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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물줄기 따라 구담에 오르다

2019-06-25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테마기행
남한강 물줄기 따라 구담에 오르다
'충북 어디까지 가봤니 ?단양 구담봉'

    계란재 고갯마루에서 출발해서 구담봉까지 걸었다. 차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길이 1.4㎞ 이어진다. 그 지점에서 구담봉과 옥순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구담봉까지는 600m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운치 있다. 구담봉 정상에서 보는 통쾌한 풍경이 압권이다.
구담, 신선의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
    금수산 줄기가 남쪽으로 흐르다 말목산을 밀어 올렸다. 용두산 줄기의 맥이 북쪽으로 치달으며 제비봉으로 이어진다. 제비봉과 말목산이 마주보는 사이로 충주호 남한강이 흐른다. 남한강 물줄기가 서쪽으로 흘러 구담봉을 만나게 된다.
 
구담봉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구담봉의 원래 이름은 구담이다. 구담은 현재의 구담봉을 아우르는 그 주변 지역을 일컫는 옛 이름이기도 했다.(봉우리를 뜻하는 ‘봉’이라는 말은 후대에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구담 주변에 구담봉, 옥순봉, 강선대 등 예사롭지 않은 풍경들이 줄줄이 이어지지만 충주호가 생기면서 우리는 지금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충주호의 깊이만큼 물에 잠긴 풍경이 궁금하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나 그 후대 사람 이방운의 그림에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다. 정선의 <구담도>는 강물이 흐르는 방향인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본 풍경이며, 이방운의 <구담도>는 현재 장회리 유람선 선착장을 지난 강물이 오른쪽으로 돌아 흐르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 흐르는 오른쪽 강기슭 언덕 어디에서 본 풍경으로 생각된다.
    두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강기슭이 보인다.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하는 풍경이다. 이방운의 그림에는 강가에 정자도 한 채 보인다.
    해발 300m가 넘는 바위 절벽 봉우리가 남한강 강바닥에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오른 그림 속 풍경에서, 구담봉은 신선이 사는 마을을 지키는 거대한 파수꾼이 된다.
    구담봉을 지나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만나게 되는 도담삼봉과 석문 주변에 마고할미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그 물길의 더 위쪽 영춘면 어느 산골짜기 마을은 조선시대에 전쟁과 병이 닿지 않는 ‘십승지’ 중 한 곳이었으니 신선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을 것 같다.      
    조선시대 사람 이지번도 구담에 사는 신선이라고 해서 구선(龜仙)이라 불렀다. 사는 모습이 욕심이 없고 깨끗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명종의 삼촌인 윤원형은 당대에 권력의 전횡을 일삼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딸을 이지번의 아들인 산해와 혼인시키려 하자 이지번은 동생인 이지함과 단양 구담에 내려와 은거했던 것이다. 이지번의 동생 이지함이 바로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그 사람이다.
 
구담봉 정상에서 본 풍경
 
구담에 오르다
    이지함은 구담 주변의 산꼭대기에 올라 산줄기의 흐름을 보았다. 그가 보기에 계란리 마을이 닭이 달걀을 품은 형국이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계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구담봉에 오르는 길의 초입은 계란재 고갯마루다. 충북 제천과 단양의 경계이기도 한 그곳은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걷는다. 1.4㎞ 지점에서 옥순봉과 구담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곳은 소나무가 있는 넓은 쉼터다.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쉰다. 옥순봉은 제천 땅이고 구담봉은 단양에 속한다. 구담봉까지 600m다.
    이정표를 따라 구담봉 방향으로 걷는다. 넓은 솔숲을 뒤로하고 걷는 길은 능선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트인다. 산에 담긴 남한강이 보인다. 능선을 장악한 바위와 단단하게 다져진 흙길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걷는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이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구담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 앞에 섰다. 언뜻 보기에도 계단의 기울기가 예사롭지 않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하나 굳게 밟으며 오른다.
     ‘구담봉 330m’라고 새겨진 정상 표석 뒤에 전망 데크가 있다. 그곳에서 통쾌하게 펼쳐진 전망을 마음에 담는다. 남한강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저 아래 물가에서 한산하다. 유람선 한 척이 물결을 그리며 나뭇잎처럼 떠다닌다.
 
구담봉과 옥순봉 갈림길
 
옛 이야기는 물길 따라 흐르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걷는다. 바위 능선 내리막에선 두 발 두 손을 다 쓰며 내려간다. 그런 길에서 구담의 옛 사람들을 생각한다. 퇴계 이황, 겸재 정선, 이방운, 이지번 이지함 형제, 그들은 구담봉의 정상에 올랐을까? 구담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인 바위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것으로 봐서 그들은 구담봉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 구담봉에 오르기 전에 들렀던 충주호 유람선 선착장 한쪽에 있던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생각했다.
 
두향이의 묘

    퇴계 이황과 두향이의 상이 충주호와 구담봉을 배경으로 배치됐다. 그 옆에 퇴계 이황을 사모했던 기생 두향의 애절한 이야기가 돌에 새겨져있다. 충주호 산기슭에 있는 두향의 무덤과 그가 몸을 던진 절벽, 강선대를 찾아볼 수 있는 시설물도 보인다.
    죽음으로 퇴계를 향한 마음을 영원히 간직한 두향의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하다. 그 이야기가 허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설령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각박한 세상에 그런 이야기 하나 전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이의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듯 충주호 남한강 물길을 따라 그 이야기가 흐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부러 월악산 송계계곡 쪽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하늘은 파랬고 미세먼지도 없었다. 계곡 앞 가게에서 먹을 것을 사서 계곡이 보이는 쉼터에 앉았다. 물결마다 산란하는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며 구담봉으로 가는 길을 복기해본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그 시간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