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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에서 그림 밖으로 나온 그녀

2021-11-18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문화생태계 DB
그림 안에서 그림 밖으로 나온 그녀
'역사의 아픔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작가 이소리'

    낭성에 그녀의 집이 있다.
    창 넓은 그림 같은 집에서 그녀가 살고 있다. 피부가 하얗고 웃는 모습이 예쁜 이소리 미술가는 그 누구와도 다른 시선을 가진 작품을 하고 싶었단다.
    “아마도 저의 고독에 대하여 그리고 싶었기에 그림은 끝없는 자유와 그 누구도 행하지 않는 실험에 집착한 듯합니다 . 그러다가 그림과 현실의 불협화음과 그림에서의 자유와 이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현실을 바라보다가 그러면 그럴수록 그 평면에서 멀어지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현실에서 지독한 아픔을 당하고 마음을 다스리려고 멀리 긴 여행도 떠나보았지만, 산란하기만 했다. 그때 본능적으로 다시 화구를 찾아 붓을 들었다. 먼 곳에서 찾지 말고 내 속에서 내가 사는 사람 속에서 그림을 찾게 되었다. 사람들이 사는 속내와 역사를 보면서 무엇이 재미있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일까 생각했다. 그런 세상을 위한 그림과 예술을 함께 하면 어떨까.
    평면회화에는 그녀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퍼포먼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넓은 공간에서 자유로운 몸짓이 드로잉이 되었고 이제 평면 밖으로 나와 내 몸으로 세상과 대화를 했다. 이상하게도 퍼포먼스를 하니,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예술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니 유년시절 인간의 고독에 대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고 퍼포먼스를 하면서는 사람들의 상처와 시대의 아픈 역사에 초점이 맞춰졌다.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
    “살아가는 일이 상처를 산처럼 쌓아가는 일이더군요. 상처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상처를 비웃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도 퍼포먼스를 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얼마 전 청주 보도연맹에 관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더군요. 요즘은 우리 역사에서 파묻힌 여인들의 비명이 제 귓전에 계속 맴돌아 쳐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창작 욕구의 표현으로 몸으로 드로잉을 하게 된 것이 행위예술 첫 데뷔작인 오체투지였다. 3년전 어느 날, 청주 숲속갤러리 마당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땅 위의 지열이 온몸 구석구석 닿는 곳마다 불로 지질 듯 아팠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예술과 인생은 고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첫사랑에 빠지듯이 빈센트 반고호를 열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어릴 적 그의 강렬한 색채에 끌렸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처럼 치열할 수 없다는 자괴감인지 몰라도 그를 되돌아보지 않다가 어느 날 다시금 그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고호의 그림을 잘 보면 앞모습보다 옆모습이 많고, 옆모습보다 인물의 뒷모습이 멀어지듯 보인다. 그림에 인물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인물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존재라는 것은 부존재로 존재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존재를 규명하는 오감이라는 것은 본질과는 다른 현상의 세계였다. 고호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화가였다. 나이가 들어 다시금 고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돌아와 다시 거울 앞에 선 내 누이가 다시 고호를 느낀 것이다. 고호와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여행 중 미술관에 갔다 고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 앞에서 걸음이 멈추었다. 서너 시간을 꼼짝않고 서 있었다.


밤을 춤추게 하는 그림
    ‘아 밤이 춤을 추는구나 . 그림이 숨을 쉬는구나 . 그림은 떠도는 혼이구나.’
    그때 어디선가 이명처럼“아버지 하나님 어찌하여 절 버리시나이까?”예수님의 절규가 들렸다.
    그녀는 고호의 고통이 우리에게 밤이 춤을 추게 하는구나 싶었다.
    “저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이 그림의 값보다는 그 순간을 포착한 그 시간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아 ! 제가 그래도 시간의 소중함을 그렸구나’라고 느끼며 보람을 갖게 됩니다.”
    그녀의 퍼포먼스를 보고, 동생은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친구는‘여성의 아픔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보도연맹 퍼포먼스>를 보고, 모르는 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역사와 예술이 만나는 새로운 장을 마련해보자고 제안을 해왔다. 이제야 비로소 그녀가 그림 안에서 그림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