈 이유가 없다며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교무부장님이 분실될까봐 미리 교무실에 두었고, 미처 나에게 이야기를 못했다고 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모금함을 찾았다. 기부금은 부스 운영을 하면서 모은 기부금, 우리 학교가 소비자 교육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모은 수익금, ‘전쟁과 여성 박물관’에 부탁해서 받은 저금통을 합쳤다.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직접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부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기부금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보니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수요 집회에 참석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축제와 졸업식 사이에 있는 수요일은 여러 사정으로 참석할 수가 없었다. 둘째, 정의기억재단에 가서 기부하고 ‘전쟁과 여성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있다. 그러나 재단과 박물관의 일정이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일정과 맞지 않았다. 셋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활하시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이곳은 다행히 서로의 일정이 맞아서 방문하기로 했다.
 
(左) 기부금 전달식     (右) 서대문 형무소

    우리는 학생들이 식민지 시대의 실상을 좀 더 알고 나눔의 집을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오전에는 서대문형무소를 가기로 했다. 체험학습을 간 날은 최고로 추운 날이었고 서대문형무소에 부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더욱 춥게 느껴졌다. 학생들에게는 벽면 가득히 독립운동가 얼굴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 유관순 얼굴 찾기를 미션으로 주었다. 학생들은 여옥사, 사형장, 지하 고문실 등을 꼼꼼하게 관람했다. 특히 학생들은 벽관 고문을 체험하고 무섭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점심을 먹고 나눔의 집으로 향했다. 나눔의 집은 한적한 시골에 있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기념관을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을 잘해주셨다. 학생들은 전시실 중에 위안소를 꾸며놓은 곳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나도 영화 ‘눈길’의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기념관에서 설명을 다 듣고 나오는데 일본인들도 와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기념관 관람이 끝나고 우리는 할머니들이 생활하시는 생활관에 방문할 수 있는지 물었는데 그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학생들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왔는데 막상 만나지 못하니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학생 대표가 기부금을 전달하면서 일정을 끝마쳤다.
    우리가 일정을 끝마칠 쯤에 조금 전에 보았던 일본인들도 일정이 끝난 모양이었다. 그들은 직접 할머니들을 만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입구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웃으라며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김치’하고 찍었다. 이곳에서 웃으면서 사진 찍는 게 과연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기림 부스를 운영하면서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큰 돈과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과 사랑만 있으면 된다.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발길과 손길 그리고 눈길이 닿을 수 있는 그 어딘가를 찾으면 될 뿐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어딘가에서 현재의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