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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의 고향, 고인쇄문화의 성지를 걷다

2021-09-08

라이프가이드 여행


두근두근 무심천뚝방길 따라
직지의 고향, 고인쇄문화의 성지를 걷다
'흥덕사 / 금구 / 고인쇄박물관 '

    서기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 새벽 범종 소리는 무명의 어둠을 어루만지며 부처님의 나라, 깨달음의 세상으로 인도했다. 열반에 드신 큰 스님의 말씀은 향기로 맴돌고 제자들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활자를 만들고 책을 인쇄했다. 고려의 선승 백운화상이 후세에 길이 남기고 싶었던 책, <직지>는 그렇게 태어났다. 


640년 전 <직지>가 태어난 곳 _ 흥덕사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본다는 건 멋진 일이다. 지금은 금당 하나, 탑 하나가 서 있을 뿐인 절터를 거닐며 수백 년 전의 과거를 그려본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절터의 남북을 잇는 중심에는 부처를 모신 금당이 있었다. 금당은 단청으로 장식되고, 지붕 용마루 양끝에는 1.3m의 대형 치미를 올려 장엄미를 더했다. 금당 앞에는 석탑이 서 있고, 동서남 세 방향의 회랑과 북쪽의 강당이 금당을 에워싸고 늘어섰다. 640년 전의 그날에도 바람이 불고, 햇살이 환하고, 이토록 새소리 정겨웠을까. 상상은 그렇게 역사의 시간 저편으로 건너간다. 
    <직지>의 존재가 세상을 놀라게 한 건 1972년 프랑스에서의 일이다. 당시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찾아내 ‘세계도서박람회’에 출품하면서였다. <직지>의 출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구텐베르크의 발명이 아닌, 그보다 78년이나 앞선 고려시대에 청주에서 인쇄된 것임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직지>의 간기刊記에는 ‘선광7년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 말인 즉,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의 흥덕사에서 금속을 녹여 만든 활자로 인쇄했다는 뜻이다. 세상의 관심은 청주와 흥덕사로 쏠렸다. 하지만 청주의 어디에도 ‘흥덕사’의 자취는 없었으니, 과연 <직지>가 태어난 흥덕사는 어디란 말인가. 
 
▲ 복원한 흥덕사 금당
 
흥덕사의 존재를 증언하다 _ 깨어진 금구의 비밀
    <직지>가 출현하고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1985년 청주 운천동에서 가칭 ‘연당리사지’라는 절터를 발굴 작업하던 역사학자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절터의 이름이 ‘흥덕사’라고 말해주는 유물, 금구禁口가 출현한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쇠북의 일종인 금구는 발굴 작업이 진행되기 전 있었던 택지개발 사업으로 굴삭기의 삽날에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고, 부식이 심했다. 하지만 측면에 새겨진 그 글자들은너무도 선명했다. ‘갑인오월 일 서원부흥덕사 금구일좌’甲寅五月 日 西原府興德寺禁口壹座. <직지>가 만들어진 흥덕사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몇 달 뒤 같은 절터에서 ‘황통십년 흥덕사’라는 명문의 청동그릇까지 출토돼, 절터가 ‘흥덕사’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금구는 사찰에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릴 때 쓰는 것이다. 어쩌면 흥덕사 금구는 땅속에 묻힌 채 기나긴 묵언수행을 하며 때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직지>와 흥덕사의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그날을. 그리고 지금도 전시관에 놓인자신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이들에게 향기로운 울림을 전한다. 그 몸체에 새겨진 연꽃문양처럼 은은하게.
 
▲ 금구


    흥덕사지 절터 (사적 제315호) 1377년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인쇄된 흥덕사의 절터. 사찰의 연원은 ‘대중삼년 계향사’ 명문의 기와편 출토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짐작된다. 발굴조사 결과 금당터, 회랑터, 강당터등이 확인되었고 ‘서원부 흥덕사’가새겨진 금구(쇠북)과 청동그릇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명문이 새겨진 금구는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고향에 들어선 고인쇄박물관 
    흥덕사 절터의 바로 아래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들어서있다. 시립박물관이지만 고인쇄문화의 성지인 청주에 자리잡아 전국은 물론 세계의 이목을 끄는 곳이다. 고인쇄박물관의 탄생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의 가치를 되새기고 한국 고인쇄문화의 발자취를 연구, 보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목판에서 금속활자까지 인쇄문화의 발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전시물과 고서, 흥덕사지 발굴유물 등 사료 3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청주시는 2001년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9월4일을 기념하기 위해 ‘직지의 날’을 제정했다. 또한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여기에 2017년에는 유네스코의 국제기록유산센터의 유치가 확정돼 인쇄문화와 기록문화의 성지로서 청주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국제기록유산센터는 대륙이나 지역별로 운영되는 기존의 유네스코 승인 국제기구와 달리 전 세계를 대상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구연길과 청주고인쇄박물관

    <1인 1책 펴내기> <직지>의 고향, 세계 고인쇄문화의 성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청주시에서는 <1인1책 펴내기> 사업을 11년 동안 시행해 왔다.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만의 책을 내는 일을 지원하는 것으로 청주시민이라면 누구나참여할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 11년간 1,300여권의 책이 시민들 각자의 사연을 담아 세상에 나왔다. 글을쓴다는 것은 기록인 동시에 치유다. 고인쇄문화의 도시 청주는 그렇게 우리시대의 인쇄문화를 시민들의 참여 속에서 다시 한 번 꽃피우고 있다. (2017년 기준)
    고인쇄박물관 맞은편에는 2014년 새롭게 문을 연 <금속활자전수관>과 <근현대인쇄전시관>이 자리 잡았다. 전수관에서는 책 만들기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매주 금요일엔 금속활자 주조과정 시연을 관람할 수 있다. 근현대 인쇄전시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병우 타자기부터 최첨단의 인쇄과정이 전시돼 있어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아이들에겐 신기한 시간여행을 선물한다. 
    또한 전시관 2층엔 최근 청주시에서 추진한 <1인1책 펴내기> 사업으로 출판된 시민들의 책들도 전시돼 있어 시민들의일상 속으로 파고든 인쇄문화 도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