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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산에 흩어진 시간의 체온

2022-01-12

라이프가이드 여행


옹기종기 옥산 마을길 따라
동림산에 흩어진 시간의 체온
'동림산성 / 자명골 계곡 / 볍시마을 소로리 / 미호천 자전거길'

    해가 뜨면 천천히 달아올랐고 해가 지면 천천히 식어갔다. 그런 날들이 얼마나 오래인가. 천년을 묵은 시간의 체온이 손끝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진다. 그 무수한 비바람에 비한다면 산 아래 한숨들은 겨우 하룻밤의 눈물인 것을. 
    문득, 폐허의 자리가 눈부시다. 
세월을 품은 산성의 흔적 _ 동림산성
    산에 올라서도 우리는 자주 서둘렀다. 내려서는 길이 아득해서 봉우리에 머무는 시간은 짧기만 했다. 하지만 정상부에 천 년 전 산성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동림산에서는 봉우리에 머무는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 허물어진 성돌 위로 나무와 풀들이 자라는 폐허의 자리. 온종일 햇살을 받은 돌덩이를 만져보며 천년을 묵은 시간의 체온을 느껴보는 것도 좋으리라. 
    옥산의 서편에 솟은 동림산(해발 457m)은 삼국시대에도 접경이었지만 지금도 청주와 천안, 세종의 경계를 이루며 여러골짜기들을 거느리고 있다. 거기에 주변의 국사봉, 환희산, 망덕산 같은 산들이 모두 낮아서 사방으로 멀리까지 내다보였으니, 삼국시대부터 이곳에 둘레 800m가 넘는 큰 규모의 산성이 있었던 이유다. 백제계 토기 조각이 주로 나와 백제가 쌓았을 걸로 추측하지만 성의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는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세월 저편의 시간에 다가서기 위해선 때로 상상력이 필요하다. 잡풀 무성한 동림산 정상부를 걸으며 생각한다. 뒹구는 저 돌은 성돌이었을 것이다. 성 안엔 군사들이 매어놓은 말도 있었고, 여기 어딘가 우물자리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 산봉우리에 올라 등짐을 져가며 성을 쌓았던 사람들, 어느 날엔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어느 날엔 패배의 쓴맛을 삼키며 쫓겨갔을 사람들. 그 무수한 이야기들을 그려보자면 한 시간이 아니라 한 생이 지나도 모자라리라. 동림산성은 감탄할 것보다 상상할 것이 많아 좋다. 
    <동림산 등산> 청주 방향 동림산 산행코스는 3가지가 있다. 장동리에서 시작하는 코스, 동림리 상동림 마을에서 시작하는 코스, 그리고 장동저수지 북쪽의 임도를 따라 올라서는 코스다. 그 중 380년 수령의 느티나무 정자목에서 출발하는 상동림 코스가 비교적 정비가 잘돼 있다. 정상에 도착하면 동림산성의 흔적을 찾아보고 잠시 시간 저편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01. 동림산성 성돌        02. 동림산성 성터 흔적       03. 자명골 계곡
 
스스로 울어 강감찬을 구한 북소리 _ 자명골 계곡 
    동림산 자락에도 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전한다. 인근의 국사리에서 장군의 무덤이 발견되기 훨씬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이야기들이 무덤의 존재를 앞서 증언했던 셈이다. 귀주대첩의 신화를 만들고 벼슬길에서 물러난 강감찬은 다시 관직에 나가기까지 10년의 공백기를 가진다. 그때의 행적은 기록된 것이 없지만 옥산 국사리와 동림산 일대에는 유난히 강감찬의 이야기가 별처럼 총총히 박혀있다. 동림산 자명골의 설화도 그 중 하나다. 
    노년의 강감찬이 동림산 자락의 초당에서 가을 경치를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북소리가 들려왔다. 헌데 그 소리는 비범한 강감찬에게만 들리는 것이라서 노복들은 듣지 못했다. 한동안 귀를 기울여 북소리를 듣던 강감찬이 노복에게 명하길, 장정 열 명을 데리고 고개머리로 가서 숲속에 숨은 괴한들을 잡아오라 했다. 가보니 과연 수상한 자들이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귀주대첩에서 패한 소배압이 앙갚음을 하려고 보낸자객이었다. 그 후. 이곳은 ‘스스로 울어 북소리를 낸 골짜기’ 라 하여 자명골이라 불렸다. 
    장동저수지 위쪽의 자명골은 계곡이 아름답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니 여름에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호젓하고 운치 있기로는 가을이 제격이다. 곱게 물든 단풍을 보고 낙엽을 밟으며 계곡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걷노라면 가슴속에 ‘스스로 우는’ 그리움 하나, 발견할 수 있으리라, 자명골이란 그 이름처럼. 
    <동림산 자명골 계곡> 장동리에서 도로 왼쪽으로 장동저수지를 끼고 달려 다다른 저수지 끝의 고개마루가 자명골이다. 민가 몇 채가 있는 마을 앞 비포장길을 500m쯤 올라가면 석보종친회 선산 입구가 나오고, 거기서 왼편 오솔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계곡이 나타난다. 
소로리 들길을 걸어 미호천으로 
    들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을 낮추는 일이다. 봄 여름내 허리 숙여 일한 농부, 가을날 고개 숙여 익어가는 벼 이삭, 겨울날 빈들이 일깨워주는 충만한 고요 앞에서 마음은 비로소 더 낮은 곳으로 물길을 낸다. 이제 알겠다. 삶의 노래들은 왜, 작게 불러도 크게 들려오는지를. 
 
左) 소로리 입구 버드나무    右) 소로리 볍씨 상징 조형물
 
가을, 들길, 그리고 소로리카 _ 볍씨마을 소로리 
    하늘이 너른 들판에 가을을 부려놓았다. 환해서 더 눈물겨운 가을 들판. 눈부신 비늘처럼 치렁치렁한 햇살이 쏟아진다. 삶이 출렁이는 바다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을날의 논이 아닐까. 미호천이 순한 흐름으로 강폭을 넓히며 펼쳐놓은 너른 들이 있어 옥산과 오창은 예로부터 이름난 곡창지대였다. 그곳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고, 한편으로는 세계 고고학의 역사를 바꿔놓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적어도 1만3천 년 전의 것이라는 그 볍씨들은 ‘소로리카’로 명명되었다. 볍씨들이 발견된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와 세조로부터 ‘작은 노나라’라는 뜻으로 ‘소로小魯’의 이름을 얻었다는 소로리. 마을입구엔 2백년 묵은 버드나무 고목이 있고 마을 안엔 수령 3백50년이 넘는 팽나무가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팽나무의 잎이 피는 것을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고 한다. 
 
左) 미호천 자전거 길     右) 미호천의 일출
 
두 바퀴로 누리는 자유 _ 미호천 자전거길 
    시속 1km는 봄꽃이 피면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속도, 혹은 단풍이 들면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속도다. 자연에서 난 사람의 속도계도 처음엔 그렇게 맞춰지지 않았을까. 계절이 깊어가는 시속 1km의 속도로. 하지만 지금 우린 아찔한 고속도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지러운 디지털의 속도에 끌려다니느라 멀미가 난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의 속도를 알고 중심을 잡으려면 걷기와 자전거 타기가 절실하다. 
    미호천에는 걷기에 좋고 자전거를 타기도 좋은 길이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청주시내에서 무심천을 따라 왼쪽 기슭으로 이어진 자전거 길은 까치내 작천보를 지나 옥산 미호천교(덕촌교)에 닿고, 거기서 다리를 건너가면 다시 미호천의 오른쪽 기슭을 따라 세종시의 금강 합수머리까지 연결된다. 시야를 좀 넓혀보면 미호천 자전거 길은 괴산의 새재와 금강을 연결하는 ‘오천五川자전거길’의 한 부분이다. 증평 보강천이 미호천에 합류하는 지점부터 까치내를 지나 금강 본류가 시작되는 세종시 합강까지 약 40km, 백리 길이다. 
    걷기와 자전거 타기는 정직하다. 내딛은 꼭 그만큼 내 힘으로 되짚어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수고한 그만큼의 즐거움이있다. 걷거나 페달을 밟는 리듬에 맞춰 잡념이 사라지고 답답했던 마음의 공기가 환기된다. 두 다리와 두 바퀴로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 미호천 자전거 길에서 시속 1km의 속도로 다가오고 멀어지는 계절을 마중하고 배웅해보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