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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했던 31년 봉사 세월

2021-02-22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제20회 충청북도 도민대상 선행봉사 수상자 정갑영씨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했던 31년 봉사 세월
'남은 생애도 이웃 사랑으로 ‘선한 영향력’ 되고파'

    혹한의 날씨에 혹여나 밥 굶지는 않을까, 추위에 고생하지는 않을까 경제적으로 힘든 이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정갑영씨.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쌀과 생필품을 나누고, 한창 꿈을 키울 시기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민이 많은 청소년에겐 장학금을 주며,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랑 과자를 선물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남에게 주는 것이 익숙한 그는 스스로도 ‘봉사가 천직이다’라고 말한다. 
    노점행상을 하며 반평생을 봉사로 점철된 세월을 살아 온 그에게 이번 충북도민 대상 수상은 당연함을 넘어서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가를 바라지 않은 봉사였기에 더 쑥스럽고 민망하다는 그에게 지난 31년 간의 착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제부터 봉사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왜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음성 꽃동네를 있게 한 최귀동 할아버지를 아는가? 어린 시절 우리 온 가족은 음성군 무극에서 살았다. 그때 나는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당신의 몸과 마음도 만신창이인데 병들고 거동이 불편한 걸인들을 밥 동냥으로 보살피는 최귀동 할아버지를 직접 봤다.



    아이들이 놀려대도 웃으시며, 행여나 아이들이 놀다 다칠까봐 깨진 유리조각과 사금파리를 주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도 최귀동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랑나눔희망봉사회’다. 지금으로부터 딱 31년 전이다. 내가 번 돈의 5%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일념으로 좌판에 모금함을 설치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5년 동안 사랑의 점심 나누기 행사에 따라 다니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줬던 것도 할아버지의 박애정신을 닮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노점상을 하게 된 사연도 궁금하다.
    삼천석군, 국가유공자 집안으로 불리는 집안에 태어났지만 일제강점기와 5.16 군사정권의 토지개혁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지자 부모형제들이 모두 광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폐광이 되면서 할 수 없게 됐고, 직업병을 얻으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다.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노점행상이었다.
‘사랑나눔희망봉사회’는 주로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인가?
    하루하루 적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노점 상인들이 모여 만든 봉사단체다.  소년?소년 가장 등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급식비 비원, 장학금 지급, 경로잔치, 교통질서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녹록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회원들이 내는 소중한 돈은 부자들이 내는 수억원보다 값진 것이다. 실례로 봉사회 부회장인 우석제님은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앞을 잘 보지 못하면서도 퉁퉁 불어터진 우동으로 허기를 달래며 번 돈으로 매년 100만원씩 기부를 하신다. 이런 분들이 있어 아직은 세상이 살만한 것 아니겠는가.
    종일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다 보면 손에 물집이 잡혀 아프다. 그러나 아이스크림 하나, 뻥튀기 과자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면 정말 행복했다. 


 
15년 동안 사랑의 점심 나누기 행사를 위해 도내 시군을 돌아다니는 일이 고되기도 했을텐데...
     ‘아이스크림 주는 좋은 아저씨’, ‘희망을 주는 사람’, ‘고마운 애기 아빠’ 등 현장에서 듣는 이런 말들이 그 어떤 부와 명예보다도 행복하고 뿌듯했다. 지난 31년 동안 성한 육신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울러 주변에서 항상 격려와 도움의 손길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내가 31년 동안 봉사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가족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밖으로만 도는 남편을 대신해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없는 살림에도 가정을 잘 지켜 준 아내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편이 가정의 울타리가 되어야 했는데 남들한테는 120점 사람이면서 집에서는 빵점인 아빠이자 지아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준 아들과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건강까지 잃어가며 인내해 준 아내의 눈물과 사랑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을 것이다. 투병중인 집사람의 빠른 쾌유를 빌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학교 앞 교통봉사를 14년이나 했는데, 특별히 이 일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
    길을 건너고 싶은데 빠르게 달리는 차들 때문에 횡단보도 앞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고 어른으로서 부끄러움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날부터 학교 앞 인간 교통신호등 역할을 자처하게 됐다. 학교 봉사를 14년동안 하면서 등?하교시간에 하루 500번 인사를 하고 칭찬릴레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상품권을 주고 장학금도 지급했다. 아이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고 졸업후에도 지금까지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다. 내 봉사활동 경력에 최고의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19 때문에 최근에 새롭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있다고 들었다.
    정부시책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작년 3월부터 청주시 금천동 관내 지역의 어린이 놀이터, 공원, 공동화장실 등 다중시설에 60여회 무료 방역소독을 했다. 그리고 마스크도 무료로 제공하고, 코로나 안전수칙에 대한 홍보 전단지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봉사하고 있다.
앞으로의 봉사활동 계획은?
    이번 도민대상을 받으면서 지인으로부터 ‘평생에 한번 받을 수 있는 영광스런 상’이란 말을 들었다. 160만 도민이 앞으로 더 열심히 봉사하라고 주는 상으로 여기라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온 세월에 감사하며, 남은 생애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싶다. 3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는 이제 나의 재능이 됐다. 이 재능으로 좀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 그늘진 곳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분명 우리 이웃이다. 진심으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모든 현장에 답이 있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