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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마포대교 연주 2년째,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진우 씨
'“그래도 살아봐요!” 투신의 다리가 아닌 예술의 다리가 될 때까지 내 연주는 계속될 것'

해 질 녘 서울의 한강 다리 위, 도로를 쌩쌩 지나는 차들로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오는 듯했다. 다리 위를 걷는 것은 누군가에겐 낯선 일이지만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진우 씨는 익숙한 듯 성큼성큼 걸었다.
“저기 여의도 한강공원 보이죠? 생의 가장 힘든 순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곳에 올라왔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저 공원에 있는 행복한 얼굴들과 대비돼 기분이 묘해요.”
이 씨의 무대는 바로 이곳, 마포대교다. 2023년 4월 첫 공연 이후 ‘1년만 해보자’고 마음먹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공연의 이름은 ‘그래도 라이브(LIVE)’. 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에게 ‘그래도 살아보자고’ 건네는 희망의 음율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3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마포대교는 한강 다리 가운데 가장 투신자가 많은 곳이다.
열일곱 살에 록 음악을 배우러 영국으로 떠난 이 씨는 우연히 들은 재즈 음악에 매료돼 진로를 바꿔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뉴욕 뉴스쿨과 뉴올리언스대학에서 정통 재즈를 공부했고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엘리스 마살리스의 가르침도 받았다. 두 장의 정규앨범을 내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하던 그가 한강 다리 위에 선 것은 코로나19 이후다. 무대가 멈춰서자 그의 눈에 비로소 무대 밖 세상이 들어온 것이다. “늘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연주를 못하게 돼서야 직접 새로운 무대를 찾아나선 거죠. 제 음악이 벼랑 끝에서 희망이 될 수 있길 바라요.”
공연은 때를 정해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때’를 가리지도 않는다. 이 씨는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다리에 오른다. 다리 위 여름은 더 덥고 겨울은 더 춥지만 정작 이 씨가 가장 힘든 때는 따로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공연을 하는 동안 근처에서 두 명의 투신자가 발생한 것이다. 자신의 음악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한동안 무기력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 아슬아슬한 무대에 서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올해 7월에는 ‘그래도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앨범도 발표했다. 수록곡의 제목은 ‘마포대교 블루스’다.
“그날 이후 누군가 삶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아직도 그 답을 찾진 못했어요. 그럼에도 계속 다리에 오르는 이유요? 계속 답을 찾기 위해서죠.”
사진 촬영을 위해 마포대교에 서 있는 한 시간 넘는 동안 그의 색소폰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이 한강 위를 출렁였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진우 씨. “세상엔 틀린 음도 틀린 인생도 없다”고 말하는 그는 매번 다리 위에서의 느낌을 즉흥으로 연주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코로나19로 공연을 못하게 되면서 처음 다리에 섰다고.
평생 음악만 하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 음악을 하는 더 큰 의미가 필요했다. 특히 사회 일원으로서 내 역할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연주자라면 세상에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걸 넘어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공연장을 애써 찾아와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한계도 벗어나고 싶었고. 특히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신경외과 의사, 어머니는 장애인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셨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병원으로 향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하루 종일 학생들을 돌보다 밤 12시에야 퇴근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왜 ‘자살’이 화두였나?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마포대교에서 투신 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 음악이 필요한 곳이겠구나 싶었다.
다리에 처음 섰을 때 기분은 어땠나?
처음엔 다리 입구가 어디인지조차 몰라 헤맸다. 이곳에서 연주를 해도 괜찮을지, 보행자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지 걱정도 됐다. 무엇보다 다리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다녀 음악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매연 때문에 목도 아팠다.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런데 앰프를 켜고 연주를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첫날에만 색소폰을 세 시간이나 불었다. 뭔가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여느 좋은 공연장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오래 공연을 이어가다 보면 사무적으로 연주를 할 때도 있고 연주가 잘 안되면 관객 탓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리에선 온전히 내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시작한 연주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올바른 길을 찾았구나 싶더라. 그날,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보게 될까,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연주하기에 ‘최악의 환경’이라는 점은 그대로다.
다리 위는 늘 바람이 심한 데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여름엔 지상보다 훨씬 덥고 겨울엔 두 배로 더 춥다. 악기를 들고 있기조차 어려울 만큼 추운 날 공연했던 기억도 있다. 색소폰을 불 땐 입에 마우스피스를 끼는데 연주를 마치고 입을 떼려 하니 추위 때문에 입술이 악기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적도 있다(웃음).
유튜브(@이진우의 Unlined Music Co.)에 올린 영상을 보면 동료들과 함께 연주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색소폰은 단선율 악기라 독주로는 풍부한 음을 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매번 동료들과 함께한다. 피아노, 기타, 트럼펫처럼 친숙한 악기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인 ‘디저리두’와 같이 독특한 악기와도 협연했다. 댄서 팀과 함께 공연한 적도 있다.

마포대교 위에서의 연주는 매번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연으로 이뤄진다. 2023년 10월 댄서 김학수 씨와 합동 공연 모습. (사진. 최차랑)



주로 어떤 음악을 연주하나?
100% 즉흥연주다. 어떤 곡을 연주할지는 다리에 서면서 정한다. 재즈가 워낙 즉흥성이 강한 장르인 데다 순간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서다. 다리는 매번 올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어떤 날은 힘들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소풍을 나온 것처럼 신이 난다. 동료들도 이곳에 와 다리 아래 세상을 보고 있으면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상념들이 떠오른다고 하더라. 그때 기분에 따라 희망찬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도, 처연한 진혼곡이 울려퍼질 때도 있다.
매번 즉흥연주를 하기 어렵지 않나?
연주가 좀 완벽하지 않으면 어떤가. 여기서 연주를 하며 느낀 건 세상엔 틀린 음도 틀린 인생도 없다는 거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말이 유행어가 된 시대인데.
처음엔 죽을 마음으로 다리에 오르는 이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극단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평생 하고 싶은 음악만 하고 살아 좋겠다며 부러워하지만 나조차 ‘이생망’을 부르짖으며 자책할 때도 있다. 협연하는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공연을 제안하면 생계가 빠듯해 ‘당장 내가 죽을 지경’이라고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내 음악이 다리 위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주한다. 모든 공연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온라인에 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연 중 투신자가 발생한 사건은 무척 충격이었겠다.
지난해 같은 날 두 명이 투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 음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여태 헛짓을 한 건 아닐까 싶었다. 무력감이 심했다. 투신자 중 한 명이라도 내 음악을 듣고 다가와 ‘삶이 이렇게 힘든데 왜 살아야 하냐’고 물었다 한들 다음의 행동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상상의 질문에 대해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아직까진 ‘그래도 살아보자’라는 말 외에 해줄 게 없다. 그럼에도 다리에 서는 이유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다. 계속 연주를 하다보면 작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만 더 이상 내 음악이 무용하다는 자책은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음악을 듣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에너지를 얻을 거라 믿는다. 또 이처럼 ‘막무가내’ 공연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을 보면서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마음을 먹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년째 공연 중이다. ‘마포대교 블루스’는 언제까지 계속되나?
계속 혼자 하기엔 힘이 드는 일이다. 공연의 의미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오래 지속하려면 함께하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새로운 예술의 장을 만들고 싶다. 나는 연주하고 옆에서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일반인도 누구나 원하면 연락해주길 바란다. 마포대교가 투신의 다리가 아닌, 예술의 다리가 되기를 꿈꾼다. 그때까진 계속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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