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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일상이 담긴 왕의 식사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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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일상이 담긴 왕의 식사
'국가무형문화재 조선왕조궁중음식 보유자 한복려'

    궁에서 먹는 음식은 무엇이 다를까. 그 당시 백성들이 접할 수 없었던 진귀한 재료와 나라에서 제일가는 솜씨를 얹어 만든 궁중음식이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맛과 기능'이 재현되었다. 그럼에도 궁중의 음식은 무언가 다르다. 지도자의 법도가 있으며, 귀중한 손님을 대하는 예(禮)가 있다. 모든 재료가 생명임을 알고, 귀한 것을 귀하게 다룰 줄 아는 마음, 그것이 궁중 음식이 우리에게 물려준 무형의 정신이다. 
음식에도 법도와 예의가 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순간만큼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있을까. 이렇듯 음식은 주로 입안에서 펼쳐지는 맛을 위주로 묘사된다. 하지만 궁중음식은 다르다. 팔도의 식재료를 사용해 만들어 낸 요리를 법도에 맞게 맛보기까지, 모든 과정은 음식을 통해 나라의 질서를 살피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에 궁중음식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요리 기능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시대를 이어가는 문화와 정치 전반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궁중음식은 궁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궁중의 특별한 의식이 모두 담긴 문화재입니다. 그래서 궁중음식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요리를 넘어 식문화 속에 담긴 역사를 알아간다는 것과 같죠. 저는 기능인이면서 동시에 궁중음식의 이론적인 면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학원 과정에서 궁중음식 외에 식문화 부분도 더 공부했지요.”



    국가무형문화재 조선왕조궁중음식 보유자 한복려 선생은 조선의 마지막 상궁 한희순의 뒤를 이은 황혜성 선생의 맏딸이다. 궁중음식의 전통을 잇는 계승자로서 그는 자신이 어머니가 그러했듯 기능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 궁중음식 전반을 연구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식재료를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궁중음식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궁중음식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어요. 잔치 음식을 만든 기록에는 왕실의 어떤 행사를 위한 잔치였는지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음식 재료로 무엇이 쓰였는지, 몇 가지의 음식이 나갔는지 등 굉장히 역동적인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궁중음식을 만들고 대접하는 모든 과정에는 과거의 예법이 그대로 녹아 있다. 예를 중시했던 조선왕조는 식사 역시 모두 때와 법도에 맞게 먹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사소하게는 국은 밥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가끔 먹는 음식은 상의 먼 구석에 배치하는 등 먹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또한 동치미 국물을 먼저 한 숟갈 마신 뒤 밥과 국을 같이 먹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하거나, 수저를 식사의 순서에 맞게끔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 등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한 끼에 다양한 음식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에 음식의 간은 싱겁게 해야 한다.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다양한 재료를 맛보는 과정은 전국에서 나는 특산물을 확인하는 정사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적은 재료로 음식을 준비해 자극적으로 반찬과 국을 만들고 밥의 양을 많이 내어놓는 일반 백성들의 상차림과는 맛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이다. 
 
左) 궁중음식연구원운 1971년 조선왕조궁중음식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 이를 보급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전수교육기관이다.
  右) 조성왕조궁중음식은 주식류, 반찬류, 병과류, 화채류 등으로 나뉜다.
 
궁중음식으로 잇는 과거와 미래
    한복려 선생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 궁중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궁중음식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어머니 황혜성 선생은 가장 가까운 맏딸에게 전수자가 되기를 권유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복려 선생은 기능으로서 궁중음식은 물론이고 학문으로서 궁중 문화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제가 배운 건 기술 이상의 것이죠. 지금 우리가 궁중음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현대의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지 과거의 것과는 또 다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한문으로 된 기록을 모두 찾아보며 그때의 시대정신과 문화를 익히는 작업이 필요해요.”
    한복려 선생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어 궁중음식연구원의 제자들과 과거 궁중의 음식을 재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희순 상궁이 미처 남기지 못했던 궁중음식을 『진연의궤』, 『진찬의궤』 등의 기록에서 발굴하여 그 당시 재료와 조리법을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현대 기술인 사진과 영상 등으로 남겨 후대에 전승하며 음식으로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잇고 있다.
 
01. 「의궤」나 음식발기에서 조리법을 알기 어려울 때는 고조리서의 내용을 참고하기 때문에 궁중음식 외에도 고전음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02~03. 한복려 보유자는 단순한 기술과 맛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담긴 그 마음과 정성을 기리고자 한다.

    “예를 들면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수원 화성까지 8일의 행차를 한 기록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살피는 작업이 있었죠. 그 안에는 혜경궁 홍씨가 받은 밥상을 비롯해 상궁과 군인, 평민 등이 먹은 음식에 관한 기록이 촘촘하게 적혀 있어요. 이걸 재현하는 작업을 거쳐 후대에 전승하는 일이 제가 해야 할 책임이라고 느낍니다.” 그가 운영하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는 과거의 음식을 복원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궁중음식의 조리법을 책으로 출판하고 일반인에게 직접 가르치는 계승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한복려 선생은 자신이 음식을 가르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나 기술보다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직접 요리를 하지 않는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부모님이 음식을 만드는 걸 직접 보고 요리를 하는 방법과 먹는 방법까지 몸으로 눈으로 익혀야 하는데 그게 안 되죠. 그와 동시에 식재료에 대한 존중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모든 식재료는 생명이기 때문에, 죽은 것을 내가 요리로 다시 살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요리를 해야 해요. 그런 정성이 궁중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요리의 핵심이라는 것이 저의 철학입니다.”
    음식을 만들고, 대접하고, 먹기에 이르기까지 궁중음식은 단순히 지위가 높은 사람이 먹는 진수성찬을 의미하지 않았다. 전국에서 백성들이 바친 소중한 재료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보다 음식을 먹는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궁중음식이었다. 자원과 방법이 풍부한 현대사회에서는 언제나 궁중음식을 먹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궁중음식을 복원하는 한복려 선생이 복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기능과 맛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과 기능을 소중하게 여겨 경외할 줄 아는 그 마음과 정성을 기리는 것.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