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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흐르는 공예

2018-04-12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거꾸로 흐르는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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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18년 전 당시를 생각해본다. 나에게 그 무렵은 커다란 부푼 기대로 사회에 첫발을 내 딛었고 마치 미래에 첫 발을 내 딛는 기분이었다. 2000년 밀레니엄의 시대가 도래 해 왔을 무렵 컴퓨터와 인터넷이 가져다온 스피드는 정말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놓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당시에 상상한 2018년도는 손 하나만 까딱하면 모든 게 현실이 되고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간편하게 완성하며 사는 삶이 올 것이라 상상했었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세상은 상상도 못해 보았던 기기와 디지털화 모바일화 된 삶 속에 깊이 발을 들이게 하고 있다. 요즈음은 증강현실(AR/Augented Reality) 가상현실(VR/Vertual Reality)을 체험하며 현실이 아닌 세계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2000년도 무렵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 보다 먼저 취업에 성공한 나는 좀 더 빨리 성공하려면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지 않았나 싶다. 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신입사원들은 취업과 더불어 고속성장을 하고자하는 회사의 톱니바퀴에 잘 맞물려 들어갔던 것이다. 내가 취업한 회사는 비싼 캐드 프로그램, 빨리 출력하는 고속 프린터, 색을 다 표현해내는 스캐너를 사서 디자인을 빨리해내라고 했고, 초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사서 백화점 시장조사를 하도록 했다. 점점 할 일이 빨리 처리되었고, 그 만큼 일은 더 증가하고 저녁도 없고, 주말도 없는 생활 속에서 회사의 기계들과 더불어 숨 쉬는 속도마저도 맞춰야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디지털화된 환경과 고속성장에 노출되어 살아오던 나의 오늘의 삶은 전혀 미래적이지 않다. 오히려 첨단의 기계가 이루어낸 미래의 풍경에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랄까. 아침이 되면 공방을 청소하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 작업해야 할 주문들을 끼적인다. 엊그제 보낸 주문 제작된 장지갑이 그 분의 취향에 맞는지 연락도 해보고 오늘 만들 그 한 분을 위한 작업 앞에서 주문한 그 분의 어투와 직업, 좋아하는 취향들을 생각하며 다시 작업이 시작된다. 종이에 만들 디자인의 형태를 그려 보고 완성이 되면 패턴지에 패턴을 그려 오리고 잘라낸다.



    이제 가죽을 고르고 선을 긋고 컷팅을 하고 망치로 두들겨 바느질 구멍을 내고 한땀 한땀 바느질을 시작한다. 내 손은 종일 쉴 새 움직이며 내가 살았던 그 어느 시절 보다 바쁘지만 어떤 기계의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되고 내 속도로 움직이며 가장 경쾌하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2000년도에 상상했던 미래의 삶의 모습에 귀속되어 있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아날로그적이고 감정에 충실하며 기계적이지 않다. 원시시대에는 모든 것들이 손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았을 것 같았다면 나 또한 그런 삶 속에 오히려 더욱 가까이 가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핸드메이드 가죽공예, 그리고 다른 공예 부분에 업을 삼고 취미를 갖고 있는 이들은 이렇게 다른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왜 자꾸 반대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세상이 무섭게 일으키는 그 속도에 맞추어 살다보면 결국 어딘가 세게 부딪히게 되더라. 왜 그렇게 빠르게 왔는지 옆에 한번 돌아볼 새도 없이. 그리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삶의 그 깊은 한 면을 자세히 들여다 봐야하지 않겠냐고 그 누군가가 바로 공예인 또는 예술인의 역할이 아니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