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 ‘미잠미과’. 주변이 논밭뿐인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빵집이지만 ‘빵지순례(빵+성지순례)’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이 자자하다. ‘가루쌀’로 만든 맛있고 건강한 빵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서다. 쌀 소금빵, 쌀 소보로, 현미식빵, 쌀 카스테라, 쌀 브라우니, 쌀눈쌀 식빵, 쌀 베이글 어니언…. 이곳에선 130종이 넘는 모든 빵을 밀가루 대신 가루쌀로 만든다. 가루쌀은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쌀로 밀가루 대체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 쌀 품종이다. 가루쌀로 만든 빵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에 고소한 풍미를 낸다. 또 밀가루 알레르기나 글루텐 소화 장애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미잠미과는 올해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최한 ‘가루쌀 제과·제빵 신메뉴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가루쌀빵 전문 제과점으로서의 경쟁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덕분에 ‘올해 최고의 가루쌀빵’을 두고 실력을 겨룬 가루쌀빵을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농식품부가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한 ‘가루쌀 빵지순례’ 행사에도 참여했다.
미잠미과가 이렇게 되기까지 정창선 대표는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가루쌀로 빵을 만들다 실패해서 갖다버린 빵만 몇 트럭입니다. 실패하면 그 원인을 찾아 연구하고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했어요. 온가족이 가루쌀에 매달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가루쌀빵을 비롯해 특허등록까지 한 ‘쌀눈이 살아 있는 빵 제조기술’ 개발로 맛과 식감을 살린 건강한 빵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정 대표는 사실 빵과는 거리가 먼 정미소 사장님이었다. 빵을 만들어본 적도 없는 정미소 사장님이 이처럼 가루쌀을 연구하고 쌀빵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빵집을 운영하게 된 데는 오랜 고민이 담겨 있다.
미잠미과 정창선 대표는 가루쌀로 130여 종이 넘는 빵과 과자, 면 등을 생산·판매하며 쌀 소비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정미소를 운영하다 빵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정미소를 물려받아 40년 넘게 운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쌀 소비는 줄고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자식처럼 벼를 키우고도 적당한 가격을 받기 어려워지더라. 그런 농민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해마다 남아도는 쌀을 보면서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쌀은 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지역에서 생산한 쌀로 빵과 과자 등 가공식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쌀 소비 침체에 맞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과 진천군농업기술센터가 협력·시행한 ‘쌀가공산업육성 지원사업 및 신기술 보급사업’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2017년 ‘미잠미과’를 설립하고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빵을 만들어본 적도 없고 밀가루가 아닌 쌀로 빵을 만드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빵에 대한 이해나 기술이 없어서 제대로 된 쌀빵을 만들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아들과 딸을 제빵학원에 보내서 몇 개월 동안 빵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하고 온가족이 매달려 쌀빵을 테스트했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지나니 비로소 제대로 된 쌀빵 모양이 나왔다. 가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쌀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결국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처음부터 가루쌀로 빵을 만들었나? 처음에는 진천 지역에서 생산한 ‘팔방미’를 사용했다. 팔방미는 국수 등 가공용으로 만들어진 품종이다. 그런데 팔방미로 만든 빵은 다음날이면 극도로 굳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다 진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쌀(바로미2)이 있는데 한 번 써보라며 샘플을 보내줬다. 가루쌀로 빵을 만들어보니 확실히 달랐다. 식감이 한층 부드러웠고 쌀로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밀가루 빵의 맛과 비슷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루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루쌀은 어떻게 수급하나? 가루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지역 농민과 계약을 맺고 13만㎡ 규모로 재배·수확해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루쌀을 재배하려는 농민들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벼농사를 하는 농민들은 해오던 게 있으니 품종을 바꾸는 걸 꺼린다. 가루쌀을 재배하게 하려면 안정적인 판로와 소득을 약속하고 현장에서 계속 소통하며 믿음을 줘야 한다. 재배매뉴얼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지금은 가루쌀 재배에 적극적인 농가가 많다. 그 덕에 진천에서 100% 생산한 가루쌀로 빵을 만들고 있다. 연간 40~50톤의 쌀을 소비한다.
가루쌀빵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40년 넘게 정미소를 운영한 만큼 쌀에 있어선 전문가고 전문가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쌀의 품질을 중요시한다. 좋은 재료를 써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꼭 좋은 재료를 쓴다. 도정도 직접 한다.
소비자들 반응은? 쌀빵을 찾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밀가루를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우리 빵을 먹으면 속이 편한 게 몸에서 느껴진다고 하더라. 아이들 간식용으로도 찾는다. 밀가루빵에 익숙한 사람들도 쌀빵을 일단 먹어보면 맛도 좋고 종류도 다양해서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제품 개발에도 열심이다. 가루쌀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을 개발해왔다. 맛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구소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쌀빵뿐 아니라 쌀쿠키·쌀국수 등 쌀 가공과 생산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가루쌀 품평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얻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대한민국 제과·제빵 명인과 호텔 셰프 등과 실력을 겨룬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서 매우 기뻤다. 기술과 맛을 인정받은 것 같아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찾아오는 손님도 엄청 늘었다.
품평회에 출품한 빵은 어떤 빵인가? 호밀 대신 진천에서 생산한 가루쌀로 발효빵을 만들어 ‘이태리식 쌀 깜빠뉴’를 만들었다. ‘막걸리 쌀 파운드’는 술빵을 응용한 빵이다. 진천 지역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를 반죽에 넣어 발효해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가루쌀의 매력은? 가루쌀은 기존의 쌀과 달리 활용도가 높다. 빵은 물론 국수, 과자를 만들기에도 적합하다. 물에 불릴 필요 없이 바로 빻아서 사용할 수 있고 소화도 잘된다. 밀가루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고 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혁신적인 품종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처럼 진천 하면 미잠미과를 떠올릴 수 있도록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이 되고 싶다. 나아가 미잠미과가 쌀빵의 대표주자가 돼 진천 하면 쌀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열심히 쌀빵을 연구하고 보급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