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새콤하고 상큼한 충주의 가을

2021-10-26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충북의 숲과 나무?충주Ⅰ
새콤하고 상큼한 충주의 가을
'단호사 소나무 / 사과나무 가로수 / 호암지'

    달천 보다는 달래강이 입에 붙는다. 달래강 뚝방 아래 너른 과수원에 홍옥이 익어가던 시월이 있었다. 서릿발이 설 때 먹던 홍옥은 그 자체로 충주였다. 달래강 강줄기 언저리 어디쯤 소나무가 줄기 비틀며 자라던 세월은 나중에 알았다. 단호사 소나무를 보고 충원대로 사과나무 가로수길을 걸었다. 소외 받은 사람들의 두 손에 안긴, 사과나무 가로수길 사과의 하트 모양을 생각하는 사이, 호암지 물가 숲길에 도착했다. 
500년 넘은 단호사 소나무
     ‘꿈틀댄다는 것’, 그것의 힘이 느껴지는 건 지렁이나 뱀이 아니다. 충북 충주시 단월동 단호사 대웅전 앞 소나무 줄기에서 ‘꿈틀댄다는 것’, 그 힘을 보았다. 소나무 줄기 밑동부터 굽어 가로누워 자랐다. 줄기 끝에서 퍼진 가지조차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옆으로, 하늘로 퍼졌다. 
    뒤틀린 줄기 밑동부터 꿈틀댄다. 세월의 더께처럼 굳어 갈라진 껍질은 꿈틀대는 생명의 견고한 비늘이다. 땅으로 향해 굽은 줄기를 걱정하듯 누군가 돌로 받침대를 만들어 괴었다. 안정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괜한 걱정 같았다. 그렇게 500년 넘게 사는 소나무다. 용이 있다면 그 몸통은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충주시 단호사 대웅전 앞 500년 넘은 소나무

    강원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돈은 많았으나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중 어느 날 집을 찾아온 노인으로부터 충주 단월 지방에 있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면 득남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단호사를 찾아온 그 사람은 불당을 짓고 불공을 드렸다. 간절한 마음을 얹어 기도를 드리던 그 사람은 절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불공을 드리는 마음과 같이 소나무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고향 집 마당에 한 그루 소나무를 심고 안방에 부처님을 모셔 놓은 꿈을 꾸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 사람의 부인도 같은 날 꿈을 꾸었는데 꿈에 단호사 법당이 자기 집 안방으로 바뀌어 보였다는 것이다. 부인은 남편이 있는 단호사를 찾아가 함께 살며 기도를 드리라는 암시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단호사로 떠났다. 그리고 부부는 아이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의 내용보다 500년 넘은 소나무가 꿈틀거리며 자라는 그 형상 하나만으로도 단호사를 찾아볼 일이다. 
    소나무 아래 삼층석탑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다. 대웅전 안에 있는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보물 제512호다. 
사과나무 가로수
    단호사 소나무를 뒤로하고 절을 나선다. 대문처럼 서 있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의 내력도 만만찮게 보인다. 건널목을 건너 단월동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내 버스는 도착했고, 버스에 올라 창밖을 보는데, 가로수 가지에 무언가 주렁주렁 달렸다. 자세히 보니 사과였다. 
    예로부터 충주는 사과의 고장이다. 40여 년 전 충주 달래강 뚝방 아래 너른 과수원에 주렁주렁 달렸던 게 사과 품종 중 하나인 홍옥이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부사 품종보다 작고 새빨간 홍옥은 새콤하고 상큼했다. 늦가을 서리 내릴 때 먹던 사과였다. 그게 사과였고, 충주였다. 
    시내버스 하차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사님이 어디서 내릴 거냐고 물었다. 당장 내리고 싶었지만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세워달라고 했다. 시내버스가 지나온 길을 되걸었다. 가로수가 사과나무였고, 사과나무 가지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사과의 고장 충주, 사과나무 가로수에 열린 빨간 사과가 가을 하늘아래 빛난다.

    충주시는 1998년 건국대사거리에서 마이웨딩홀 방향 1.6㎞ 구간 도로가에 6년생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게 충주 사과나무 가로수의 시작이었다. 2003년에는 충주역 방향 1.7㎞ 구간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2006년에는 건국대 방향 1.6㎞ 구간이 사과나무 가로수길이 됐다. 충주역에서 충주 공용버스터미널 방향 0.9㎞ 구간에는 2013년에 사과나무 가로수길이 조성됐다. 
    사과나무 가로수에 열린 사과들은 수확 전에 중금속 검사 등 먹기에 안전한지 미리 알아보고, 수확한 뒤 소외계층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호암지 물가 숲길을 걷다
    30여 년 전, 호암지에서 수안보 쪽으로 나가는 길가에 딸기밭과 과수원이 많았다. 보름달 뜬 봄밤이면 달빛 앉은 복사꽃이 분홍빛으로 빛났다. 꾸미지 않아도 빛나던 청춘, 달 뜬 밤 빛나는 복사꽃밭을 거닐던 날들이 있었다. 그 추억으로 찾은 호암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上) 분수가 있어 더 청량한 호암지의 가을 어느 날.  (下) 호암지 물가 숲길에서 만난 느티나무와 앉는 그네가 어울린 풍경.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진 산책로를 걸었다. 긴 의자가 놓인 곳마다 쉬었다. 그곳에 의자를 놓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렸다. 어떤 곳은 의자 옆 댓잎이 바람에 흔들렸고, 느티나무 고목 아래에는 두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앉는 그네’도 있었다. 초등학생이 아줌마 두 분과 함께 그 그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줌마들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는 옛말은 그곳에서 유효했다.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를 가두고 활용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안내 글은 체온이 없었다. 다만 지금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만든 시설물과 물가 나무 그늘 길이 아름다울 뿐이다. 
    호암지 둘레를 한 바퀴 도는 4㎞ 정도 되는 호숫가 숲길, 산책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수양버들이다. 그 길 내내 수양버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나무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건 수양버들이다. 
    바람에 낭창거리는 수양버들, 수면에 닿을 듯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 단정하게 빗은 머릿결 같다가도, 무엇에 바치는 헌사인 양 나부낀다. 물가 평탄한 길은 간혹 숲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어김없이 발길은 숲으로 향한다. 짧은 구간 숲길은 더 깊은 숨이다. 
    숲길과 물가 나무 그늘 산책길을 오가는 사이, 호수 가운데 분수는 저 혼자 가을과 논다. 아무렇지도 않아서 더 평온한 가을 어느 날이 호암지에서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