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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어버이날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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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어버이날
'글. 박순철'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어버이날! 더구나 중순께에 자신의 생일까지 들어있다. 남계리 이장 소탈 씨는 이 생일이 귀찮다. 애들이 잊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어버이날에 다녀가고 생일에 다녀가는 게 부담이 될 듯해서 몇 년 전부터는 어버이날에 한꺼번에 하자고 했다. 서울에서 한번 다녀가려면 적잖은 시간을 도로에서 소모해야 하고 돈 또한 적잖게 쓰는 것을 고려한 제안이었다. 아들 며느리도 겉으로는 아닌척해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5월에 자신의 생일이 들어있는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니었으면 어버이날에 내려오고 생일에 내려오면 두 번 다녀가야 할 일을 한 번에 해결하니 좀 좋은가. 이참에 소탈 씨도 손자에게 어린이날 주지 못한 용돈을 들려서 보낸다.
    청풍 한우 가든에는 효도하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절반쯤은 1년에 한 번 하는 효자 효부로 보였고, 자신처럼 늙수그레한 사람들 역시 오늘 효도를 받으면 내년 이맘때나 돼야 효도를 받을 수 있을 사람들로 보였다. 예약한 자리에 앉자 상이 그들먹하게 나왔다.
    아들 며느리가 따뤄주는 술을 적잖이 마신 소탈 씨!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손자에게 돈 봉투를 꺼내주는 마음이 흐뭇하다. 그다음은 아들 며느리가 자신과 아내에게 봉투를 건네주고….



    5월의 햇살이 따습기 그지없다. 바람도 한 점 없다. 오늘만 같으면 태평성대나 다름없다. 느티나무 밑에 모여앉은 마을 사람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음마! 철수 엄니 큰 꽃 달았네.”
    다른 노인들 가슴에는 꽃이 없는데 유독 철수 어머니 가슴에만 꽃이 달려있다.
     “응, 우리 아들 철수가 달아줬어.”
    철수 어머니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서울 아들 다녀갔어?”
    “아들 며느리 손자꺼정 다 왔었어. 선물도 한 보따리 사갖고.”
     “그렇게 좋은 것을 어찌 혼자만 먹는당가.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나눠 먹어야지?”
    “좋은 거슨 혼자 많이 먹어야 오래 살지. 이녁들하고 나눠 먹으면 내 꺼이 줄어들잖어?”
    “어이구 저 욕심 죽을 때 잘싸서 가지고 가.”
    노인들이 사심 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전에는 30호 넘게 모여 살든 곳이지만, 이제는 10가구 15명이 살고 있다. 한 집 건너 두 채꼴로 빈집이다. 한마을에 오래 살다 보면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알고 있고 어느 집 자식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훤히 꿰고 있는 게 시골 마을의 미담이기도 하다.
    철수 어머니! 올해 여든을 넘긴 노인이다. 영감은 몇 년 전에 죽고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억척 노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들 철수가 고향을 떠난 것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다. 처음에는 서울 무슨 회사에 취직 했다며 고향에 내려올 때는 번쩍번쩍 윤이 나는 승용차를 타고 와서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마을 경로당에 술도 두어 짝씩 들여놔 주어서 칭송이 자자했었다.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옥수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언제 왔었디야. 그러면 우리 집이 몇백 리라도 되나?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와서 얼굴도 좀 못 보여주고 가는감?”
    “우리 갸가 하는 사업이 그 뭐시냐. 외국 사람들하고 거래하는 것이어서 무척 바쁘다는구먼. 그래서 오던 날 바로 올라갔지.”
     “으응 그러셔?. 훌륭한 아들 둔 집은 좋겠네.”
    옥수 할머니의 그 말이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마치 철수 어머니의 말을 부정하는 듯한 비꼬임 비슷하게 들렸다.
     “아니, 가만있어 봐.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여 뭐여? 옥수 할매 말 이상하게 들리네?”
    “호호호 그만 들 뒤. 그러다가 이웃 간에 의 상하겠어.”
    이웃집 할머니가 이들을 중재하고 나섰다. 사실 철수는 몇 년째 시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하던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혼했다고 하는 소리도 들려왔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확인한 사람은 없다.
    “그러면 이녁이 그리 자랑하는 손주 옥수는 다녀갔는가? 내한테 와서 코빼기 좀 보여주고 가면 어디가 덧난다든가?”
    기어이 철수 어머니가 옥수 할머니를 공격하고 나섰다. 
    “우리 옥수는 내려오지 않고 그냥 전화만 왔었어. 통장으로 돈 보냈응께 찾아서 맛난 것 사 먹으라고 했어.”
    아옹다옹 서로 안 볼 것처럼 다투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풀어버리는, 가슴에 맺힌 것 없이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돈푼깨나 쓰는 자식을 둔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와의 갈등은 미묘하게나마 존재한다.
    사실 철수도 내려오지 않았고, 옥수도 할머니 통장으로 돈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들은 자식이나 손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아니다. 마을 발전 기금을 많이 기부하는 자식의 부모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 고위 공직 자녀를 둔 부모는 기세등등하지만, 실업자 자식을 둔 부모는 한풀 꺾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걸음걸이부터 다르게 느껴진다.



    집에까지 모셔다드린다는 아들을 처가에 다녀가라며 등 떠밀어 보내고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온 소탈 씨 부부! 한 정거장을 덜 가고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 앞에서 내렸다. 마을 노인들을 발견한 때문이기도 하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탓도 있다. 
    “이장님 아닌가베. 어디 다녀오는감유?”
    “예, 아들, 며느리하고 시내에서 점심 먹고 오는 길입니다.”
    “좋은 것 잡쉈겠네?”
    “하하하, 예 좋은 것 많이 먹었습니다.”
    “어찌 두 내외 양반만 좋은 것 먹고 댕긴다요?”
    “우리만 먹다니요. 어르신들 드시라고 우리 아들이 소주 1짝하고 회 몇 접시 시키는 것을 봤는데 곧 올 겁니다. 마을 회관으로 가시지요.”
    “아이고 무슨 회까지…. 우리 이장님 아들은 보기 드문 효자여!”
    “자, 자 재미있는 이야기는 회관에 가서 술 드시면서 하시지요.”
    소탈 씨가 어른들을 재촉하여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말없이 뒤따르던 그의 아내가 등을 쿡 찌른다.
    “정말 애들이 동네 사람들 술 사주라고 돈 줬어요?”
    아따 이 사람! 효자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녀. 우리가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여.”
    마을 회관에는 소주 한 상자, 회 세 접시, 과일과 음료가 배달되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상을 차리고 있었다.
    “언제 저런 것을 시켰을까? 그때는 참말로 빠르기도 하네요?”
    아내의 지청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우리 아들이 남에게 불효자 소리 듣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