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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들려주는 사람들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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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미래
콘텐츠 들려주는 사람들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온 목소리로 듣는 편안함'

    조선시대에는 책을 읽어 주는 사람 ‘전기수’가 있었다. 근대에는 영화의 대사를 읽어 주는 ‘변사’가 존재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현대에도 있다. 강독사, 오디오북 내레이션 성우, 유튜브를 통해 책을 읽어 주는 크리에이터까지 다양하다. 좁게 보면 책을 읽는 일이지만 시야를 넓혀 보면 이들의 역할이 ‘콘텐츠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콘텐츠를 들려 주고, 누군가를 통해 듣는 것. 그 행위는 아주 오래된 우리의 미래였다.
 
뮤지컬 <판>. 양반가 자제 '달수'가 조선 최고의 전기수 '호태'를 만나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정동극장)
 
왜 남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까
    여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가 있다. 운종가를 걷던 사람들은 남자의 낭랑하고 유쾌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마침 잘 아는 삼국지의 내용을 말하는 중이었다. 벽처럼 둘러싼 구경꾼을 헤치고 들어가니, 담벼락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가 한창 적벽대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둘러싼 구경꾼은 점점 높아지는 남자의 목소리에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제갈량의 동남풍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그 남자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들 어서 다음 내용을 들려 달라고 채근했지만 남자는 뒷짐을 진 채 딴청을 피웠다. 결국 앞에 있던 몇 명이 엽전 몇 닢을 앞에 던졌다. 엽전이 쌓이는 소리를 들은 남자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동남풍이 우루루루! 불어오면서~!”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은 잠깐 동안이나마 팍팍한 삶의 현실을 잊어버렸다. 오늘 저녁을 못 먹을 수 있고, 성질 사나운 주인에게 혹독한 매질을 당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내려놓은 채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졌다. 이야기를 천대하던 조선시대에 전기수들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左) 『추재집』 조선후기 시인 조수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9년에 간행한 시문집(ⓒ한국학중앙연구원)     (右) 『청구야담』 조선 후기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야담집(ⓒ한국학중앙연구원)
 
오늘도 이야기하는 남자, 전기수의 탄생과 변화
    조선 후기 조수삼이 쓴 『추재집』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소설을 낭독했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에 이르면 소리를 그치고 청중이 돈을 던져주기 기다렸다가 낭독을 계속했다’라고 나와 있다. 전기수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생계를 유지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없었고,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 전기수는 걸어 다니는 극장이나 TV 혹은 오디오북이었던 셈이다. 전기수는 책을 읽고 내용을 외워야 했기 때문에 머리가 대단히 좋아야 했고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는 느긋함과 배짱도 있어야만 했다.
    배짱과 자신감으로 무장한 전기수는 한양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다리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혹은 담배를 썰어서 파는 절초전이나 약방 앞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이들은 『삼국지』나 『임경업전』, 『심청전』이나 『박씨부인전』같이 사람들이 잘 알고 있거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이야기를 주로 들려줬다고 한다. 한양뿐만 아니라 지방의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규방의 부인들과도 만났다. 특히 규방에 출입하기 위해 여장을 하다 이런 저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전기수의 이런 행동은 소설이 위험하다고 여겼던 사대부의 눈에 안 좋게 보였다. 그래서 붓을 들어 전기수의 악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열광했으며, 몇몇 전기수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지친 삶을 달래주는 전기수가 양반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든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압도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이업복’이나 ‘이자상’ 같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전기수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선비들이 자신의 문집에 남겨놨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의 역사는 이보다 오래됐다. 이야기는 아주 오랜 기간 인간과 같이 지내온 것이다. 신라 원성왕 때 도적들에게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주어서 모두 자신의 제자로 삼은 승려 영재*의 일화도 그런 흔적 중 하나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시대,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누군가 자연스럽게 오늘 함께한 사냥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내면서 고기 한 점을 더 얻어먹었을 것이다.
    *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10구체 향가인 「우적가」를 지은 승려다. 그는 천성이 익살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년에 지리산에서 은거하다 도적떼를 만난 일화가 『삼국유사』에 남겨져 있다. 영재는 도적떼를 화기롭게 대하며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도적떼가 이에 감동해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다. 참고문헌 이덕무, <아정유고>, 조수삼, <추재기이> 정명섭, <조선직업실록>, 북로드, 2014

 
(左)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에서 변사의 모습(ⓒ한국학중앙연구원)     (右)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 강독사 정규헌(ⓒ문화재청)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 주며 인기를 끌던 전기수는 구한말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지위가 위태로워졌다. 책이 대량으로 인쇄되고, 문맹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수의 후예가 탄생했다. 바로 극장에서 영화 대사를 들려주는 변사가 등장한 것이다. 낯선 외국 영화에 코믹한 대사를 덧입히며 들려준 변사들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극장에서 신작 영화를 홍보할 때 영화 자체보다는 어떤 변사가 해설을 해 주는지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미관과 단성사의 주임변사로 일하던 ‘서상호’는 웬만한 영화배우보다 더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렇게 하늘 높이 치솟던 변사의 인기는 1930년대 중반, 배우가 직접 대사를 들려주는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시들해졌다. 변사가 몰락한 이후에도 전기수의 후예는 1960년대까지 근근이 활동을 이어갔다. 지방의 장터를 다니면서 책을 팔던 장사꾼들이 바로 그들인데 책의 내용을 외워서 사람들에게 들려줬던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한때 외면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오디오북과 북튜버, 이야기는 계속된다
    영상이나 활자를 통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현대에도 전기수의 후예가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설을 읽어 주는 오디오북이다. 활자를 눈으로 본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누군가의 목소리로 소설을 듣는다는 편안함이 오디오북의 최대 장점인데, 이는 전기수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이 쓴 동화나 그림책을 직접 들려주는 방식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활성화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도 전기수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책을 읽고 감상평이나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서 책을 읽어 주는 북튜버는 그야말로 전기수의 직접적인 후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수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는 현대에도 여전히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문화가 살아남은 것이다.
    타인의 목소리라는 장치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시대를 흐르면서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그것은 어쩌면 원시시대, 모닥불을 쬐면서 말주변 좋은 부족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곤함을 잊어버리던 때의 유전자가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