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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여백의 아름다움 국보 백자 달항아리

2022-05-12

문화 문화놀이터


그 사람이 추천하다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여백의 아름다움 국보 백자 달항아리
'김용건 군이 추천하는 우리 문화재'

    2019년, 〈SBS 영재발굴단〉에서 13세 소년과 역사교육과 대학생, 현직 역사 강사가 함께 ‘문화재 퀴즈 대결’을 벌였다. 승리는 긴 시간 역사를 공부해 온 이들을 제치고, 문화재를 사랑한 소년에게 손쉽게 돌아갔다. 휴대전화 속에 2,500장이 넘는 문화재 사진을 저장하고, 박물관 도록을 30번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재 덕후, 김용건 군의 이야기다. 방송 출연 후 3년이 지난 지금, 어느새 마지막 중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는 용건 군. 자라난 키만큼 문화재 사랑도 더 커진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가 무엇인지 물었다. 


역사가 가장 재미있는 문화재 덕후
    김용건 군이 문화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공룡을 가장 좋아했던 용건 군에게 아버지는 역사 만화책을 선물했다. 책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인물, 정책, 문화를 알면 알수록 역사가 남긴 문화재는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해 주었다. 이를 30번이나 읽은 용건 군은 이후 ‘만화책 말고 글로 된 책도 읽어보라’라는 선생님 권유에 점심시간만 되면 운동장에 나가 여러 종류의 역사 책을 거듭 읽었다. 역사란 지루하고 머리 아픈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알면 알수록 새로움과 재미가 가득했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제 눈으로 직접 문화재를 보고 싶었어요. 틈날 때마다 부모님과 전국 방방곡곡으로 문화재 투어를 떠났죠.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이 있는 곳은 거의 다 찾아가서 본 것 같아요. 방송 출연 때 휴대전화에 문화재 사진이 2,500장 정도 저장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4만 장이 넘었어요.”
    문화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오간 용건 군은 살고 있는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도 여러 번 오갔다. 문화재를 마주할 때마다 현장에서 느낀 점과 생각을 공책에 자세히 기록했는데 2020년, 이 글을 다듬고 살을 붙여 책을 펴냈다. 『초등학생 김용건이 쓰고 찍고 그린 문화유산답사기』이다. 240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부여 정림사지, 부소산성을 비롯해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등 용건 군이 탐방한 백제문화 유적지와 관련해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직접 찍은 현장 사진과 색연필로 그린 그림도 넣어 누구나 쉽게 문화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라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기왕 낼 거면 초등학교 때 내보자’라며 도와주셔서 그동안 수기로 쓴 원고를 취합하고 정리했죠. 준비하는 동안 장염에 걸려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책을 썼을 만큼 나름 열심히 준비했어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도서관에도 제 책이 있는데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웃음)”
    “조선시대 대부분의 문화가 한중일 삼국에서 돌고 돌아 유행했는데 달항아리만큼은 오직 조선에서만 나타났어요. 우리만의 독자적인 백자인 것이죠. 저는 달항아리만의 절제와 담박함이 너무 좋아요. 순백의 빛깔과 둥근 조형미까지 우리나라의 정서를 정말 잘 나타내는 문화재이죠.” 
 
(左)여백의 미가 아름다운 국보 백자 달항아리(1991) ?문화재청    (右)김용건 군이 13세 때 출간한 『초등학생 김용건이 쓰고 찍고 그린 문화유산답사기』 
 
한국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내는 백자 달항아리
    용건 군에게 인터뷰에 앞서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보내온 메일에는 ‘만월을 닮은 한국미의 정수, 그리고 비움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백자 달항아리에 관한 애정 가득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17세기 후반에 나타나 18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백자대호(白磁大壺), 백자 달항아리는 보름달처럼 크고 둥글게 생겼다 해서 1950년대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달항아리의 고향은 현재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금사리 가마예요. 그 당시에는 고급백자를 생산해 내는 분원의 일원 이었죠. 대부분의 문화가 한중일 삼국에서 돌고 돌아 유행 했는데 달항아리만큼은 오직 조선에서만 나타났어요. 우리만의 독자적인 백자인 것이죠. 저는 달항아리만의 절제와 담박함이 너무 좋아요. 순백의 빛깔과 둥근 조형미까지 우리나라의 정서를 정말 잘 나타내는 문화재이죠.” 
 
01. 김환기 화백의 백자와 꽃, 1949, 캔버스에 유채, 40.5×60cm, ?환기미술관
02. 문화재를 마주할 때마다 현장에서 느낀 생각을 공책에 자세히 기록했다. 이는 책 집필의 자료가 되었다.
03. 김용건 군은“여백의 미를 가진달항아리처럼무엇이든 할 수있는 가능성을 지닌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전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는 유연함도 용건 군이 달항아리에 푹 빠진 이유 중 하나이다. 달항아리는 도예가뿐 아니라 여러 화가의 솜씨로 화폭에서 재현되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는 프랑스 파리에 머물 당시 달항아리를 그리며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단순함에서 오는 세련미는 간결하고 소박한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에도 부합한다.
    “없다[無]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채울 수 있고,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해요. 흔히 ‘공허’와 ‘여백’을 혼용하지만,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공허와 달리 여백은 의도적으로 공간을 남긴 비움의 미학입니다.” 현재 함평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용건 군은 올해 안으로 도자와 금속공예품 100여 개를 소개하는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제주부터 강원까지 전국을 답사하며 기른 안목과 지식을 대중들에게 전할 계획이다.
    “미래에 문화재청장이 되길 꿈꾸고 있지만, 그 전에 학예연구사가 되고 싶고, 이를 위해 역사학과 진학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여백의 미를 지닌 달항아리처럼 저도 늘 꿈을 꾸는 사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