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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함께 생명력을 이어가며 사람이 사는 집을 짓다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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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함께 생명력을 이어가며 사람이 사는 집을 짓다
' 이문호 한옥건축가'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현대화의 파도를 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정서 깊은 곳에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 그러한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전통 요소 중 가장 가깝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을 꼽자면 한옥이 떠오른다.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재료와 건축학적 미학이 가지는 멋스러움을 향유하며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한옥이다. 전통 한옥의 장점과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한 한옥의 인기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도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한국적인 정서 때문일 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옥을 지으며 전통의 매력을 젖어드는 삶을 사는 사람, 한옥건축가 이문호 소장을 만났다. 
한옥을 짓는 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종로에 있는 북촌은 한옥을 상징하는 곳이 됐다. 100년 전후밖에 되지 않은 역사를 가진, 온전히 전통 한옥의 형태를 갖춘 가옥들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에게 한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장소가 바로 북촌이다. 한옥이 허물어지지 않고 모습을 유지하며 이어지고 있는 북촌은 사실 끊임없이 공사를 진행하는 한옥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옥의 형태는 보존하면서 좀 더 생활하기에 편리한 공간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작업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 작업의 중심에 한옥건축가 이문호 소장이 있다.



    서양건축을 전공했던 그가 갑작스럽게 작업의 방향을 선회해 한옥을 짓는 사람이 된 것은 내면에 깃들어 있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정과 갈증 때문이었다. 집안에 표구, 병풍, 자개 등 전통문화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더러 우연히 한국가구박물관의 감리를 보면서 그 안에서 아우성치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열정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잊고 있었던 정체성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공간인 한국가구박물관의 감리를 하면서 뜨거운 이끌림을 느꼈죠. 한옥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과 품격, 그리고 재료의 우수성 등이 저를 사로잡아 시선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10년간 했던 서양건축을 과감히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한옥에 매진하고자 공부를 겸하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시작이었고 한옥 건축이라는 것이 공법과 재료 수급 등의 어려움이 있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 더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옥설계와 시공작업을 시작한 이문호 소장은 북촌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작업 반경을 넓히며 한옥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됐다. 이문호 소장에게 한옥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현대적 한옥을 짓는 그는 한옥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잃지 않으며 한옥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의 삶을 좇아가는 사람이 사는 집
    한옥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큼이나 맹렬하게 한옥 짓는 일에 전력질주 하고 있는 이문호 소장은 그동안 북촌과 서촌에서만 27채의 한옥을 지었을 정도로 다작(多作)하는 한옥 건축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문호 소장이 지은 한옥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곳들도 여럿 있다. 한국문화에 남다른 식견과 애정을 자랑하는 미국인인 마크 테토가 살고 있는 평행재를 비롯해 지우헌, 하연재 등 각종 매체에 자주 오르내릴 정도로 잘 지은 한옥으로 손꼽히는 집들이 이문호 소장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산청에 지은 율수원과 서울 가회동 안국선원도 이문호 소장이 작업한 한옥이다.
 
(左)이문호 소장이 건축한 대표 가옥인 지우헌의 한국적인 분위기(사진.이문호)    (右)한옥건축가로서의 사명감과 철학을 잃지 않는 이문호 소장

    “제가 하는 작업은 전통 한옥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전통 한옥이 가져야 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 작업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한옥이라 하면 떠올리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마당, 대청마루, 툇마루, 누마루, 들문, 기와지붕, 창호 등이 일반적이죠. 가급적 그런 요소들은 반드시 살려서 표현하고 66제곱미터만 넘는 규모라면 실외공간인 툇마루를 넣어 마당과 연결되는 유기적인 공간과 동선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렇게 안과 밖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자연과 사람이 호흡하는 공간이 한옥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들을 현대식 한옥에도 꼭 담으려고 애씁니다.”
    한옥의 현대화를 통해 한옥의 맛과 멋, 그리고 특유의 공간미학은 살리고 편리성을 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한옥이문호 소장은 이것이 한옥의 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박물관에 들어가 전시하고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집은 사람이 살아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의 삶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삶을 좇아가며 사람이 편안히 살며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집이 지녀야 할 가치이고 이문호 소장이 짓는 한옥이 추구하는 철학이다. 
시간이 더해지며 멋스러움이 드러나는 살아 있는 공간, 한옥
    이문호 소장은 한옥의 매력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중에서도 집을 지은 재료가 사람의 손길 온기와 함께 익어가며 세월을 머금어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을 한옥의 백미로 꼽는다. 그런 가치는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인 고택에서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이문호 소장이 아름다운 한옥으로 주저없이 언급하는 곳은 전북 정읍에 있는 김명관고택과 경북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심수정(누정, 정자)이다. 김명관고택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고, 원형이 잘 보존된 99칸 집으로 조선중기 상류층 주택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집을 짓는데 들어간 목재를 자연형태대로 잘 활용한 자연친화적 가옥으로 자연스럽게 지역색이 녹아 있는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左)전통 요소는 살리되 현대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한옥 내부(사진.이문호)     (右)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멋스러운 한옥(사진.이문호)

    심수정(누정, 정자)은 마을 전체의 자연 형상과 조화를 이룬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울림의 미학을 중요시 한 한옥의 장점을 담고 있어 형태 그대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짓고 싶을 정도로 이문호 소장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한옥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시간이 더해질수록 그 매력과 장점이 부각되는 한옥은 은근과 끈기의 정서를 가진 우리 민족의 모습과 결을 같이 한다. 그렇기에 당장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편안하고, 삶의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는 생명력 있는 한옥을 짓고자 하는 것이 이문호 소장의 바람이다. 무엇보다 한옥이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맥을 잇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크다.
    “지금은 한옥에 대한 관심과 열풍이 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한옥에서 사는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옥을 짓는 사람으로서 그 부분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큽니다. 그래서 한옥의 멋을 잘 표현하는 것은 물론 살아가면서 한옥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옥에서 잘 살려면 한옥에 대한 이해도 높아야 하기에 한옥을 짓는 일과 더불어 꾸준히 한옥과 관련된 강연도 하는 등 한옥을 알리고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이문호 소장. 한옥을 짓는데 정답은 없지만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문호 소장은 전통적인 공법과 재료로 한옥을 지어 현대인들의 삶을 담는 한옥 짓기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