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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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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해외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동우,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진정성으로 사진가의 길을 걸어온 그는 60여 개국을 여행하며 사라져 가는 역사의 흔적을 발굴해 왔다. 고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담기 위해 오늘도 그는 낯선 타국에서의 기나긴 여정을 꿈꾼다.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다
    인도 델리의 ‘붉은 성’으로 불리는 레드포트(Red Fort). 견고하게 지어져 장중한 느낌을 주는 이 황궁 앞에 한 청년이 걸음을 멈췄다. 무굴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이 1648년에 지은 황궁은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처음엔 인도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궁이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사진가로 전업하기 위해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 붉은색 사암으로 지어진 이 성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가 활동했던 장소라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어요.”
    김동우 사진가가 독립운동 현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들려주었다. 1943년 한지성, 나동규, 김성호 등 9명의 광복군이 영국군과 함께 미얀마 전선에 파견돼 일본군을 저지한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그때부터 사라져 가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린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 특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에 전시된 ‘델리, 레드포트 인면전구공작대 훈련지’라는 작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진을 배운 그는 졸업 후 신문사와 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면서 취재와 촬영을 해 왔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했지만 현장에서 기자로서 소명이나 정의감을 실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관심 있는 주제로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그는 사진가로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운명처럼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 되살려 내야 하는 기억의 편린들을 발견했다. 


기억의 공백을 메우는 지난한 여정
    낯선 타국에서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사진으로 담아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가 깃든 장소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는 일부터 만나서 취재하기까지 많은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했다. 철저한 조사 후 사전 답사도 하고 현지 선교사와 한인회를 통해 독립운동가 후손을 수소문했다. 그 경로로 찾을 수 없을 땐 각국 주재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후손을 만나면 언어 장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사비를 들여 통역을 구하지만 매번 가는 곳마다 동행할 수 없기에 가능한 일정과 시간을 고려해 미리 동선을 짜서 움직였다.
    “막상 애타게 찾던 곳을 발견해 찾아가면 표지판도 없이 터만 남아 있거나 주소 표기 오류로 헛걸음을 한 적이 많아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텅빈 풍경을 바라보며 허탈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에서 수술을 할 정도로 몸을 다치거나 말라리아로 고생할 때면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들었죠.”
    기억의 공백을 메우는 일은 고통과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단 한번도 독립운동의 흔적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같은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아낌 없이 삶을 바친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05년 따뜻했던 봄날, 평화로운 살리나크루즈 해변에서 살기 위해 떠난 이민이 애니깽(용설란) 농장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던 선조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러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와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를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형상화했다. ‘메리다, 애니깽 농장’의 붉게 물든 하늘과 ‘살라나크루즈 해변’의 보라색으로 물들어가는 바다에는 독립운동가의 슬픔과 그리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기록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左) 뉴욕 독립운동가 황기환 묘소 (사진.김동우)     右)그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기 위해 오랜 기다림이 익숙하다.
 
역사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2019년 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와 함께 사진전을 연 그는 이후에도 10여 번의 사진전과 사진집 발간을 통해 전 세계 독립운동의 흔적을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러시아 크라스키노 단지동맹비, 뉴욕 독립운동가 황기환 묘소, 만주 신흥무관학교 사진 등에서는 역사의 흔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1905년 멕시코 첫 이민 세대로서 독립운동 자금을 댄 애니깽 농장 노동자 임천택과 그의 딸 마르타 임, 멕시코 독립운동가 김익주 후손 다빗 킴 등 흐릿하게 찍은 인물 사진은 사라져 가는 흔적과 잃어버린 기억을 상징한다.
    질곡 많은 방대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너무나 빈약하다. 그 때문에 그는 사라져 가는 흔적이나 텅 빈 풍경을 만나면 나직한 목소리로 다짐한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깊은 상흔으로 남은 흔적을 부지런히 발로 뛰며 기록하겠습니다.” 8월 1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 이외에도 8월 2일부터 부산에서 우리의 역사 인식을 돌아보는 새로운 전시가 개최될 예정이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소개하고,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시설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소비하는지를 사진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다.
 
左) 러시아 크라스키노 단지동맹비 (사진.김동우)     右)근현대사기념관에서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해외여행이 어럽기 때문에 올해는 전남 소안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갈 계획이에요. 다음 여행 때는 현장의 바람 소리, 초록빛 잎사귀와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담아오고 싶어요. 관람객이 사진도 보고 현장의 소리도 들으며 역사의 흔적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요.” 그 밖에도 그는 <뭉우리돌을 찾아서>라는 사진집의 텍스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에세이집을 오는 6월 말 출간할 예정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는 지난한 여정과 사진으로 못 다한 이야기들, 현장에서 느낀 감정과 사진가로서의 고뇌, 작업 과정에서 스쳐 지나간 생각을 책을 통해 전달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갈 거예요. 더 늦기 전에, 기억의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어요.” 각국에 흩어진 기억의 편린이 하나둘 복원되고 기록된다 해도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곧 잊어지게 마련이다. 앞으로도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김동우 사진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은 쉽게 망각하고 무관심한 후대에 깊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 외에도 기억의 공백을 채워 주는 의미 있는 전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그의 기록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독립운동의 흔적이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지켜 나가는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