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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겉과 속, 상징을 통해 미를 탐하다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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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겉과 속, 상징을 통해 미를 탐하다
'우리 문화에 나타나는 다양한 도상'

    우리 생활문화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도상은 단순히 하나의 상징세계를 갖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저마다 여러 가지 상징체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체계 안에서 우리 선조들의 삶과 맞물려 일상화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경험과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을까?
 
금계도(ⓒ윤열수)
 
계절과 시간을 알리는 금계
    닭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동물로, 우리 문화 속에 나타나는 닭은 현실의 재앙을 막고 소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길상과 벽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닭 그림은 전통적으로 호랑이 그림과 함께 정초에 벽사초복(邪招福)의 뜻을 담아 대문이나 집안에 붙였던 세화(歲畵)의 일종으로서 애용되어, 직접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서 사용하였다.
    또한 닭은 새벽을 알리는 울음소리로 어둠을 쫓고 동이 트는 때를 알려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명이 시작되는 방향을 관장하고 밤과 새벽을 나누어 새벽을 밝히는 신비로운 동물이 바로 닭이라고 믿었다. 여기에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태양의 새라는 신령한 의미가 더해져 금계 또는 황계라는 상상의 존재가 되었다.
    금계는 봉황, 주작 등 상상의 새가 지닌 길상적 역할만을 모아 만들어졌으며, 오방색 중 정중앙에 해당하는 황금색의 신령한 형상을 하고 있다. 또한 닭의 신비스러운 속성에 더해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고귀존영(高貴尊榮)의 상징으로도 애호되었다.
    실제 금계를 주제로 한 8폭 연폭 병풍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상징을 잘 엿볼 수 있다. 볏과 꼬리가 크고 화려한 금빛 수탉 한 마리가 큰 화면 중앙에 있는 바위 위에 올라 저 멀리 동이 터 오는 붉은 빛을 바라보고 있다. 바위 아래에는 노란색과 흰색, 붉은색의 국화꽃과 수탉보다 볏이 작은 암탉 한 마리가 있다. 화면 왼편에는 부채처럼 넓게 퍼진 형태의 붉은 단풍나무가 서 있고, 그 앞을 기러기가 떼 지어 날아가고 있다. 금계가 울어 밤과 낮의 경계를 짓고 깊은 가을 새벽시간을 알리는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01. 삼어도 84×27cm(ⓒ가회민화박물관 소장)        02. 사적 제548호 경주 분황사지에서 출토된 귀면와 유물(ⓒ문화재청)        03. 부산 범어사 대웅전 돌계단 도깨비 조각. 혀를 날름거리는 익살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윤열수)
 
경계와 정진의 상징, 물고기
    예로부터 물고기는 민간에서 벽사의 상징으로 이해되어 왔다. 사람들은 물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중에도 삿된 것을 경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벽장문이나 미닫이문에 물고기 그림을 장식하거나, 돈이나 귀금속이 들어 있는 궤짝이나 뒤주에 잉어 모양 자물쇠를 채우기도 하였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는 학문 정진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민화에는 세 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진 그림이 종종 보이는데, 이는 독서삼여(讀書三餘)에서 유래한 것이다. 독문화재청서삼여는 책 읽기 좋은 세 가지 여가시간이란 뜻으로 겨울철, 밤 시간, 비올 때 학문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 삼여(三餘)의 음이 삼어(三魚)와 유사하여, 세 마리의 물고기를 그린 그림은 사람들에게 학문 정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물고기는 불교에서도 정진의 상징으로 활용된다. 목어(木魚)는 속이 빈 물고기 형태로, 이를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사찰의 처마 밑 풍경(風磬)에 눈을 감지 못하는 물고기 조각을 달아두는 것도 경종을 울려 선정하라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익살과 수호의 상징, 도깨비
    우리나라의 도깨비는 동요와 속담, 설화와 민담 등 구전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조각, 공예품 등을 통해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문화 속 도깨비는 호랑이만큼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친숙하고 장난기 넘치며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로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귀면와는 집안에 화재,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이 무섭기보다는 위엄이 가득하면서도 정감과 웃음이 넘치는 익살스러운 얼굴이다.
    도깨비는 불교미술에서도 나타난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 기단(基壇)을 오르는 돌계단 난간에는 주로 물의 상징인 용이 조각되는데, 부산 범어사에는 특이하게 듬직하고 잘생긴 도깨비 한 쌍이 대웅전 가는 길을 지키고 있다. 범어사 돌계단 난간의 혀가 보이도록 웃는 도깨비는 사자나 용처럼 큰 귀에 늘어진 갈기가 있고 위엄의 상징인 귀치가 잘 드러나 있다.
    다섯 개의 발톱을 접고 엎드린 자세는 복종하는 개나 고양이처럼 친근해 보이지만 강한 인상으로 잡귀를 물리치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 불교에서 도깨비는 세 개의 얼굴과 여덟 개의 팔을 가진 귀왕(鬼王)이었으나, 점차 불교에 습합되어 불법을 수호하고 악귀나 역신을 막는 문신(門神)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미술에 용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도깨비 형상이면서, 용의 얼굴을 닮은 도깨비가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의 도깨비는 목조 건축에 많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표현된 도깨비들은 지역, 건축물의 특성, 장인의 솜씨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선 후기 서민 예술이 민중의 심성을 익살과 해학으로 표현하였던 것과 같이 다양한 도깨비의 형상에도 감출 수 없는 웃음과 익살이 숨어 있다.
    우리 문화에 나타나는 다양한 도상은 사용되는 장소에 따라 다양한 상징체계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선조들은 도상의 모방과 변용, 전파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과 인식을 공유해 왔다. 이제 우리는 선조들이 남긴 문화재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경험과 인식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전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