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나무에 부처의 자비를 새기다

2021-10-08

문화 문화놀이터


시대를 잇는 삶
나무에 부처의 자비를 새기다
'목조각공 문화재수리기능자 송근영'

    우리의 가장 독특한 문화유산을 단 하나 꼽을 수 있을까? 우리는 꼽기 어렵지만, 외국인은 곧잘 한 가지 문화재에 주목하곤 한다. 바로 국보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그 미소가 묘한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미소의 근원을 찾아 나무에 새기는 이가 있다. 바로 송근영 장인이다. 


소년, 부처를 만나다
    소년 시절 그는 팽이와 연(얼레)을 만들며 놀았다. 도토리에 도장을 파기도 했다. 남다른 손재주는 그때부터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어릴 적에 만들던 것은 고작 ‘장난감’이었다. 목조각, 특히 불상 조각에 눈을 뜬 건 좀 더 자랐을 때였다. 옛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듯, 소년의 부모님도 “공부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됐지만 그는 공부보다는 점차 다른 것에 빠져들었다. 불상이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석굴암까지 가는 길이 엄청 힘들었어요. 지금처럼 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죠.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길을 한참 걸어 그 석굴 앞에 다가갔을 때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당시만 해도 석굴 안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그 위용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고요. 만져볼 수도 있었구요. 한참을 석굴암 안에 있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돌아가는 것도 몰랐죠. 한참 뒤에 선생님이 저를 찾아 왔을 때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마음 속으로 ‘나도 저렇게 울림이 있는 훌륭한 불상을, 내가 좋아하는 나무로 조성해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게 됐습니다.”
 
(左)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송근영 장인이 가장 즐겨 조성하는 모델이다. 
(右) 나무 속에 자신만이 발견한 현태를 만들기 위해 그는 오랜 시간을 조성에 몰두한다.

    그 강렬한 첫 만남을 뒤로 하고, 학교에 돌아왔지만 소년 송근영의 머릿속에서 석굴암의 멋진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하굣길에 번개처럼 불상과 다시 마주쳤다. 목조각품을 제작하는 공방이었다. “문득 불상이 눈에 들어왔어요. 호기심에 이끌려 멈춰섰는데, 그곳이 환오 한문영 선생님의 조각 공방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신기하게 불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너 배워볼래?’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대번에 그러겠다고했죠. 나무를 실컷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이 났습니다. 그게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목조각’의 길로 들어선 그는 다른 작품보다도 ‘불상’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강렬했던 첫 만남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년, 부처를 만나다
    목조각공은 전통 목조 문화재의 보수와 수리를 담당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인이다. 원형의 커다란 나무 통 속에서 자신만의 ‘형태’를 찾아내고 이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목조각이다. “저는 제 진로를 정한 후, 부처님의 마음으로 불상 조각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목불조각을 50년이 넘는 동안 해왔습니다. 반만년 이어 온 우리 전통을 찾기 위해 소중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도 함께해 왔죠.” 불상을 조각하면서 자연스레 불교에 관한 배움도 깊어 갔다. 이는 한문영 선생의 가르침 덕분이기도 하다.
 
(左)칼은 그의 손이자 그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右)인로왕보살 극락인도부조목조각탱의 스케치 모습

    “수인에는 각기 불·보살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불상의 손 모양만 보고도 무언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불상을 조성할 때 불·보살님의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조성에 임해야 진정한 불·보살상을 제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나무를 깎고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행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송근영 선생은 최근 ‘인로왕보살 극락인도부조목조각탱’을 조성하고 있다.
    이 역시 앞서 이야기한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가 직접 스케치하고 만드는 작품이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극락으로 안내한다는 ‘인로왕보살’의 행원이 작품의 주된 내용인데 그의 인도를 받은 이들이 연꽃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는 모습이 형상화되어있다. 규모도 크고 그 자체로 탱화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 오랫동안 우리 전통의 찬란한 역사를 되살려 온 송근영 선생의 노력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01.수월관음목조각     02.송근영 선생은 작품을 조성할 때 불·보살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03.그의 작업실은 다양한 목조각 작품들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통의 미, 이어나가길 기대
    작업을 할 때면 시간이 지나도 배고픈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된다는 그. 눈앞에 놓인 나무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깎고 다듬는 그의 손은 일정하게 들리는 둔탁한 소리 사이에서 오묘한 ‘미’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한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의 저력이 곧 그 나라의 힘일 정도로 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사회입니다. 사회 전반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문화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 저변에는 전통의 맥이 역사와 함께 흐르며 전통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문화가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리고 우리 문화재를 복원하면서 어느 순간 우리 전통의 맥이 도도하게 흐르는 것을 깨달았다는 송근영 선생. 그의 불심이, 예술혼이 더 아름답게 빛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