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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유하

2021-10-13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유하
'글. 최명임'

    난(蘭)꽃 그늘에 막 망울진 것이 보인다. 들어 온 바람에 파르르 떨더니 벙근 입속에 웃음기가 가득 찼다. 키득키득 웃다가 ‘빵’하고 터지면 한바탕 소동이 나겠다. 
    나는 갓난것을 볼 때마다 몽실몽실한 유하 얼굴이 겹친다. 유하는 보고 있어도 보고파서 갈증이 난다. 아무래도 내가 상사병에 걸린 것 같다. 녀석이 배시시 웃으면 아침이슬을 머금은 꽃망울이 금방 피려고 꼬물거리는 것 같다. 세상 시름이 다 사라지는데 암암리에 나를 정화하고 있나 보다. 이런 아기 많이 낳으면 수심 가득한 세상살이도 한결 수월하겠다. 딸애가 큰일 날 소리라고 말꼬리를 잡는다.  
    인구 절벽, 인구 지진이라는 말이 무섭다. 국가의 명운이 달렸는데 젊은이들이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다급해진 정부는 돈으로 달래보지만, 이 서글픈 현실을 어쩌랴! 어찌 보면 그들은 애국자이고 아기를 낳지 않는 젊은이들은 애국하지 않는 줄 알겠다. 안 낳는 것이 아니라 못 낳겠다니 얽히고설킨 난제부터 풀어야 하겠다. 
    유하는 작게는 나의 손녀지만, 오천만 국민의 일원이며 우리의 미래가 되어줄 아이다. 그리 보면 소중하기 짝이 없다. 녀석은 세상 빛을 못 볼 뻔했는데 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르는 제 오빠 덕에 세상에 나왔다. 팔삭둥이로 태어나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다. 어미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밤을 낮처럼 살았다. 



    드디어 뒤뚱뒤뚱 걷는다. 저도 마음이 급한지 뛰어보려고 용을 쓰다가 넘어진다. 뛰지 말라고 말렸건만 뛰어놓고 운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삶이란 걸 알 리 없을 텐데 울면서 일어선다. 나는 우는 녀석을 달래느라 애먼 땅을 콩콩 때리며 나무란다. 그랬더니 걸핏하면 소파 탓, 엄마 탓, 할미 탓을 하며 모두 남 탓으로 돌린다. 내 사랑이 문제의 발단이 될까 겁난다. 해서 다시 알려주었다. 어미는 사랑한다는 말까지 덧붙여 가르친다.
    유하는 어미 자궁에서 못 채운 날 수를 채우고 가느라 한 걸음 더디 간다. 망둥이처럼 1미터씩 펄쩍 뛰거나 미적거리고만 있으면 문제의 소지가 될 텐데 기특하다. 말문이 열리지 않아도 말귀는 다 알아듣는다. 늦기도 하련만, 딸이 노심초사한다. 말은 하기보다 듣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거라고, 유하가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녀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앙큼한 행우지로 가족을 힘들게 한다. 기분이 상하면 선 채로 기둥 무너지듯 뒤로 넘어져 떼굴떼굴 뒹군다. 그래도 마음이 안 풀리면 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고 한 시간 넘게 울어댄다. 뒤로 넘어갈 때는 머리를 살짝 드는 약은 수를 쓰는데 말이 안 통하니 저도 답답해서 하는 짓이리라. 녀석의 행우지를 본 어른들은 기질이라 바뀌지 않을 거라고 웃었다. 그런 녀석이 제 똥 구린 줄은 알고 있으니 퍽 어여쁘다. 
    유하는 제 똥 기저귀를 갈 때마다 헛구역질한다. 울컥울컥하다가 어떤 날은 속엣것을 다 토해버린다. 그림 동화에 나오는 돼지 응가만 보아도, 내가 냄새라는 말만 해도 웩웩거린다. 어미가 증류한 하얀 이슬만 먹을 때는 단내가 났는데 응가가 똥으로 바뀌면서부터다. 기저귀 심부름을 할 정도가 되고부터는 기가 찬다. 내가 뒤처리를 다 할 때까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코를 잡고 누워있다. 일어나도 퍼져나간 구린내 때문에 코를 막고 돌아다닌다. 도리질할 사람은 나인데 구역질이라니, 이리 솔직한 녀석을 보았나. 될성부른 나무는 일찌감치 알아본다고 했다. 나는 청백리 유하를 꿈꾼다. 



    처음 보는 일이라 병이 아닐까 해서 의사에게 물었더니 비위가 약해서 그럴 수 있다며 처방전도 주지 않았다. 걱정하는 딸에게 한 수 건넸다. 
     “유하가 제 똥 구린 줄 알다니, 신문에 날 일이네!” 
    육아로 지친 어미가 웃었다. “유하는 어른이 되어도 구린내 풍기는 일 따위는 절대 안 할걸.” 하고 말했으면 더 큰 위로를 받았으려나.
    우리 중 누기 제 것의 냄새에 도리질하고 구역질해 본 적이 있는가. 남의 냄새에 각을 세울 뿐 정작 제 똥 구린 줄은 모른다. 
    아침 신문에 큼직한 머리기사가 냄새를 풍긴다. 영양가 높은 벌레 잡아먹고 입 다문 함수초인가? 일 저질러 놓고 모르는 척, 절대 내 탓이 아닌 척 시치미를 뗀다. 무엇을 지키려고 저리 안타까운 분발을 하는지. 
    유하는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을 무척 좋아한다. 텔레비전을 켜기 무섭게 그 섬으로 달아난다. 유체이탈한 몸만 내 품에 있고 나는 입성하지 못한 관람자로 동경심에 젖는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란 말이 주를 이루고 언제 싸웠나 싶게 좋은 친구로 만난다. 아마도 3~40년 후 그 섬에는 제 똥 구린 줄 아는 어른들로 북적일 거다. 나는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유하가 어린이집에서 배꼽 손 인사를 배워왔다. 밥 먹을 때 감사 기도는 오빠가 하고 유하는 고개만 꾸벅한다. 이런 아이들 많이 낳아 웃음소리 만발했으면 좋겠다. 
    우리 할머니는 가난이 목을 매던 시절 아홉 명이나 낳았다. 어쩌자고 그리 많이 낳았느냐고 했더니 ‘제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오니라.’ 하셨다. 집집이 그 많은 아기가 어른이 되고 어미 아비가 되어 휘청거리는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는가. 
    유하가 드디어 포문을 열었다. 
     “함머니 불루베비(블루베리) 먹으예요? 아니, 안 먹어요. 불루베비 먹고 쓔쓔 커야지!” 
     요 녀석이 내 속을 들여다보았나, 못다 큰 것이 많은 할미 속에 한 알 넣어주고 배시시 웃는다. 
     “어린이가 없는 곳에 천국은 없다. (스윈 번)”고 했다. 
     바야흐로 아기 웃음소리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