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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림

2021-10-28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문화생태계 DB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림
'그림을 잘 그리던 아이 여인영작가'

    상처 때문에 아파 본 적 있으신가.
    배신감으로 깊은 아픔의 터널을 지난 후, 질척이는 권태의 진흙 길을 지나 인연까지 끊어 버려야 할 때 우리는 다시 절망한다. 작가는 아픈 경험을 했다. ‘상처받은 나를 돌아보며 다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할 정도로 아팠다. 그림은 그녀를 일으켰다. 그림만이 삶의 원천이었고 위로였고, 다시 나갈 수 있는 명분이었다. 
    잊고 살다 바라보면 상기되는 타투처럼 불쑥불쑥 올라와 찔러대던 그 시기에 발가벗은 여자를 그렸다. 옷을 벗고 있는 여자, 자위하는 여자, 나체로 정면을 노려보는 여자는 꽤 자극적이고 직설적이다. 2015년도에 그린 작품은 한지에 수묵담채화로 그렸고, 화제畵題는 ‘권태’다. “그림을 그리며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발가벗은 상태가 된다.” 작가는 이렇게 작품설명을 한다. 모든 현상은 인因과 연緣의 상호 관계로 성립하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 여자를 감싸고 있는 뽀얀 연기가 상처도 인연이었다며 위무할 때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던 아이
    여인영 작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다. 선생님의 잘한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학교에 올라가 미술 과제를 하면 항상 상을 받았다. 미술 선생님께서 예술 고등학교를 가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고민했다. 엄마가 ‘좋아하면 해봐라’ 하셔서 충북예고로 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화, 디자인, 서양화, 조소를 한 바퀴 돌면서 배우는데 먹으로 바로바로 그려내는 한국화가 재미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1학년 말에 한국화를 선택하여 한국화만 했다. 
    재미있으니까 잘하고 싶고 잘하게 되더라고 여인영 작가는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과에서 전공 1등 상인 예능 상을 받았다. 고2 때는 전국 학생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국가보훈처장 상이 걸린 전국대회가 독립기념관에서 있었는데, 안중근 의사를 그리면서 국화를 넣어 그린 것이 대상의 감동을 안겨 주었다.
솔랑시울길을 따라 걷다
    대전의 근대 역사는 철도로 시작된다. 일본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본 철도 기술자들이 대전역 근처에 많이 살았다. 하여 일본식 건축이 40여 동 보존되어 있다. 건물 관사마다 번호가 붙었는데 이 중 42호 관사는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때때로 전시회가 열린다. 
    조용한 대전역 뒷동네, 골목을 지나야 길이 나오는 곳, 고양이와 나무, 전봇대가 있는 곳, 오래된 건물이 있는 골목 풍경이 좋더란다. 대전역이라는 거대한 현대의 산 뒤에 과거의 뒷동네가 있다. 명암이 존재하는 뒷동네를 걷다가 글 쓰는 작가를 만나 재미있게 기록해 보자고 의견을 나누었단다. 그 후 대전시에서 신진 청년작가들에게 주는 지원금을 받아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고 솔랑시울길을 끼고 있는 동네를 그리는 작업을 했다. 누구는 글로, 누구는 그림으로 그 시절을 재조명했다. 


 
나의 기억은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기억이 된다
    여인영 작가는 졸업 후 2017년에 ‘솔랑시울길을 따라 걷다’라는 주제로 첫 개인전을 했다. 옛것에 관심을 둬본 적 없던 작가에게 큰 울림을 준 장소였기에 의미를 더했다. 이 건물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는 이 마을, 이 마을이 간직한 따뜻한 낡음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 전시회였다고 평가한다. 
    소재동을 기록하며 여인영 작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회색 도시 안에 그 낡은 마을이, 상처로 벗겨진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 드로잉 혹은 강렬한 색채로 상처를 그리던 그동안의 표현방식을 바꾸게 하는 순간이었다. 한지 위에 목조 건물들이 가진 딱딱함을 연필로 새겼다. 그 위에 먹을 뿌렸다. 먹과 물, 흑연은 서로 섞이는 듯하지만, 위에서 맴돌 뿐 이들을 안고 있는 종이에는 연필이 남겨놓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2018년도부터는 작품 모델이 대전에서 청주로 옮겨진다. 고향에서 작품 모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청주 곳곳에 과거 기억들이 머문 풍경들을 찾아내어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 그사이에 생긴 틈을 그렸다. 한지에 먹처럼 번져나가는 흑연 움직임이 우리의 삶을 연상하게 한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은 먹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일은 흥미롭다. 
그래도 그림 그리는 이유를 말하라
    2018년 문득 여인영 작가의 눈에 들어온 건물이 있다. ‘강남 부동산’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사람들에게 일제 건물로 불리며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 24년을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처음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에 발이 달려 옮겨온 것은 아닐 텐데 이제 서야 눈에 들어온 이유가 뭘까? 
    너무도 갑자기 눈에 들어온 강남 부동산이라는 건물을 보며 자신의 기억 속에도 틈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강남 부동산을 시작으로 기억 속의 틈을 찾는 여행을 한다. 평생을 청원군에 살고 8년째 오송에 살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정말 많았다. 그동안 놓치고 있던 기억 속의 틈을 찾으며 그림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한지 위에 연필로, 한지 위에 수묵 담채로 건물들을 하나하나 그리다 보니 몰랐던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버려진 집을 그리며 그 집이 가진 상처를 타투로써 새겨 넣었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그림 그릴 때, 붓을 잡을 때, 연필을 들었을 때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일기장 작업이라고 부끄러워할 때도 그림을 그릴 것이다. 돈이 없어 빌어먹을 때도 그림을 그릴 것이다. 가장 기쁘고 가장 아프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그림을 그릴 것이다. 평생 그림으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해도 그릴 것이다. 그림이 나를 파멸시킨다 해도, 내일의 희망이 없다 해도 그림 그리는 이유를 말할 것이라고 여인영 작가는 말하고 재차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